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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원(KAIST, GIST, UNIST, DGIST) 전형에 제출해야 하는 자기소개서를 입력하기 전에 지원자가 자신의 자기소개서를 검토하고 수정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 ‘자기’에 대한 내용이 아닌 문장 지우기
좋은 글은 목적에 부합하는 글이다. 마찬가지로 자기소개서도 목적에 부합해야 좋은 글이 된다. 자기소개서는 대학의 평가자들에게 소개할 ‘자기’를 중심으로 써야 하는데 적지 않은 학생들이 ‘자기’를 자주 잊는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입력하기 전에 가장 먼저 검토할 점은 ‘자기’가 아닌 내용을 지우는 것이다. 지운 문장이 없다면 그대로 입력하면 되고, 지운 문장이 있다면 지운 만큼 ‘자기’ 얘기를 넣어야 한다.
① 수학·과학·기술의 개념·원리·이론을 설명한 내용
② 수학·과학·기술이 다루는 자연 또는 사회의 현상을 설명한 내용
③ 당위적인 주장
①과 ②는 주로 지원자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쓰는 경우에 자주 나타난다. 평가자에게 이 분야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③은 자신의 지향이 정당하고 바람직하다는 근거로 제시한다.
위의 세 가지는 지원자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검색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쉽게 말하자면 수학·과학·기술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학생들도 자기소개서에 쓸 수 있는 내용이다. 뒤집어 보자면, 대학의 평가자 입장에서는 위의 내용이 큰 비중을 차지한 글에서는 지원자가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공부를 해 온 학생이라는 믿음을 얻을 수 없다. 평가자가 무시하게 되는 글이다.
각 사례를 보면서 왜 자기소개서에는 필요 없는 내용인지 알아보자.
① “열역학 제2법칙은 고립계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과정은 계 전체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며, 이로 인해 에너지 전달에는 비가역적인 방향성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원에서 입학 전형 업무를 하는 평가자들이 이런 설명을 읽고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무엇일까? 이 평가자들이 설마 열역학 제2법칙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열역학 제2법칙을 한 문장으로 설명한 글에서 새로운 지식을 얻는 기쁨을 경험하지 않는다. 솔직히 평가자들이 지원자들에게서 수학·과학·기술의 개념·원리·이론을 배울 생각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한 글을 읽고 지원자가 이 법칙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도 없다. 나처럼 chatGPT한테 물어본 것일 수도 있으니까. 결국 대학 평가자들이 위와 같은 문장을 읽고 얻을 수 있는 지원자에 대한 정보는 없다.
② “청둥오리는 시베리아와 몽골 등 북아시아 지역에서 번식한 뒤 가을철에 한반도로 내려와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다시 북쪽 번식지로 돌아갑니다.”
이 문장은 위 ①의 문장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대학 평가자들 입장에서는 지원자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다는 점에서는 같다.
③ “한국 반도체 산업은 단기적으로는 희토류 및 핵심 소재의 안정적 수급을 위한 전략적 비축과 공급선 다변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중장기적으로는 대체 소재 연구와 차세대 제조 기술 혁신을 통해 외부 의존도를 낮추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파트너십과 기술 생태계 주도권을 강화해 국제 경쟁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어야 합니다.”
보통 이런 서술 뒤에 오는 문장은 “그래서 저는 반도체 대체 소재 연구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을 이끌고 싶습니다.”와 같은 것들이다. 각 과학기술원 자기소개서의 맨 뒤 문항의 답변에서 자주 등장한다. 지원자는 반도체 산업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전달할 의도로 쓴 문장일 텐데, 평가자 입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다. ‘그래서 뭐?’
자기소개서 작성자는 종종 ③ 뒤에 이어지는 “그래서 저는 반도체 대체 소재 연구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을 이끌고 싶습니다.”와 같은 문장의 성격을 오해해서 쓴다. 이 문장은 ‘내가 미래에 어떤 일을 하겠다.’라는 행동의 계획이 아니라 인생의 지향을 표현한다. 계획은 항상 특정한 대상과 방법을 포함한다. 이것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당위적이어서 아무나 쓸 수 있는 내용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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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습과 활동 경험을 쓰라는데?
앞에서 설명한 ①②③을 지우면 의문이 들 것이다. ‘학습과 활동 경험을 쓰는데 어떻게 수학·과학·기술의 개념·원리·이론과 이것이 다루는 자연 또는 사회의 현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있지?’ 맞는 말이다. 공부한 사람이 뭘 공부했는지를 드러내지 않고 공부한 사람임을 입증하기란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래서 ①과 ②에 대해서 부연하겠다.
맨 위의 ①과 ②에 ‘설명’이라고 한 점에 주목하자. 여기서 설명은 개념·원리·이론·현상을 이해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설명하는 문장의 목적은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개념·원리·이론·현상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평가자들은 자기소개서를 읽으며 이를 이해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니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을 이해시킬 생각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아마도 ‘이해시킬 목적의 설명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려는 설명이다.’라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는데, 앞에서 얘기했듯이 진짜 알고 쓴 설명인지 아는 척하고 쓴 설명인지 구분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학습과 활동 경험을 쓸 때, 과학·기술의 개념·원리·이론과 이것이 다루는 자연 또는 사회의 현상이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 앞의 예시를 바꿔 보겠다.
①-(2) “열역학 제2법칙은 고립계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인데, 고립계가 아니면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자연과 인위적 조건에서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계, 그리고 이 계에서 에너지가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사례를 각각 찾아 어떻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공부했습니다.”
②-(2) “청둥오리가 먼 거리를 이동할 때, 지구의 자기장을 인지해서 이동 방향을 안다는 사실을 접한 후, 철새가 지구 자기장을 인지하는 기관과 그 메커니즘, 이 기관이 진화한 과정, 대륙의 이동과 지구 자북의 변화에도 철새의 이동에 오류가 없는 이유가 궁금해서 탐구했습니다.”
①-(2)와 ②-(2)는 개념이나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한 이유와 대상을 드러내면서 공부의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여기에는 공부의 방법, 아마도 문헌 읽기가 생략되어 있지만 평가자는 너무나 자명해서 알 것이다. 만약 특별한 공부의 방법이 더해진다면 아주 훌륭할 텐데 직접 실험으로 재현하거나 모델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실제로 해봤다면 반드시 쓰자.
◇ 지향과 계획을 분별하기
앞에서 ③에 대해 설명할 때, 지향과 계획은 다르다고 했다. 계획은 실행 대상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③과 그 뒤에 이어지는 보통의 문장을 다음과 같이 수정할 수 있다.
③-(2)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희토류 원소를 대체할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서 실리콘, 알루미늄 등 비교적 생산이 용이한 원소를 사용한 소재를 연구하고자 합니다. 이 연구를 위해서 ○○○○(과학기술원)의 △△△△연구소(연구센터)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과학기술원)의 △△△△연구소(연구센터)’나 과학기술원이 학부생에게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설명하지는 않아야 한다. 지원하는 과학기술원의 연구기관과 프로그램을 알고 있다는 정보만 전달하는 것은 이론이나 현상을 설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연구기관과 프로그램은 무슨 연구를 위해서 참여하거나 활용하겠다고 해야 ‘나의 계획’이 된다.
이와 같은 내용을 서술하는 문항에서 통상 하게 되는 무의미한 서술을 덧붙이자면, “○○○○(과학기술원)에 진학해서 □□□□학, ▽▽▽▽과목을 공부하고자 한다.”처럼 개별 학문 분야나 과목명을 언급하는 것이다. 당연히 공부해야 할 학문 분야나 과목을 공부하겠다고 하는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있겠는가?
◇ 정리하면
자신의 존재 여부와 무관한 객관적 사실 자체를 설명하지 말고, ㉠특정 대상을 공부한 이유, ㉡그 대상을 공부한 방법(실험, 제작, 조사, 추론 등 포함), ㉢공부해서 얻은 결과(또는 결론)와 이에 대해 스스로 한 평가(의의와 한계)를 설명하도록 한다. 즉 학습과 활동의 과정이 중심이 돼야 한다. 이러한 방식의 서술은 ‘자기’ 정보를 평가자에게 전달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성장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다. 대학은 현재 알고 있는 지식이 무엇인지보다는 그 지식을 얻게 된 과정이 대학 진학 후 지원자를 성장하게 할 만한 것인지 파악하고 싶어 한다.
지금 써 놓은 자기소개서에서 객관적 사실이나 당위를 설명한 부분을 지우고 학습과 활동의 과정으로 바꿈에도 불구하고 각 문항이 지정한 제한 분량에 이르지 못한다면 둘 중 하나다. 고교 때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무슨 내용을 써야 할지 고민이 부족한 것이다. 과학기술원에 지원할 정도라면 후자일 테니, 공부의 과정이 어떠했는지 더 생각해 보자.
[문성준의 학종 전략 자료집] 과학기술원 자기소개서 입력 전에 이 글은 꼭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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