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현의 두 번째 청춘을 시작합시다] 디지털 세상에 손 내민 어르신들, 격차를 넘어 삶의 존엄으로
조수현 샛별학교 대표
기사입력 2025.08.20 09:00

- “손끝에 세상이 있다지만, 그 손끝에 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 디지털 활용 이론을 학습 중인 샛별학교 교사와 학생.
    ▲ 디지털 활용 이론을 학습 중인 샛별학교 교사와 학생.

    스마트폰 하나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손안에 담을 수 있는 시대, 우리는 편리함과 신속함이 일상이 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디지털 세상의 문턱 앞에서 여전히 좌절을 경험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사회의 어르신들입니다.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망설이고, 모바일 앱 예매에 어려움을 겪으며, 이제는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조차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깊은 소외감을 느낍니다. 이러한 디지털 격차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어르신들을 일상과 사회적 연결을 크게 제한하는 현실적인 문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 정보취약계층별 디지털 정보화 수준, 2018-2022.
    ▲ 정보취약계층별 디지털 정보화 수준, 2018-2022.

    ◇ 디지털 격차가 만든 보이지 않는 벽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디지털 전환은 더 가속화됐고, 비대면 문화는 이제 우리 일상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지하철역 무인 발매기 앞에서 몇 분째 화면을 누르다 발길을 돌리는 어르신, 은행의 대면 창구가 줄어들어 맡겨둔 예금을 찾는 일마저 막막해하는 어르신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기술의 진보가 어떤 이들에게는 편리와 편의를 선물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세상과의 단절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시니어에게 디지털 소외는 단순한 ‘불편’에 머물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활을 꾸려가기 어렵다는 자책감으로 이어지고, 주변과의 관계마저 느슨해지면서 ‘삶의 품위’를 잃어가는 경험으로 번집니다. 정보의 바다에 접근하지 못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때 이용하지 못하며, 결국은 사람들과의 연결망에서도 멀어지게 됩니다.

  • 연구 수업과 토론을 진행 중인 샛별학교 청년 자원봉사자 교사들.
    ▲ 연구 수업과 토론을 진행 중인 샛별학교 청년 자원봉사자 교사들.
  • 연구 수업과 토론을 진행 중인 샛별학교 청년 자원봉사자 교사들.
    ▲ 연구 수업과 토론을 진행 중인 샛별학교 청년 자원봉사자 교사들.

    ◇  샛별학교, 디지털 세상의 문을 열다

    샛별학교의 시니어 디지털 교육은 이러한 단절의 벽을 허무는 시도입니다. 특히 시니어 학습자의 특성을 면밀히 연구하고, 다양한 실험과 교육·사회 혁신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완성한 맞춤형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운영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강의와 달리, 초·중·고 교육이 학년별 수준을 고려하듯 시니어 교육 역시 학습자의 눈높이와 배움의 의지를 세심하게 반영했습니다.

    이에 따라 교안과 교재는 단순한 설명에 그치지 않고 실제 생활 속 활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여 어르신들이 디지털을 ‘낯선 기술’이 아닌 ‘삶을 바꾸는 도구’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와 겨울철 미끄러운 빙판길에도 달동네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며 무거운 생수를 힘겹게 나르던 어르신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분은 샛별학교에서 배운 인터넷 쇼핑을 통해 생필품을 현관 앞까지 받아봅니다. 좁은 방에 TV조차 둘 수 없어 창밖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던 또 다른 어르신은 샛별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공기계와 새로 익힌 미디어 활용법 덕분에 하루 종일 트로트 음악 감상과 다큐멘터리 시청을 즐기며 일상의 활력을 되찾았습니다. 

    “딸이 바쁠까 봐 전화도 못 했는데, 이제는 문자로 매일 대화해요.”라며 디지털 문해교육 소감을 밝힌 어르신은 직장인 딸에게 안부조차 자주 묻지 못했던 이전과 달리, 샛별학교에서 연습한 타자와 메신저 덕분에 끊어졌던 소통의 끈을 다시금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기술 습득이나 생활의 편의를 넘어섭니다. 새로운 배움을 통해 세상과 다시 연결되면서 어르신들은 자존감을 회복하고 삶의 활력을 되찾습니다. 이것이 바로 샛별학교가 추구하는 ‘두 번째 청춘’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 디지털 활용 이론을 학습 중인 샛별학교 교사와 학생.
    ▲ 디지털 활용 이론을 학습 중인 샛별학교 교사와 학생.

    ◇ 교육의 한계와 정책적 과제

    그러나 현장의 어려움도 분명 존재합니다. 현재 어르신 대상의 디지털 교육은 여러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지자체나 지역 복지시설에서 주로 진행되는 ‘1대다’ 교육은 1명의 교사가 여러 명을 동시에 지도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학습 속도가 느리고 개인차가 큰 시니어에게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교육이 단발성 특강에 그치면서, 꾸준한 연습과 반복이 필요한 어르신들이 실제 디지털 활용 능력을 키우기는 어렵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도움이 가장 절실한 분들에게 기회가 잘 닿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정보 접근이 어려운 어르신일수록 신청 절차조차 접하기 힘들고, 결국 교육의 혜택은 이미 어느 정도 사회적 연결망을 가진 어르신들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맞춤형·지속형 교육 모델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 기능 습득을 넘어, 디지털을 매개로 사회적 연결과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되어야 합니다. 어르신들이 낯섦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세상과 다시 연결될 수 있도록, 개인별 눈높이에 맞춘 교육, 꾸준하고 반복적인 학습 기회, 그리고 지원이 꼭 필요한 어르신께 직접 다가가는 서비스가 절실합니다.

  • 키오스크 실습 교육을 위해 야외에서 함께 이동 중인 샛별학교 교사와 학생.
    ▲ 키오스크 실습 교육을 위해 야외에서 함께 이동 중인 샛별학교 교사와 학생.

    ◇ 디지털 소외의 사회적 비용과 기회

    이 문제는 단지 어르신 개인의 불편에 머물지 않습니다. 디지털 소외가 장기화되면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훨씬 더 커집니다. 공공서비스 이용의 어려움은 행정 인력과 복지 비용의 증가로 이어지고, 은행·병원·관공서 등에서 발생하는 대기와 인력 투입은 사회적 비효율을 가중합니다. 나아가 고립과 단절이 심화하면 노인 우울증, 치매, 자살률 증가로 보건·의료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역으로 어르신들의 디지털 활용 능력이 높아진다면 작은 변화가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병원 예약이나 공공서비스를 직접 온라인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행정 인력의 부담이 경감되고, 일부 어르신들은 디지털 기기 활용 능력을 토대로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거나 온라인을 통한 소득 활동을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자립을 돕는 동시에, 사회적 지출을 완화하는 긍정적 파급 효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지금 어르신들이 겪는 디지털 격차가 곧 ‘내일의 우리 세대’가 맞닥뜨릴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디지털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는 현실에서, 오늘의 시니어 세대가 배움과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일은 곧 미래 세대를 위한 안전망을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결국 시니어 디지털 교육은 복지 정책을 넘어 사회 전체의 장기적 안정과 세대 간 균형 있는 대비를 위한 ‘투자’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 즉석사진 촬영기를 체험 중인 샛별학교 교사와 학생.
    ▲ 즉석사진 촬영기를 체험 중인 샛별학교 교사와 학생.
  • 즉석 사진 촬영기를 체험 중인 샛별학교 교사와 학생.
    ▲ 즉석 사진 촬영기를 체험 중인 샛별학교 교사와 학생.

    ◇ 두려움을 넘어 존엄으로

    어르신들이 스마트기기를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젊은이들만 쓰는 것’이라고 여겨온 낯선 화면과 작은 버튼 앞에서 자신감은 쉽게 무너집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넘어서는 순간, 세상은 다시 어르신들의 곁으로 다가옵니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닙니다. 자녀와 매일 안부를 나누고, 스스로 원하는 정보를 찾으며, 취미와 여가를 즐기고, 새로운 배움에 도전하는 힘입니다. 그것은 나이가 들어도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립과 존엄의 기반입니다. 어르신들이 다시 세상과 연결될 때, 우리 사회는 더 따뜻해지고 미래 세대 역시 존중받는 노년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청춘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두려움을 넘어 존엄을 되찾는 순간, 삶은 다시 빛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