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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교사, 해외 명문대 진학률, 국제 커리큘럼까지 갖춘 국제학교라기에 믿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자퇴를 결정한 후 등록금 환불을 요청하자 학교는 전화도 받지 않았고, 이메일로 ‘환불 불가’ 통보만 보냈습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학부모 A씨는 자녀를 한 국제학교에 입학시킨 뒤 거듭된 환불 거부로 큰 피해를 입었다. 문제는 해당 시설이 이름만 ‘국제학교’일 뿐, 정식 인가받지 않은 ‘비인가 교육시설’이었다는 점이다. 겉보기에는 학교지만, 법적으로는 단순한 ‘교습소’에 불과했다.
최근 수도권과 부산 등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일부 교육시설이 고액의 등록금을 받은 뒤 폐교하거나, 교육청 감독을 받지 않고 운영되면서 학부모와 학생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학교’라는 명칭 아래 운영되는 비인가 교육시설에 대한 주의가 요구된다.
◇ 외형은 학교… 실제론 인가 받지 않은 교습소비인가 국제학교들은 외형적으로는 정식 학교와 매우 유사하다. 교복을 입고 등교하며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과목 수업을 듣는다. 입학식·졸업식 등 행사도 진행하고, 심지어 생활기록부와 유사한 문서까지 발급한다. 이로 인해 많은 학부모가 이들 시설을 ‘정식 국제학교’로 오인하기 쉽다.
하지만 이들은 교육부 또는 시·도 교육청의 인가를 받은 ‘학교’가 아닌 교습소로, 법적으로는 「학원법」에 적용받는다. 즉, 학생의 학력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학교 운영 주체나 교사 자격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는다. 교육의 질이나 법적 책임 역시 담보되지 않는다.
비인가 국제학교 중 다수는 광고에서 외국인 교사 채용, 해외 교육과정 운영, 해외 대학 진학 실적 등을 강조하며 국제학교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처럼 홍보하지만, 대부분은 공교육 체계 밖에서 운영되고 있다.
◇ 환불 불가 계약 조항… 교육비 반환 어려워등록금 환불 문제는 비인가 국제학교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분쟁 중 하나다. 많은 시설이 환불 요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자체 환불 규정을 마련하고, 입학 전 학부모에게 해당 규정에 서명하도록 요구한다. 이들 환불 규정은 「학원법 시행령」에서 정한 교습비 반환 기준과 상충하거나, 환불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다.
학부모가 수업 시작 전 자발적으로 계약 해지를 요청해도 등록금 일부를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이며, 일부 시설은 연락을 피하거나 계약서를 근거로 환불을 거부한 사례도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사례에 대해 법적 대응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학원법상 등록된 교습소이기 때문에 학부모는 민사소송 외에는 마땅한 구제 수단이 없는 상황에 놓인다.
◇ ‘학교’ 간판 달고 고액 수업료…실제론 불법 운영
비인가 국제학교 상당수가 ‘학교’, ‘국제학교’, ‘캠퍼스’ 등의 용어를 광고나 간판에 사용하고 있다. 이는 학원법에서 엄격히 금지된 사항이지만, 제재가 실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2022년 한 비인가 국제학교가 고액 수업료를 받고 운영되다 시교육청 현장점검에 적발됐다. 이후 경찰 고발 및 벌금 1000만 원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해당 학교는 명칭과 운영 방식 모두를 그대로 유지한 채 지금도 운영 중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교육의 윤리성 자체를 해치는 경우다.
지난 2025년 수도권의 한 비인가 국제학교는 미국 대학 입학시험인 SAT의 기출 문제를 사전에 확보해 학생들에게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학교는 학부모들에게 ‘정답을 줄 수 있다’며 입학을 유도해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이러한 사례는 극단적인 예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감독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제도 밖 교육시설에서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문제다.
◇ 헌재도 “위법”…그러나 제도적 대응은 제자리
헌법재판소는 지난 2023년 ‘인가 없이 학생을 모집하고 교육시설을 갖춰 지속적으로 교육하는 행위는 실질적으로 학교 운영에 해당하며, 이는 초·중등교육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단순히 외형이 아니라 운영 실태가 학교 형태라면 법적 처벌 대상이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여전히 실효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고가형 미인가 교육시설에 대한 실태조사는 지난 2014년이 마지막이었으며, 이후 전국 단위 전수조사도 없다.
김창석 부산시의회 의원은 “초·중등교육법 제65조에 따라 폐쇄 명령이 가능하나, 이를 이행하지 않아도 별다른 처벌 규정이 없어 무용지물”이라며, “전국 시·도 교육청이 협력해 비인가 시설에 대한 일원화된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상위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던 바 있다.
◇ 제도 밖 교육, 학부모의 ‘정보력’이 유일한 방패
제도 개선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학부모의 판단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입학 전 해당 시설이 정식 인가를 받은 교육기관인지, 혹은 학원법상 교습소인지, 심지어 무등록 불법 운영 시설은 아닌지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
외국인 교사 구성, 해외 진학률, 홍보 영상 등 외형적 요소만으로 교육의 신뢰성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자녀가 정규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교육체계 내에 있는지, 위기 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따져야 한다
‘국제학교’ 명칭 사용한 비인가 교육시설…학부모 피해 주의 필요
장희주 조선에듀 기자
jhj@chosun.com
- 등록금 환불 거부, 학력 미인정 등 피해 사례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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