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교육 자율권 vs 아동 정서 발달권… ‘영유 금지법’ 논쟁 이어져
강여울 조선에듀 기자 kyul@chosun.com
기사입력 2025.08.01 16:30
  • 4세고시와 7세고시, 학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영어유치원이나 유명 선행학습 학원에 등록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일종의 ‘레벨 테스트’를 칭하는 말이다.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과도한 선행 사교육을 문제 삼으며 최근 교육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대한민국에 불어온 사교육 열풍이 몇 년째 쉬이 가시지 않는 가운데, 사교육을 시작하는 아이들의 나이 또한 나날이 어려져 논란이다. 특히, 선행 사교육이 아이들의 건강에 적신호를 불러일으킨다는 분석이 나오며 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 영유아 사교육, 정서 발달에는 빨간불?

    좋은교사운동이 지난달 13일 발표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5세~19세 아동·청소년 중 ADHD 치료를 받은 수는 15만2229명이며 우울증 치료를 받은 수는 8만8571명이다. 지난 4월 국회 교육위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도 강남 3구에 거주하는 9세 이하 아동의 우울증과 불안증세 진단이 4년 새 3배 이상 증가했다는 자료를 발표했다.

    교육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아동 우울증·불안증세 증가 원인은 지나친 선행학습과 사교육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증가 폭이 두드러진 강남 3구의 경우 특히 사교육이 활성화된 곳이기도 하다. 

    김재원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만으로 아동 우울증과 사교육의 연관성을 완벽히 설명할 순 없지만, 인지 교육 중심의 사교육이 스트레스, 기억력 저하 등의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학습과 인지 중심의 조기교육이 도리어 인지와 사회성 발달의 불균형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 결국 등장한 ‘영어유치원 금지법’

    논란이 불거지자 국회에서는 영유아 대상 영어교육을 제한하겠다고 나섰다. 지난달 23일, 국회 교육위 소속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은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른바 ‘영어유치원 금지법’이다. 

    해당 개정안은 36개월 미만 영유아에게 국제화를 목적으로 하는 학습을 금지하고, 36개월 이상 영유아에게는 이 같은 학습을 하루에 40분 이상 시키는 것을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36개월을 기준으로 그보다 어린 영유아는 학습이 아예 금지되며, 36개월 이상이더라도 하루 학습 시간은 40분으로 제한된다.

    앞서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지난 2019년, 국내 아동의 과도한 사교육과 경쟁적인 교육 환경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완화 방안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2024년 정부가 발표한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 주요 결과’에 따르면, 2024년 7월부터 9월까지 영유아들의 사교육 참여율은 47.6%로 나타났다. 전체 영유아의 절반에 가까운 수가 조기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이대로 나누어 살펴보면, 만 2세 이하 참여율 24.6%, 만 3세 50.3%, 만 4세 68.9%, 만 5세 81.2%로, 36개월인 만 3세부터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법안 제안자들은 이러한 내용과 사회적 논란을 해당 법안의 제안 이유로 설명했다. 강경숙 의원은 “영유아 시기는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신체적·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단계”라며 “이러한 시기에 이루어지는 사교육은 과도한 비용, 시간 및 난이도에 비해 교육 효과가 미미할 뿐 아니라, 영유아의 인권을 침해할 우려도 있어 조속한 제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영어유치원’이라는 명칭 또한 논란이다. 흔히 말하는 영어유치원은 유아교육법상 ‘학교’가 아닌 ‘학원’에 해당한다. 교·보육기관으로 등록되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과 달리, 교육감에게 학원으로 신고하고 운영되고 있다. 통상 영어유치원라고 알려져있지만, 이 같은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법이다.

    ◇ 학부모 의견 대립… 규제 필요 vs 권리 침해

    영어유치원 금지법이 발의되자 학부모들은 반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주로 ‘부모의 권리 침해’, ‘교육 시장의 자율성 저해’ 등을 근거로 들었다. 한 학부모는 “현재 공교육은 초등학교 입학 전 갖춰야 할 교육적 부분에 대해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부모가 직접 사교육을 찾아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3~5세 대상의 누리과정은 학습이 아닌 ‘놀이’ 중심으로 운영된다. 아동이 경험해야 하는 영역을 5개로 나누고 이를 놀이 중심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글도 놀이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습득해야 한다고 규정돼있어 사교육을 향한 학부모들의 선호가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찬성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법안에 찬성한다는 학부모 A 씨는 “정서적인 돌봄이 필요한 시기에, 아이의 발달과정은 생각하지 않고 영어학습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라며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부모가 많다면 어느 정도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36개월 아이들은 좋고 싫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아이들에게 과도한 학습을 요구하는 것은 부모의 욕심”이라고 말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법을 통해 이를 규제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부모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만큼, 교육 현장의 의견과 부모들의 목소리를 듣고 교육론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아동 전문가는 “영유아 시기에는 부모와의 애착 형성 등 정서적인 발달과 경험이 더 중요한 것이 사실”이라며 “다만, 지금처럼 사교육이 과열된 상황에서 국가가 이를 강하게 규제한다면 되려 교육격차가 더 벌어지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망을 피해 교육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생겨날 가능성도 크다”며 “교육공동체가 함께 마음을 맞춰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