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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학부모들 사이에서 국제학교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영어 몰입 환경, 원어민 교사 수업, 글로벌 커리큘럼, 캠퍼스형 시설 등은 자녀가 세계적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듯 보인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해외 유학길이 일시적으로 막히면서, 글로벌 교육을 원하는 학부모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국내 국제학교로 향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서울 강남, 경기 성남(분당·판교), 부산 해운대, 제주 등 전국 곳곳에는 ‘국제학교’ 혹은 유사한 명칭을 내건 교육기관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지방 중소도시에도 영어 중심 교육을 내세운 ‘국제형’ 학원이나 대안학교 형태의 기관들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일부 기관은 교육청 인가를 받지 않은 비정규 교육 시설임에도 ‘국제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어, 학부모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법적으로는 ‘학교’로 인정되지 않는 기관이 ‘아카데미’, ‘인터내셔널 스쿨’, ‘○○유니버설’ 등의 명칭을 사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제도적 구분에 익숙하지 않은 학부모들은 이 같은 명칭을 보고 정식 학교로 오해하기 쉽다.
국내에서 ‘국제학교’라는 표현은 통상적으로 외국인 교사와 영어 중심 수업, 해외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학교를 가리키지만, 법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외국인학교( 초중등교육법 근거, 한국 학력 일부 인정) ▲외국교육기관(외국교육기관법 근거, 한국학력 인정) ▲제주영어교육도시 내 국제학교(제주특별법 근거, 한국 학력 인정) ▲비인가 국제형 대안학교 또는 학원(학원법 근거, 한국 학력 미인정) 등이다.
특히 비인가 국제학교의 경우, 교사진 구성과 수업 형태는 정식 국제학교와 유사해 보일 수 있지만, 법적 자격과 운영 기준에서 큰 차이가 있다. 외국인 교사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해외 교과서와 커리큘럼을 사용하는 등 외형은 정식 국제학교와 닮아있지만, 국내 학력은 인정되지 않으며 교육청의 감독도 받지 않는다.
이로 인해 학생이 이후 국내 일반학교나 대학으로 진학하고자 할 경우, 검정고시를 치르거나 편입학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실제로 서울에 거주하는 A씨(41세)는 “자녀가 2년간 다닌 비인가 국제학교를 다니다 사정상 국공립학교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라며 “중학교로 편입할 때 학적이 없어 검정고시를 치른 후 들어가야 했고, 아이는 혼란과 스트레스를 겪었다”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학부모들이 해외 대학 진학만을 염두에 두고 비인가 국제학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아이의 진로는 언제든 변할 수 있는 만큼 공교육 체제로 복귀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학력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진로 변경 시 교육 공백이 생기고, 적응의 어려움도 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교육 인프라와 교사 자격 기준도 주요 고려 요소다. 정식 국제학교는 일정 규모 이상의 부지, 체육관, 실험실, 예술 공간, 급식 시설 등을 갖춰야 하고, 교육청의 인가 및 감독을 받는다. 반면, 비인가 국제학교는 상가, 오피스텔, 단독주택을 개조한 경우도 많아 공간이 협소하거나 안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교사 자격 역시 차이가 난다. 정식 국제학교는 해당 국가의 정교사 자격을 갖춘 외국인을 E-7 비자로 채용할 수 있는 반면, 비인가 기관은 E-2 비자를 통해 회화지도사로 등록된 외국인만 고용할 수 있다. 일부 기관은 한국인 배우자를 둔 외국인이나 교포를 교사로 고용하기도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정식 교육 경력이 없는 경우도 있어 교육의 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이러한 비인가 국제학교의 확산은 조기 영어 사교육 열풍과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에는 만 3세~5세 유아를 대상으로 한 영어유치원, 국제형 유치원 등의 등록이 늘면서, 레벨테스트와 면접을 거쳐 입학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아이들이 이른 시기부터 높은 수준의 언어 평가와 적응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는 최근 ‘영유아 영어교육 제한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법안에는 만 5세 이하 아동에게 주 3회, 하루 40분 이내의 영어 수업만 허용하고, 레벨테스트 금지 및 연령에 맞는 교습 내용 운영 등이 포함됐다. 아직 법안이 통과된 것은 아니지만, 아동 발달권 보호와 공교육과 사교육 간 형평성 확보 차원에서 중요한 논의로 평가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제학교라는 명칭만 보고 기관을 선택하기보다는 정식 인가 여부, 학력 인정 가능성, 교사 자격, 시설 안전성 등 제도적 기준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또한 “자녀 교육은 단순한 소비가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이므로, 안정성과 공신력이 확보된 교육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덧붙였다.
국내 국제학교 수요 증가…합법적 운영 여부·학력 인정 기준 등 확인 필요
장희주 조선에듀 기자
jhj@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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