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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동·청소년의 우울증 비율이 3배 이상 증가하며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특히,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 3구를 중심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며, 4세 고시 등 지나친 조기교육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김재원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인지 교육 중심의 사교육은 스트레스, 기억력 저하 등의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존재한다”며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학습과 인지 중심의 조기교육이 도리어 인지와 사회성 발달의 불균형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2014년, 국내 최초 어린이 청소년 우울증 전문 클리닉 MAY(Mood and Anxiety clinic of Youth)를 개설하고, 우울증과 불안증, 자해·자살 위험, 기분 조절 문제 등을 가진 소아 청소년들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는 아동 우울증은 항우울제에 잘 반응하지 않고, 자해나 자살의 위험도가 높아 제때 올바르게 치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지난 5년 사이 9세 이하 아동들의 우울증이 3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임상 현장에서 실제로 어떤 변화가 체감되며, 이 같은 현상의 주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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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현장에서 10년 전과 비교해 우울증과 자해·자살, 불안 문제가 증가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언론에서 보도된 데이터는 강남 3구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청구 자료에 근거한 것이므로, 우울증의 발생률이나 유병률 증가를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자료는 아니에요.
우울증의 증가에는 최근의 COVID-19 팬데믹의 영향이 컸습니다. 미국의 경우 소아·청소년 우울증 발생률이 2017년의 1.35%에 비해 2021년에는 2.10%로 증가했고, 우울증 유병률도 2017년의 2.55%에 비해 2021년에는 4.08%로 증가했어요. COVID-19 팬데믹으로 정상적인 학교생활과 또래 관계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소아·청소년의 정서 및 사회성 발달에 결함이 생겼는데요. 이것이 우울증의 증가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아동 우울증·불안증세를 의심해 볼 수 있는 초기 증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의 생활을 중심으로 초기 증상 예를 들어볼게요.
먼저 우울증은 등교 거부, 학습 의욕 저하, 성적 하락 등의 초기 증상을 보입니다. 함께 밥 먹을 친구가 없다는 등의 친구 관계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자신감 부족으로 인해 쉽게 위축되기도 합니다.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두통과 복통이 발생하거나 식사와 수면 패턴에 변화도 나타나기 때문에 가정에서도 유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불안장애의 경우에도 분리 불안을 포함한 등교 거부, 대인 공포 등의 사회 불안, 수행 불안이 나타납니다. 매사에 걱정이 많고 불안 수준이 높으며, 호흡 곤란이나 두근거림, 과호흡 등 공황과 비슷한 신체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아이들에게 학교는 숨 막히고 답답한 공간이 될 수 있어요.
소아·청소년은 성인에 비해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공존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 그렇다면 소아·청소년 우울증은 성인 우울증과는 어떤 다른 양상을 보이나요? 더 위험한 이유가 있다면요?
소아·청소년의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 대신 짜증이나 예민한 기분이 나타나기도 해요. 성인 우울증과는 달리 불안장애나 품행장애, ADHD가 동반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공존 질환이 있는지 평가해 치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동 우울증이 무서운 이유는 성인 우울증보다 항우울제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고, 자해나 자살의 위험도가 높다는 거예요. 아동 청소년 시기에 발생한 우울증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성인이 된 후 우울증이 재발할 우려가 큽니다.
─ 전문가들은 아동 우울증 증가의 원인을 4세 고시 등 지나친 사교육으로 보고 있는데요. 이처럼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조기교육은 아동들의 성장과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현재까지 아동 우울증 증가의 원인이 4세 고시 등의 사교육과 관련 있다는 구체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영유아기 사교육 영향에 관한 연구는 일관된 결과를 제시하고 있지 않아요.
지난해 유아정책연구소에서 발표한 ‘영유아기 사교육 경험과 발달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영유아기의 예체능 사교육은 사회 기술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선행 연구가 있었어요. 반면에 인지 교육 중심의 사교육은 스트레스, 기억력 저하 등의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죠.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학습과 인지 중심의 조기교육이 도리어 인지 발달과 정서·사회성 발달의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근거는 분명하지 않을 수 있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죠.
─ 대한민국은 교육열이 높은 국가인 만큼, 조기교육·선행학습 또한 강세입니다. 정신과학을 공부한 아동청소년 정신과 의사로서, 현재 대한민국 교육의 실상과 문제점은 어떻다고 보시나요?
조기교육이나 선행학습으로 아이의 인지 발달에만 치중하고 정서와 사회성 발달에 소홀한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조기교육과 선행학습의 장기적인 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도 없어요.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이가 강한 자신감과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배움과 앎에 대한 동기를 형성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에요. 정서와 사회성 발달에 결함이 있으면 자신감과 자율성 향상, 관심사에 대한 스스로의 동기 부여 등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조기교육이나 선행학습보다는,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고 사회성이 있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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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아동 우울증·불안증세를 예방하기 위해 가정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이 있을까요?
우울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비합리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분이 좋아지는 활동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울이 더 심해질 수 있어요.
‘행동 활성화(behavior activation)’는 기분이 좋아지는 활동을 계획해 실천하는 것으로, 우울을 빠르게 극복할 수 있는 기법인데요. 생각과 감정, 행동은 서로 연결돼 영향을 미치는데, 이 중 행동을 바꾸는 것이 가장 손쉽기 때문입니다.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대표적인 활동은 운동이에요. 운동의 항우울 효과는 연구로도 많이 입증돼 있는데요. 운동을 일과에 규칙적으로 포함하는 것만으로도 우울증의 예방과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또한, 불안의 조절에는 호흡 조절(controlled breathing), 점진적 근육 이완(progressive muscle relaxation), 명상, 마음 챙김 기법 등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와 관련된 유튜브 동영상이나 스마트폰 앱이 많아 쉽게 따라 할 수 있어요. 특히, 점진적 근육 이완은 몸의 여러 부위의 근육 집단을 연속적으로 긴장시키고 이완시킴으로써 불안과 스트레스를 낮출 수 있습니다.
─ 끝으로, 아동 우울증·불안증세를 겪고 있는 아이와 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아이는 과거의 잘못했던 일이나 트라우마(외상) 경험에서, 부모는 자신이 자녀를 잘못 키웠기 때문에 우울증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지난 사건에서 우울증의 원인을 찾고 과거에만 집착하는 것은 우울증의 이해와 치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울증 치료는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과거에 머무르거나 잠식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김재원 서울대 교수 “인지 중심의 교육보다 정서 발달이 우선” (인터뷰)
강여울 조선에듀 기자
ky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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