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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부 출범 당시, 교육전문가 없이 구성된 인수위원회와 교육부 폐지론이 제기되며 교육계는 큰 혼란과 우려에 직면했다. 당시 ‘교육은 현장에 답이 있다’고 강조하며, 정치적 논의나 이념보다 교육의 본질과 실천적 지혜가 정책 설계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밝힌 바 있다.
이제 이재명 정부의 미래교육자치위원회는 교육 철학의 재정립과 국가 백년대계 수립이라는 중대한 책무를 안고 있다. 위원회에서는 대학 통합, 교육부 기능 조정, 국가교육위원회 권한 강화, 초·중등 교육의 시도교육청 이양, 직업 및 평생교육의 국가 책임 확대 등 다양한 과제가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교육 혁신은 제도 개편이 아니라 ‘교육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교육정책은 정권 주도의 상의하달식 방식과 정치적 이해관계, 일부 단체 중심의 영향력에 따라 방향을 잃어왔다. 혁신과 평등이라는 수사가 난무했지만, 교육격차는 심화됐고, 사교육비는 증가했으며, 입시 불공정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뒤바뀌는 악순환은 교육의 일관성과 지속 가능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교육은 특정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공공성과 미래를 위한 책무로서, 정권과 이념을 초월한 중립적이고 지속 가능한 정책체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새 정부에게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정책 방향을 제안해본다.
첫째, 정책 혁신보다 앞서 교육 철학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정책 수립 이전에 우리는 반드시 “교육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우리는 그 교육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고 있는가?”, “지속 가능한가?”와 같은 근본적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쏟아지는 정책은 방향을 잃어 왔다. 이제는 삶속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중심에 둔 교육”, “미래사회와 연결된 실천적 교육”, “배움과 삶이 연결된 직업교육”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교육의 구조와 내용을 재설계해야 한다.
둘째, 교육정책은 현장 중심의 설계로 전환돼야 한다.
정책은 교사, 교장, 단위학교 관리자 등 현장의 실천가들의 목소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실질적인 참여가 보장되어야만 지속 가능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이 가능하다. 미래교육자치위원회의 구성도 이러한 원칙을 충실히 반영하여,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니라 현장의 지혜를 제도화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셋째, 교육 거버넌스 개편은 공공성과 책무성을 기준으로 설계돼야 한다.
교육의 주체와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정책 실행의 근간을 결정한다. 특히 지방대학은 통폐합의 대상이 아니라, 지역과 상생하며 성장할 수 있는 교육·산업·인재의 거점으로 육성돼야 한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도 단순 수치 중심이 아닌, 질적 경쟁력 확보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 혁신이 필요하다.
실제로 2025년 QS 세계대학순위에서 서울대는 31위, 카이스트는 53위에 머물렀고, THE 순위에서는 서울대가 62위에 그쳤다. 이는 국내 대표 대학조차 글로벌 무대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교육의 물리적 확대가 아닌 구조적 혁신이 절실함을 보여준다.
또한, 문재인 정부 시절 충분한 준비 없이 추진된 중등직업교육의 시·도교육청 이양과 조기취업형 현장실습 전면 폐지는 직업계고 취업률을 50% 이상 하락시키며 학교의 존립 기반을 크게 흔들었다. 이는 단순히 권한을 넘기거나 기능을 축소하는 방식이 아니라, 중앙과 지방간의 역할 재정립과 정교한 지원 체계가 반드시 병행돼야 함을 시사한다. 교육 거버넌스 개편은 단지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지속 가능성과도 밀접히 연관된 과제이며, 다음 항목에서 다룰 ‘정책체계의 일관성’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넷째, 일관성과 지속 가능성을 갖춘 교육정책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교육은 장기적 안목과 일관된 추진력이 없이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단기적 성과 위주의 정책, 정권 변화에 따른 급격한 방향 전환은 교육 현장의 신뢰를 저해하고, 그 피해는 결국 학생과 교사에게 돌아간다. 2024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종합 20위를 기록했으나, 정부 효율성은 39위로 하락했다. 이는 정책 집행의 일관성 부족과 시스템 운영의 비효율성을 지적한 결과로, 교육정책 또한 같은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특히, 직업계고를 둘러싼 정책 실패는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조기취업형 현장실습의 일몰 폐지와 기능 이양 등으로 인한 혼란은, 수년간 쌓아온 교육 시스템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에 따라 교육부 기능은 단순 축소가 아니라,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하고 장기적 전략과 환류 체계를 갖춘 방향으로 재정립돼야 한다. 이를 토대로 교육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요구된다.
이번 정부의 직업교육강화정책에서 중등직업교육 기능의 교육부로의 환원과 관련 정책이 제도적으로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다섯째, 교사의 역량과 신뢰 회복이 교육의 미래를 지킨다.
교사의 철학과 태도는 교육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제도와 정책이 아무리 바뀌어도 그것을 실현하는 주체는 교사이며, 아이들의 성장은 교사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교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그들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은 충분하지 않다. 교사의 전문성과 교육 철학이 자연스럽게 발현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사회적 신뢰와 존중, 위기 상황에 대한 법적·제도적 보호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교사를 믿고 자율성을 보장할 때 비로소 학생 중심의 수업이 가능해지고, 교육은 생명력 있는 현장 시스템으로 작동하게 된다. 교사를 지키는 일은 곧 교육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는 일이며,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교육은 단순한 행정이 아니라, 국가의 철학이며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자 아이들의 삶 그 자체다. 새 정부가 정치적 논쟁을 넘어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정책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배움과 성장이 있는 교육, 책임지는 교육현장, 그곳에서 대한민국 교육의 새로운 미래가 시작될 것이다.
☞ 현수 직업교육정책연구소장
현수 직업교육정책연구소장은 직업교육정책연구소 대표로 활동하며, ASEAN 직업교육 컨설턴트와 한국직업교육협회·대한공업교육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수원고등법원 조정위원, 한국자원봉사포럼 이사로도 활약하며, 직업교육과 사회 기여 분야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아왔다. 전 수원정보과학고·수원하이텍고 교장, 전국 마이스터고 교장단 회장 등을 역임하며 현장 중심의 교육 정책과 실천을 이끌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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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새 정부에 바라는 지속 가능한 교육정책의 방향
–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정책 플랫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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