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동동 구르는 개발사들… 퇴출 위기에 놓인 ‘AI 디지털교과서’
강여울 조선에듀 기자 kyul@chosun.com
기사입력 2025.06.12 10:05
  • '2025 대한민국 교육박람회'에 마련된 AI 디지털교과서 특별관의 모습.
    ▲ '2025 대한민국 교육박람회'에 마련된 AI 디지털교과서 특별관의 모습.

    AI 디지털교과서의 교과서 지위가 위태해지며, 수천억 예산이 투입된 디지털교육 사업이 좌초 위기에 놓였다. 정부 정책을 믿고 개발에 나섰던 교과서 발행사들은 사업 붕괴를 우려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11일 국회 교육위원회는 국회 교육위원회는 AI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지난해부터 민주당 주도로 개정안이 추진돼 온 만큼, 이번에는 교과서 지위 박탈을 피할 수 없을 거란 전망이다.

    교과서는 모든 학교가 의무적으로 채택해야 한다. 하지만 교육자료는 학교운영위원회 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사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AI 디지털교과서가 교육자료로 격하되면 교과서 개발 및 발행 기업들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 기로에 놓인 ‘AI 디지털교과서’

    앞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26일, 본회의에서 의결되며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그러나 당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현재까지 교과서 지위가 유지되고 있다.

    AI 디지털교과서는 인공지능(AI)이 결합된 디지털 기반의 교과서로, 학생 개개인의 학습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맞춤형 학습 경로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교육부는 개인별 능력과 수준에 맞는 학습을 지원해 교육 격차를 해결하겠다는 취지로, 지난 2023년 개발과 함께 전면도입을 발표했다.

    그러나 빠듯한 개발 일정과 도입 시기로 인해 교육현장에서는 혼란의 목소리가 지속돼 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전 “윤석열 정부의 성급한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으로 발생한 교육현장의 혼란을 해소하고, 교육자료로 규정해 학교의 자율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밝히기도 했다.

    당초 교육부는 올해 3월부터 초등학교 3∼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해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AI 디지털교과서를 향한 각종 논란이 이어지면서, 전면도입을 유예하고 학교 자율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계획을 변경했다.

    현재 전국 학교의 AI 디지털교과서 채택률은 생각보다 저조한 모습이다. 전국 약 1만2000여 개 초·중·고교의 디지털교과서 평균 채택률은 32%에 머물렀다. 실제 AI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지위가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된다면, 곧 시작되는 올해 2학기부터 AI 디지털교과서 채택률은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지난 9일 감사원은 AI 디지털교과서 도입과 관련해 교육부 감사에 착수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성실히 감사에 임하겠다고 전했다.

  • 지난 1월 디지털교과서 발행사 6곳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교과서 지위 유지를 촉구했다.
    ▲ 지난 1월 디지털교과서 발행사 6곳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교과서 지위 유지를 촉구했다.

    ◇ AI 디지털교과서 개발사 “도산 위기 처해”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교육업계는 디지털교과서의 미래가 어둡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부의 디지털교과서 운영 발표 이후, 수많은 교과서 발행사와 AI 기술기업은 디지털교과서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2025년부터 순차적 전면도입이라는 정부의 약속을 믿었다는 것이다. 디지털교과서 개발에 나섰던 소규모의 스타트업 기술 개발사들은 당장 회사가 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고 호소했다. 

    대형 전통 교과서 발행사들 또한 그 피해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천재교육·천재교과서는 지난 3월부터 디지털 학습지 ‘밀크티’ 담당 부서를 중심으로 대규모 권고사직을 단행했다. 천재교육 측은 AI 디지털교과서의 전면도입 취소 여파라고 밝혔으며, 권고사직 대상자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한 교과서 발행사는 “전 정부가 약속한 디지털교과서 의무도입을 믿고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 개발에 매진했는데, 교과서 지위를 박탈당하면 발행사는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가결 후인 지난 1월, 디지털교과서 발행사들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디지털교과서의 지위 유지를 촉구했다. 또한, 최근 천재교과서와 YBM 등은 서울행정법원에 교육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이들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소급입법 금지 원칙에 위배 된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지난해 교육부의 법안 개정을 통해 AI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지위가 확보됐으니, 검정을 통과한 AI 디지털교과서에 대해서는 그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지난 11일, 초등학교 5~6학년과 중학교 2학년의 영어·수학에 대한 AI 디지털교과서 검정에 돌입했다. 교육부는 AI 디지털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법이 아직 없어 공고된 검정계획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A 교과서 발행사 관계자는 “아직 교과서 지위가 유지되고 있어 검정에 참여했지만, AI 디지털교과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확신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디지털튜터’ 모집 강행… 교육현장은 혼란 가중

    AI 디지털교과서를 향한 논란이 연일 지속되고 있음에도, 교육부는 디지털튜터 모집에 나섰다. 

    디지털튜터는 초·중·고등학교에서 교사를 도와 수업용 디지털 기기 및 소프트웨어를 관리하고,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활용 수업 등에서 학생의 디지털 활용 격차 해소를 지원하는 전담인력이다.

    지난 9일 교육부는 전국 7개 권역 디지털튜터 양성센터에서 교육생 약 1000명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교육을 거친 후, 올해 디지털튜터를 2000명까지 전국 학교에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AI 디지털교과서의 교육자료 격하가 이뤄진다면 디지털튜터의 실효성 문제가 제기될 확률도 높다. AI 디지털교과서의 미래가 불투명한 현 상황에서, 교육부가 발행사들과 학교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게 아니냐는 평도 나온다. 

    한 초등 교사는 디지털튜터 대해 “교과서 지위가 박탈되면 AI 디지털교과서의 채택률은 더 낮아질 텐데, 전담인력을 양성하더라도 이들이 역할을 할 수 있는 학교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