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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문을 열면 어디서든 사람의 숨결이 느껴져야 한다고 믿었다. 책상 하나, 교실 하나에도 아이들의 숨결이 스며 있어야 하며, 교육은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어야 한다는 것. 팔순이 넘은 지금까지도 오정석 동래학원 이사장이 지켜온 교육의 원칙이다.
오 이사장은 “교육이 집안의 전통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든 환경에서 자랐다”라고 말한다.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자신까지 3대에 걸쳐 교육에 몸담으며 ‘사람을 키운다’는 일이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대학 시절 무보수로 교편을 잡은 경험은 그의 교육철학에 깊은 뿌리를 내리게 했다. 학생과 함께 울고 웃었던 시절은 지금도 그의 언어 곳곳에 살아 숨 쉰다.
1979년, 부친의 별세 이후 학교법인을 물려받았을 당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낡은 건물과 부족한 재정, 불신과 회의 속에서 그는 교육환경 개선에 도전장을 냈다. 당시를 떠올리며 그는 “두려움보다 절박함이 앞섰다”라고 말한다. 그 절박함은 동래학원의 새로운 100년을 여는 원동력이 됐다. 이후 예술고 설립, 예절교육관 ‘벽연재’ 조성, 학생수련장 확보 등 학교의 외연을 확장해왔고, 대한적십자사, 박차정 의사 숭모회 활동 등 사회적 책임에도 발 벗고 나섰다. 그에게 교육은 울타리를 넘는 일이고, 삶을 닮은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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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을 교육과 함께해 왔는데요. 그 시작에는 어떤 어린 시절의 경험과 환경이 있었는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 집은 교육이 마치 집안의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든 환경이었어요. 조부모님과 부모님께서 학교법인 동래학원을 세우고 운영해왔죠. 그 모습 속에서 ‘교육’이라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라, 세상을 밝히는 사명이라는 걸 어릴 때부터 느끼며 자랐습니다.
어릴 땐 넉넉한 식구들 사이에서 따뜻하게 지냈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6·25 전쟁을 겪으면서 세상이 얼마나 크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몸소 체감했죠. 그 혼란 속에서도 학교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하시던 부모님 모습을 보면서, 교육은 그냥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고 신념이라는 걸 마음 깊이 새기게 됐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아버지 심부름으로 학교에 자주 들렀는데요, 그때마다 느껴졌던 경건한 분위기와 책임감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나도 언젠가는 교사가 되어야겠다’라는 마음이 그 무렵 싹텄고, 돌이켜보면 그게 지금의 저를 만든 첫 출발점이었던 것 같아요.
- 어릴 적부터 교육이 자연스러웠다고 했는데, 아버님께서는 어떤 분이었나요? 교육자로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궁금합니다.
제가 교육자의 길을 걷도록 만든 분은 단연 아버지, 故오재진 이사장님이십니다. 평생을 교육에 바치신 분으로, 학교를 단순한 기관이 아니라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터전이라 여기셨어요. 그 신념은 말이 아닌 삶 전체로 전해졌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학교만큼은 결코 놓지 않으셨던 분이에요. 사업이 힘들어지고 재산이 줄어들어도, 교육에 대한 애정만은 더 깊어지셨죠. 그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저도 자연스레 마음을 먹었습니다. ‘나도 반드시 이 뜻을 이어야겠다’고요.
무엇보다도 아버지께서는 늘 “교육은 사람을 키우는 일이고, 그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 말씀이 지금도 제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가업을 잇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믿으셨던 교육의 본질을 끝까지 지켜가고 싶고, 지금도 그 마음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 실제 교직 생활은 어땠어요?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까요?
대학 4학년 때였어요. 아버지께서 농촌 아이들을 위해 세우신 철마고등공민학교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는데, 무보수로 수업을 맡으며 가축을 기르며 생활비를 충당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환경은 열악했지만, 그때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걸 넘어서, 사람을 세우는 일’이라는 걸 깊이 깨달았죠. 제게는 참 소중한 시작이었습니다.
그 후 양산 개운중학교와 울주 상북중·고등학교에서 약 7년간 정식 교사로 일했어요.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던 시간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실수하거나 성적이 안 나왔을 땐 “그건 선생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야”라고 먼저 말하곤 했죠. 그렇게 마음을 열면 아이들도 고개를 숙이고, 결국엔 서로 안고 울며 다시 시작했어요. 그 시절, 지식보다 진심이 더 중요하다는 걸 매일 배웠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제자들이 많습니다. 한겨레신문 사장을 지낸 서형수 국회의원, 기장군수를 지낸 정종복 군수, 음악회로 감동을 전하는 박주근 제자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내가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이 모든 건 교사 시절 저를 이끌어주셨던 교장 선생님 덕분이고, 그 가르침은 지금도 제 안에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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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단에서 보낸 시간이 지금 학교법인을 운영하는 데도 큰 밑거름이 되었을 것 같아요.
그럼요. 젊은 시절 아이들과 함께 호흡했던 시간은 제게 정말 큰 자산이 됐습니다. 수업 기술이나 운영 노하우보다 더 중요한 건, 교육이 결국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는 걸 온몸으로 배운 시기였어요.
그때 깨달은 가장 큰 진리는 누군가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 바로 그게 교육의 본질이라는 점입니다. 지금도 학교법인을 운영하면서 모든 결정의 기준은 늘 같아요. ‘학생과 교사가 중심이어야 한다’, ‘모든 시설과 정책은 아이들의 성장을 위한 발판이어야 한다’. 교사로서 직접 아이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 가질 수 없었던 소중한 통찰입니다.
교단에 있을 땐 책상 하나, 교실 하나가 얼마나 절박하고 소중한 공간인지 절실히 느꼈어요. 지금도 건물 하나를 세울 때면 “이 공간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숨 쉬고, 어떻게 자랄까?”를 먼저 떠올립니다. 또 그 시절 경험은 조직을 이끄는 방식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위에서 끌기보다는 옆에서 함께 걷고, 뒤에서 밀어주는 게 제 스타일이에요. 결국 제가 배운 건 ‘사람을 위한 교육’이었고, 지금 학교를 운영하는 모든 방식도 그 본질로 되돌아가려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 처음 이사장직을 맡을 당시엔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1979년,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제4대 이사장직을 맡게 됐습니다. 당시 상황은 정말 쉽지 않았어요. 복천동에 있던 학교 건물은 60년도 넘은 낡은 건물이었고, 교실 일부는 아이들이 공부하기조차 힘든 상태였죠. 재정도 넉넉지 않아 땅을 사거나 건물을 옮길 여력도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를 이전하겠다고 하니, 주위에선 모두 무모하다고 했고, 가족들도 “아버지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학교를 팔아먹으려 하냐”며 반대했죠. 마음이 많이 복잡했습니다.
그래도 제 마음은 확고했어요. ‘빚은 나중에 갚아도 되지만, 학교는 지금 아니면 못 옮긴다’는 절박함이 앞섰습니다. 교육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 희망을 줄 수 없다는 믿음 하나로 밀어붙였죠.
결국 많은 우려 속에서도 공사를 시작했고, 마침내 새로운 캠퍼스로 이전할 수 있었습니다. 공사가 끝난 뒤 어머니께서 조용히 캠퍼스를 둘러보시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어요. 그 짧은 순간이 제게는 큰 위로이자 확신이 됐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뜻도, 가족의 마음도 이어졌구나’ 하는 그런 순간이었죠. 돌이켜보면, 그 결정은 단순한 이전이 아니라 동래학원이 앞으로 100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방향을 틀어준, 제 인생에서도 가장 힘들고도 뜻깊은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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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이전 이후에도 예술고 설립, 통합 캠퍼스 조성 같은 큰 사업들을 잇따라 해냈어요. 그렇게 큰일들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돌아보면 그땐 어떻게 그 모든 걸 해냈나 싶어요. 1980년대 후반, 복천동에서 부곡동으로 학교를 옮긴 건 단순한 이전이 아니라 동래학원의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큰 결심이었죠. 하지만 여전히 재정은 빠듯했고, 행정 절차도 복잡하고 까다로웠어요. 주위에서는 “도저히 안 될 일”이라고들 했지만, 마음 한켠에서 자꾸 울리더라고요. ‘지금 해야 한다, 이건 기회다’라는 울림이요.
한 번은 해외 연수로 모스크바에 갔다가 리틀엔젤스 예술단 학생들과 같은 비행기를 탄 적이 있었어요. 아이들의 맑은 얼굴과 공연 이야기를 들으며, “왜 서울엔 예술교육을 하는 학교가 있는데 부산엔 없을까? 우리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마침 여중·여고 이전 공사를 하던 때라, 그 타이밍에 예술고 설립까지 함께 추진하게 됐습니다.
지원은커녕 반대가 더 많았고, 형편도 넉넉지 않았지만 그땐 겁을 모르는 젊음 하나만 믿고 밀어붙였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지만, 바로 그 철없던 용기 하나가 오늘날 동래학원의 캠퍼스를 있게 한 시작이었다고 생각해요. 다시 하라면 쉽지 않겠지만, 그때 그 믿음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습니다.
- 예절교육관 ‘벽연재’나 수련장 같은 공간을 마련한 것도 참 인상 깊습니다. 이사장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교육’이란 어떤 걸까요?
교육은 단지 지식을 가르치는 걸 넘어서, 사람을 사람답게 길러내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마음을 기르고, 태도를 가꾸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죠.
1994년, 동래학원 100주년을 앞두고 ‘벽연재’를 지은 것도 그런 고민에서 비롯됐어요. 저희 세대는 어릴 적 한옥이나 초가집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예절과 공동체 질서를 익혔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 문화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전통 공간 속에서 몸으로 예의를 익힐 수 있는 곳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벽연재를 세우게 됐습니다. 그곳은 단순한 체험학습장이 아니에요. 고개 숙여 인사하는 법, 말 한마디에 공손함을 담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공간이죠. 몸의 기억이 마음의 태도를 바꾼다, 저는 그것이 진짜 인성교육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밀양에 만든 학생수련장도 같은 맥락입니다. 자율, 협동, 책임, 공동체 의식 같은 건 책상 위에서만 배울 수 없거든요. 자연 속에서 함께 부대끼며 자라야 생깁니다. 몸도 마음도 함께 자라는 교육, 저는 그런 교육이야말로 진짜 ‘좋은 교육’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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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안팎에서 다양한 사회 활동도 해온 걸로 알고 있어요.
교육은 교실 안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학교 담장을 넘어 사회 전체로 이어져야 진짜라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으로 여러 사회 활동에도 참여해 왔습니다. 대한적십자사나 RCY 활동처럼 어릴 때부터 나눔과 헌신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도록 RCY를 꾸준히 지원해왔어요. 교실 안에서 배우는 것보다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경험이 진짜 인성교육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박차정 의사 숭모회 활동도 같은 맥락이에요.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뜻을 후세에 제대로 전하는 일 역시 교육의 중요한 일부라 생각해 지금도 그 마음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신협 활동은 손덕만 신부님의 권유로 시작했지만, 그 뿌리엔 금융 소외 계층을 돕고자 했던 메리 가브리엘 수녀님의 철학이 있었어요. 저 역시 그 뜻을 잇는 마음으로 기꺼이 참여하고 있고요. 이런 활동들도 저는 ‘또 다른 형태의 교육’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돌아보면 그런 일들이 크게 주목받거나 인정받은 건 아니에요. 때로는 벽에 부딪혀 무력함을 느낄 때도 있었죠. 그래도 아이들이 해맑게 교정을 뛰노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아, 이것만으로도 충분했구나” 싶어요. 교육자의 정체성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것, 그건 제가 사회 활동을 통해 다시금 확인한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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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세월 교육 현장을 지켜왔는데요. 요즘 교육계에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교육은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사람을 중심에 둬야 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도가 달라지고 기술이 빠르게 발전해도 결국 중요한 건 ‘학생 한 사람, 교사 한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만나느냐’에 달려 있어요. 교사로 있을 때나 지금처럼 학교법인을 운영할 때나 그 마음은 늘 같았습니다. 교육은 곁에 있는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함께 성장하려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요즘 교육계에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금 느려도 괜찮으니 아이 한 명 한 명의 눈높이를 끝까지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는 겁니다. 학생이 교정을 웃으며 걷고, 선생님과 따뜻하게 인사 나누는 장면처럼 그런 평범한 하루하루가 바로 교육의 전부이자,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결국 교육은 사람이 사람에게 남기는 가장 깊은 흔적입니다. 그 본질을 잊지 않고, 우리 모두가 함께 그 길을 걸어가면 참 좋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후배 교육자들이나 앞으로 이사장 자리에 서게 될 분들께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결국 우리가 마주해야 할 건 ‘사람’입니다. 교사, 학생, 학부모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죠. 사람을 향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 저는 그것이 어느 시대든 교육의 중심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요즘은 인공지능과 디지털 전환처럼 변화가 빠르게 찾아오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건 ‘사람을 세우는 교육’이라는 본질이에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아이의 눈빛을 읽고 가능성을 믿어주는 건 결국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교육은 사람을 책임지는 일입니다. 때론 그 책임이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너무 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방향만 바르게 잡으면 속도는 조금 느려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끝까지 바라보는 그 마음을 잃지 않는 거예요. 성과보다 신뢰가 오래가고, 말보다 태도가 더 깊게 남는 법이니까요. 그런 마음으로 학교를 지켜주신다면 이미 충분히 좋은 길을 걷고 계신 겁니다. 앞으로의 교육은 저희 세대가 걸어온 길과는 또 다른 모습이겠지만, 그 길의 중심에도 늘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저보다 더 앞에 서 계신 여러분이 새로운 비전을 그려주시길 기대하며, 저는 조용히 그 길을 응원하겠습니다.
오정석 동래학원 이사장 “교육은 사람이 사람에게 남기는 가장 깊은 흔적” (인터뷰)
장희주 조선에듀 기자
jhj@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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