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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이번 주에 읽은 책 속 주인공의 성격이 어때?”라고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돌아오는 대답은 “착해요”다. 책마다 다 다른 주인공들은 사고를 치기도 하고, 해결하기도 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주인공도 있고, 끝끝내 멋지게 해내는 경우도 있다.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보며 느낄 수 있는 감정만큼 성격을 표현하는 말도 다양하다. 이어서 아이들에게 착하다고 생각하게 된 행동은 무엇이었는지 물으면 책 속 상황을 술술 답한다. 그래서 성격이 어떠냐고 다시 물어도 결론은 “착해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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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주고받는 말은 점점 짧아지고 있고, 문장은 예전보다 생기가 사라졌다. 표면을 맴도는 얕은 표현이 늘고, 풍성했던 언어의 맛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아이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어른 또한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이 날마다 줄어들고 있으며, 품고 있던 개성 있는 표현들은 이제 어색한 낯섦으로 남았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인 드라마를 봐도, 소중한 사람과 함께 또 먹고 싶은 맛있는 음식을 만나도 감탄사나 표현은 비슷한 단어와 문장이다. 도리어 낭만적인 표현이 나오면 ‘감성적이다, 오글거린다, 너무 진지하다’ 등으로 대꾸한다. 상대가 마음속에서 고이고이 다듬어 내보인 결과에 굳이 생채기를 낸다.
언어 빈곤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빠르게 변하는 미디어 환경과 손쉬운 디지털 콘텐츠는 ‘장문’에서 점점 멀어지게 했고, 더 빠르고 간편한 정보를 요구하는 습관이 자리 잡았다. 터치 한 번에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요약된 영상과 짧은 글이 범람하는 시대에서 긴 문장을 읽고 그 의미를 되새기거나 곱씹는 일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문제는 이 속도의 편리함이 결코 사고의 깊이를 대신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생각이란 빠르게 달릴 때가 아니라 천천히 걸으며 머무를 때 진정으로 깊어진다.
7살의 독서와 19살의 독서를 비교해 보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더욱 뚜렷하다. 7살은 부모님과 함께 책을 읽는다.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책을 읽으면서 마음껏 물어보고,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이 과정을 거치며 7살 아이는 책 속에서 단어와 문장, 표현을 배우게 되고 그 깨달음을 자기의 말과 글에 담아낸다. 반면 학년이 높아질수록 독해 능력은 단순한 문제 풀이 기술로 오해받는다. 지문 추론 문제를 푸는 아이들을 살펴보면 글 전체를 읽지 않고 정답에 가까운 문장만 찾는다. 다양한 비문학을 접하며 상식을 얻고,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은 사라진 채 객관식 보기만 읽은 후 눈치로 풀고 시간을 아꼈다고 판단한다. 독해의 본질이 사라지고 있다. 주마간산으로 지문을 읽는 행위는 즐거움이 아니라 그저 정보를 채굴하는 노동에 불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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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해력은 남의 글을 읽는 데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직접 쓴 솔직한 표현, 단순한 문장에서 출발해 그것이 왜 그런지를 묻고 답하는 과정을 거치며 언어의 깊이도 자란다. 자신이 쓴 문장 속에서 짜릿한 맛을 느껴본 아이들이야말로 남의 글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갖춘다. 사고와 언어는 언제나 긴밀히 맞물려있다. 교육 현장에서도 단순히 책을 많이 읽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떻게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 지문을 읽고 눈치껏 빠르게 문제를 푸는 독해가 아니라 글 자체를 온전히 느끼고 깊이 고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독서의 중요성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요즘에는 다독이 아니라 정독할 줄 알아야 한다. 읽지 않으면 말이 멈추고, 말이 멈추면 결국 생각도 얕아지고 멈추게 된다. 언어가 살아 숨 쉬려면 다시 깊이를 되찾아야 한다. 그 깊이를 되찾는 순간, 아이들의 읽기와 쓰기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리딩엠의 독서논술] 아이의 말이 짧은 이유? 깊이 있는 독서로 해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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