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인의 커리業] 자녀의 결정적인 진로 경험을 디자인하려면
서동인 교육학 박사
기사입력 2025.05.07 09:40
  • “요즘 아이들은 꿈이 없어요.” 

    진로 상담을 하다 보면 학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다. 하지만 정말 아이들에게 꿈이 없는 걸까 아니면, 꿈을 찾을 수 있는 기회와 경험이 부족한 걸까? 혹시 그들이 삶에서 충만한 경험을 순간순간 만끽했다면 답이 달라지지 않을까?

    예전에는 몇 가지 직업만 알고 있어도 진로를 정할 수 있었다. 나한테 맞춤형인 직업을 찾기 보다 직업의 틀 안에 자신을 넣는 방식의 선택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직업의 수가 수십만 가지로 늘어났고, 기술과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직업 자체보다 '일하는 방식'이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다. 

    이제 진로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자녀가 스스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을 실험하고, 그 안에서 몰입, 흥미, 역량, 가치관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야 진정으로 ‘나에게 맞는 일’을 찾아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 중심의 진로 설계(Career Experience Design)’가 중요해졌다.

    이와 관련해 최근 잡 크래프팅(job crafting)이라는 개념이 직업 세계에서 부각되고 있다. 이는 사람이 자신의 업무를 더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의 내용을 바꾸고, 관계를 재구성하며, 일의 인식 방식을 전환하는 전략이다. 요약하면 일에 맞추는 것이 아닌 일의 의미를 부여하고 나에게 더 잘 맞게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해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개념은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고 구성하는 과정에서도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청소년기의 진로 경험 디자인은 내가 주도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의 조각들을 설계해나가는 잡 크래프팅의 초기 훈련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자녀가 단지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진로를 정하기 쉽지 않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잘할 수 있는지를 직접 ‘경험’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나만의 온전한 것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진로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경험의 축적 속에서 ‘디자인’ 돼야 한다. 직업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경험은 아이의 내면에 오래도록 남아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나침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많은 학부모가 그들의 성공 경험을 기반으로 여전히 자녀가 ‘좋아하는 일’보다 ‘유망한 직업’이나 ‘안정적인 길’에 대해서 우선시한다. 이러한 이유로 자녀들은 자신이 기준이 아닌 남이 그려놓은 진로 설계도 위에서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자신의 강점과 요구가 아닌 부모의 요구대로 의욕도 의미도 잃어버린 채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담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시간에 흘려버리고 만다. 

    자녀의 결정적인 진로 경험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부모가 어떤 환경을 제공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 탐색이 아닌 ‘설계’의 관점으로 전환

    진로 설계란 단순히 직업 이름을 정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어느 날 갑자기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 진로는 의도적으로 설계된 경험을 통해 천천히 윤곽이 잡혀가는 것이다. 자녀가 어떤 활동에 몰입하는지, 어떤 역할에서 활력을 느끼는지를 경험 속에서 발견하고 구성하는 과정으로 유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아이가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무조건 ‘작가’라고 직업을 단정짓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한 다양한 경험 활동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책을 만들고 싶을 수도 있고, 리뷰를 쓰고 싶을 수도 있으며, 독서 모임을 이끄는 걸 좋아할 수도 있다. 직업의 고유 명사가 아닌 활동의 동사 형태로 경험해 나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자녀들에게 유의미한 수많은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 다양한 멘토링의 탐색과 적극적 참여 독려

    다양한 교육 방법 중 ‘멘토링’은 진로 경험을 구조화하고 내면화하는 데 가장 강력한 도구다. 멘토는 때로는 거울처럼 아이의 고민을 비춰주고, 때로는 나침반처럼 방향을 제시해주는 존재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고 해도 부모나 선생님이 하는 말이 먹히지 않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그러나 자신보다 약간 앞서가 있는 멘토를 통한 자극은 얘기가 다르다. 이미 알고 있는 메시지도 그들을 통한다면 훨씬 그들에게 와닿기 마련이다. 청소년들에게는 메시지의 문제가 아닌 메신저의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멘토링은 관계 크래프팅에서의 강력한 자극이다. 또래뿐만 아니라 자신보다 앞선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관계를 통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습득한다. 멘토링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서, 자녀가 미래를 실감 나게 상상하고 현실과 연결 지을 수 있게 도와주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더 나아가 멘토를 통해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부분을 찾고 동기부여도 받다 보면 그런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목표 설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멘토의 역량과 역할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회성이 아닌 다양한 멘토링 기회를 찾아보고 제공해줌으로써 그런 편중된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 

    ◇ 경험을 의미화할 수 있는 질문 던지기

    결정 경험으로 만들려면 결정화(crystallization) 과정이 있어야 한다. 단단한 결정 구조로 남기기 위해서는 어떤 활동을 한 후에 “왜 재미가 있었는지?”, “다시 한다면 어떤 것을 바꾸고 싶은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이게 너한테 어떤 의미였는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단순히 체험에서 끝나지 않는 결정 경험이 되려면 그 순간의 경험들에 대해 깊게 뇌리에 각인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경험의 각인은 성찰을 통해 경험으로 남겨야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더라도 그것을 내 것으로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없으면 단순한 하나의 추억거리로만 남게 된다.

    ◇ ‘경험의 퍼즐’ 맞추기

    스티브 잡스가 했던 말 중에 ‘connecting the dots’라는 말은 경험들(dots)을 엮어 자신만의 이야기로 만들라는 중요한 메시지다. 진로는 수많은 경험 조각들이 쌓이고 연결되면서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된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그 아이가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을 설계해주고, 멘토와 연결해주며, 그 경험을 해석하고 내면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험 설계자(Experience Architect)의 역할을 해야 한다. 더 나아가 그 과정에서 자녀 스스로 경험을 주도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도록 독려하며, 시행착오 과정에서 있도록 주도하는 것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자녀 미래의 진로를 창조하는 가장 강력한 시작점이며, 자녀 스스로 자기 확신을 갖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