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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업 모먼트’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본업 모먼트란 평소의 생활 모습과 달리 자신의 일에 집중하면서 실력을 발휘하거나 몰입할 때 보이는 찰나의 모습을 의미한다. 주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재미있고 편한 모습을 보이다가 자신이 맡은 일을 하게 되면 마치 또 다른 사람으로 느껴지게 하면서 전문가다운 진정성 있는 면모를 보여주는데, 이처럼 주로 누군가의 예상치 못한 반전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활용된다. 이와 같은 모습들이 타인으로 하여금 그 사람의 숨겨진 매력에 빠져들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본업 모먼트를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일하면서 자신만의 아우라를 뿜어낸다. 자신감 넘치는 눈빛과 높은 에너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성취감과 만족감이 충만한 모습이 자신도 모르게 드러난다. 본업을 통해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들은 자기가 속한 분야에서 소위 ‘물 만난 고기’가 된다. 적어도 삶의 장면에서 일은 그들에 있어서 남다른 의미를 갖게 되며, 이와 같은 삶의 순간들이 모여 ‘행복 모먼트’가 축적된다.
이러한 본업 모먼트를 발견하고 발휘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필자가 그동안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연구하고 만나보면서 그들의 성장과정과 역량에 대해 지금까지 연구하면서 발견했던 공통점은 결국 자신만의 고유한 적성을 찾아낸 사람이었다.
적성은 사전적 의미로 ‘어떤 일에 알맞은 성질이나 적응 능력. 또는 그와 같은 소질이나 성격’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aptitude’로 apt(적합한)이라는 라틴어 어원에서 출발한다. 이 의미는 손으로 어떤 대상에 적당한 압력을 가해, 쥐고 있는 것이라는 뜻으로 마치 펜을 적당한 압력으로 놓치지 않고 잡은 이미지로 연상할 수 있다. 여기에 핵심은 ‘알맞은/적합한’이라는 의미이다. 적성은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고, 딱 맞는 분야와 영역에서만 발휘되는 것이 핵심이다.
그 일에서 나만의 온전한 주파수를 찾게 될 경우, 무서울 정도의 몰입과 빠른 학습, 그리고 그로 인한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노력 대비 효율성도 높아지고, 남들에 비해 덜 지치며, 그 과정을 즐기게 된다. 논어에서 언급된 ‘어떤 것을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는 의미는 전문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즐기는 자(樂之者)’의 의미에 내포된 것은 적성에 맞는 사람으로 해석된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와 영역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은 진정한 자아실현에 필수조건이 된다. 인간의 전문성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시간이 소요되며, 그 사이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수많은 좌절과 시련 극복이 필수 요건이므로, 그사이에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동기를 유지하려면 스스로 그 안에서 인생의 3미(흥미, 재미, 의미)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3미가 아닌 외부적인 보상(돈, 명성, 학벌 등)를 먼저 생각했다면, 슬프게도 그 영역 안에서 전문가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즉, 일시적으로 반짝할 수는 있으나 꾸준히 머무르며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
잘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인 일본 잉어(코이)의 이야기는 적성 발견의 중요성과 일맥상통한다. 코이는 어항에 넣어두면 5~8㎝밖에 자라지 못하지만, 연못에 넣어두면 25㎝까지 크고 강물에 방류할 경우 연못의 5배에 가까운 120㎝까지도 성장한다. 스타나 전문가가 된 이들은 나에게 맞는 강물을 발견하기 위해 찾아 나섰고, 다행히 자신만의 강물에서 잘 성장해 분야의 두각을 나타내는 유일무이한 코이가 된 것이다.
만약 또 다른 차원의 우주가 있어 손웅정이 아들 손흥민에게 좋아하는 축구 말고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학교 공부를 강조했다면 아마 지금의 세계적인 축구선수 대신 평범한 한 학생으로 살지 않았을까? 프로게이머 페이커가 게임 분야가 아닌 누군가의 강요로 운동선수를 하게 되었다며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지금의 명성을 날릴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가장 잘못된 것 중 하나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에 대한 영역과 분야를 찾는 것에 대한 노력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 점이다. 학습자의 개인적인 요구와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성적을 잘 받고 나서 생각해 보자’라는 안일한 사고방식은 결국 평범한 사람(凡人)을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학습 능력이 뛰어나 남들이 좋다고 하는 환경에 놓여있다고 해도, 자신에게 맞는 강물이 아니면 뛰쳐나가기 마련이다.
남들이 그토록 원하는 명문대를 가더라도 전공 적성과 맞지 않아 좌절하고 학업에서 이탈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고, 4년의 찬란한 청춘의 시간을 ‘마지못해 때우며’ 후회와 절망, 스트레스로 보내는 이들 또한 상당수 존재한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적성의 씨앗을 발견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자신이 있는 환경에 따라 성장하는 코이처럼 우리 자녀들도 각자의 적성에 맞는 분야와 영역을 찾아 주는 것이 가장 선행되어야 할 미션이다. 적성의 발견은 자녀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해 후회 없는 미래를 위한 가장 가치 있는 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녀의 본업 모먼트를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찾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우선 가장 먼저 자녀의 현재 상태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어디가 불편하거나 아플 때 병원에 가면 진단을 받는 것처럼 자녀의 적성 발견도 진단을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자녀의 적성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단순한 진로, 진학, 직업흥미 검사를 넘어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면밀한 진단이 필요하다. 특히 최근 AI를 적용한 맞춤형 진로 검사 등을 통해 자녀의 특성과 강·약점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 그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진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여 자녀가 가진 3미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진단 결과를 통해 스스럼없는 대화를 통해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주변 조력자의 세밀한 관찰과 열린 질문을 통해 발견해야 한다. 자녀 적성이라는 미지의 세계에서 가장 인접한 부모와 선생님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그가 어떤 사물과 대상에 관심을 가지는지 실마리를 잡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단순히 잠깐 좋아하는지를 넘어 얼마나 지속적으로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과정에서 얼마만큼 잘하고 싶어 하는 지를 세밀한 관찰을 통해 발견해야 한다. 잘하려는 것만 찾지 말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일, 눈빛이 반짝이고 몰입하며 열정이 묻어나오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무엇을 할 때 가장 큰 연료가 되는 열정의 발견이야말로 부모의 가장 큰 과업 중 하나이다. 부모가 원하는 정해진 답이 아닌 열린 질문들을 통해 그만의 진짜 적성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자신 스스로와 경험을 정의할 수 있는 다각도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정작 공부와 세상에서 요구하는 능력은 있으면서 막상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자신을 온전하게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자신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 사소한 경험이라도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등 그 경험의 정의를 통해 자신을 알아갈 수 있도록 독려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부모가 원하는 자녀 상에 대한 정답을 요구하기 보다는 자녀 스스로 인식한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것부터 출발할 수 있도록 존중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모가 조급해하거나 실망한 모습을 보일 경우, 아이는 자신만의 본업 모먼트를 숨기고 만다.
누구나 각자가 가진 자신만의 재능이 발현되어 삶의 장면에서 수많은 행복 모먼트가 넘쳐날 수 있는 그때가 오길 바란다.
오피니언 전문가 칼럼
[서동인의 커리業] 자녀의 ‘본업 모먼트’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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