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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여행을 통해 아이는 새로운 환경을 탐색할 기회를 얻고,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접하면서 창의성과 사회성을 키울 수 있다. 여행 중 경험하는 다양한 활동은 학습 동기를 자극하고,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실질적인 교육 효과를 제공하기도 한다.
최근 책 <잘 키우고 싶어서 아이와 여행하는 중입니다>를 집필한 정미연 작가는 “가족여행이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 아이들의 성장과 교육, 나아가 진로 개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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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책 <잘 키우고 싶어서 아이와 여행하는 중입니다>를 집필했죠.
“대학에서 관광학을 전공했고, 20년 넘게 여행 분야에 있다 보니 언젠가는 여행 관련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해왔어요. 그게 자녀교육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요. (웃음)‘관광(觀光)’이라는 말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빛을 본다’라는 뜻입니다. 여행 가면 새로운 곳에서 반짝이는 경험을 많이 하니 딱 들어맞는 표현이죠. 뜻밖에도 여행이 아이의 성장을 밝혀주는 눈 부신 빛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4년 전, 둘째 아이가 발달지체를 판정받고 특수교육대상자로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 처음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지만, 저는 아이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거기서 최고의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믿고 격려하는 부모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아이의 관심사를 따라 여행하다 보니 아이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서, 3년 만에 모든 발달지표가 ‘정상’을 가리키게 됐습니다. 언어, 인지, 사회성, 생활 습관을 비롯해 대·소근육 발달, 교과 학습, 글쓰기, 진로와 환경교육까지 모든 것이 여행과 맞닿아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가족의 ‘여행 사교육’ 방식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어가던 아이를 걷고 뛰게 한 여행법이니, 평범한 아이라면 날아오를 거예요.”
─ 아이에게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 교육적으로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막연한 것 같아요.
“미래세대는 현 인류 최대과제인 ‘기후위기’ 영향권 아래에서 부모 세대는 상상 못 할 새로운 직업을 갖고 살아가게 될 거예요.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18세기 영국 귀족은 대학에 가는 대신 인솔 교사와 함께 ‘그랜드 투어(외국의 문화, 언어, 선진기술 습득 등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를 떠났습니다. 대학 교육과정이 시대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세상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요즘이야말로 그랜드 투어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각 가정에서 아이 맞춤형 여행 사교육을 시작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학교 현장 체험학습과 여행사 패키지 상품은 내 아이의 흥미와 수준에 꼭 맞는 여행경험을 제공해주기 어려우니까요.”
─ 그렇다면 아이와의 여행을 계획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영유아 시기 여행은 배움의 목적보다는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는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세요. 그 시기 여행경험은 구체적인 기억보다는 좋은 정서로 남습니다.
학령기 아이와의 여행은 교과서 속에 답이 있어요. 교과서의 구체적 내용과 학습 목표까지 알고 가면 더욱 좋겠지만, 단원별 목차만 훑고 가도 여행지 선정에 도움이 되고 아이와의 대화 소재도 풍성해집니다.”
─ 여행지를 선정할 때 기준이 궁금합니다.
“여행지 선정의 첫 번째 기준은 아이의 관심사입니다. 아이들은 흥미를 느낄 때 가장 잘 배울 수 있기 때문이죠. 여행지를 정하고 나면 어디를 가도 산과 유적이 있고 중심지와 시장도 있어서 그 안에서 얼마든지 교육적으로 엮을 부분을 찾을 수 있어요.
아이에게 특별한 관심 분야가 없다면, 함께 지도를 보며 여행지를 고르거나 ‘근처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해서 아이에게 가고 싶은 곳을 정해보라고 하는 것도 좋습니다. 아무래도 자기가 고른 장소에는 좀 더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니까요. 아이가 선택한 여행지에 다녀온 다음에는 ‘네 덕분에 멋진 곳을 알게 돼 정말 즐거웠다’라고 이야기해주세요. 다음번에는 더욱 자신감 있게 여행지를 고르고, 자기의 취향과 관심사를 드러내게 될 거예요.”
─ 아이의 관심 분야를 반영한 여행 계획을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행지가 정해졌다면, 아이와 함께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며 각자의 여행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보세요. 여행은 부모에게도 소중한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니, 너무 아이 위주로만 다니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결국 모두에게 즐거워야 지속 가능한 법이니까요. 각자 가고 싶은 장소를 지도 앱에 저장해두면 여행 동선이 한눈에 보입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 맞춤형 여행 일정을 만들어 보세요.”
─ 아이가 여행 중 흥미를 잃거나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일 수도 있잖아요.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은 자유롭다는 거죠.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면 그것으로 이미 여행의 목적은 달성한 거예요. 파리 여행을 앞두고 아이들과 함께 유명 화가와 작품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습니다. 나중에 미술과 사회 교과에서 만날 수많은 작품을 실제 볼 수 있는 기회이니 엄마 입장에서는 꽤 공을 들인 거죠. 그렇지만 아이들은 미술관과 박물관에 갈 때마다 아주 지루해했어요. 오히려 박물관을 벗어나 근처 공원을 산책하다가 한국에서는 상당히 희귀한 새인 쇠물닭을 발견하곤 흥분하기도 하고, 베르사유에서는 정원 호숫가에서 캐나다구스 무리를 쫓는 데 대부분 시간을 보냈어요. 그 순간들이 아이들에게 인상적이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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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전후로 아이와 어떤 활동을 하면 더욱 효과적인 경험이 될까요?
“여행에도 예습과 복습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책과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통해 여행지와 관련된 배경지식을 쌓고(예습), 이러한 지식을 기반으로 깊이 있게 여행을 즐기고(현행), 글과 그림으로 여행을 기록하며 경험을 재구성(복습)해보는 거죠.
여행을 떠나면 저희 아이들은 하루의 마무리로 ‘여행신문’을 작성합니다. 여행신문은 ▲그 날 있었던 가장 인상 깊은 일을 소개하는 ‘오늘의 뉴스’ ▲여행 중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을 기록하는 ‘오늘의 발견’ ▲그림으로 하루를 기록하는 ‘오늘의 4컷 만화’로 구성돼 있어요. 일자별로 사진을 한 장씩 골라 붙여두는데, 언제 꺼내 봐도 다시 그날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멋진 타임머신입니다.
수능에 논·서술형 평가 도입이 논의되면서 글쓰기에 대한 관심 역시 뜨겁죠. 여행신문은 아이들이 글쓰기에 흥미를 갖게 하는 좋은 마중물입니다. 하루종일 새로운 경험을 하며 즐겁게 지내고 나면 아이들의 머릿속이 하고 싶은 이야기로 가득 차기 마련이거든요.”
─ 아이의 관심사를 어떻게 하면 진로와 연결할 수 있을까요?
“일단 아이가 뭔가에 관심을 보인다면, 그 호기심의 씨앗이 쑥쑥 커갈 수 있게 거름(관련된 콘텐츠)과 물(새로운 여행지)을 듬뿍 주세요. 저희 둘째 아이는 어느 날 차 안에서 우연히 하늘을 까맣게 뒤덮을 만큼 많은 철새를 보고 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그 새의 이름을 궁금해하며 새 관련 책을 찾아보고, 쌍안경을 들고 주말마다 탐조 여행을 가고, 여행길에 마주친 새로운 새가 있으면 또 그 새와 관련된 책과 영상 콘텐츠를 찾아봤어요.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아이의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심화되고 확장됩니다.
저희 아이의 경우 새에서 시작해서 새의 먹이가 되는 물고기와 곤충, 야생동물과 환경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관심 분야가 생겼지요. 아이의 장래 희망은 해양 생물학자예요. 자기가 어른이 되었을 때 연구할 생물이 남아있지 않을까 걱정하며 어린이 환경모임에 참여하고 있고, 주말에는 해안가 쓰레기를 주워요.”
─ 교과과정과 연결할 수 있는 여행도 계획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저는 아이들 교과서를 별도로 구매해서 책장에 꽂아두고 수시로 펼쳐봅니다. 요즘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여행지를 고르는 ‘눈’이 생기고, 아이와 나누는 대화의 질이 달라지거든요.
공부에는 왕도가 없지만, 사회·과학 학습에는 여행이라는 경치 좋은 지름길이 존재합니다. 학교에서 다양한 고장의 생활 모습을 배울 때는 근처 산촌이나 어촌마을로 여행을 가고, 과학 시간에 물질의 성질에 대해 배울 때는 유리박물관에 가서 갓 달궈진 말랑말랑한 유리를 입으로 불어 화병을 만드는 체험활동을 해보는 거죠. 교과서와 문제집을 통해 무작정 외우고 익힌 지식은 손안의 모래처럼 금세 빠져나가지만, 경험으로 얻은 지식은 바위처럼 단단합니다.”
─ 여행을 통해 배운 내용을 학교 공부에 연관 짓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여행 예습-현행-복습의 3단계를 밟았다면, 이제 부모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이 경험을 학교공부와 연결하는 것은 이제 아이들의 몫이에요. 방학을 앞두고 아이들이 교과서를 집에 가져오는 시기가 되면 한 번씩 살펴보는데, 우리 가족의 여행경험이 녹아 있는 문장을 발견하면 뭉클해지곤 합니다.
저는 교육열이 높은 부모이고, 나중에 아이들이 공부를 아주 많이 하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사회·과학 교과와 독서, 글쓰기는 공부가 아니라 ‘놀이’의 영역으로 남겨두려 노력하고 있어요. 여행은 놀면서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저희 아이들은 문제집을 푸는 대신, 여행지에서 온몸으로 ‘진짜 세상’을 배웁니다.
아이들이 사회‧과학을 어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낯선 어휘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에요. 여행하면서 슬쩍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과 관련된 어휘나 개념을 이야기해주세요. 나중에 학교에서 관련 내용을 배울 때 여행의 순간이 함께 떠오를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행복한 예습이죠”
─ 아이와 함께 여행할 때 추천하는 활동이나 프로그램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기후위기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어요.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로컬푸드를 소비하고, 많은 곳에 가기보다는 한 지역에 최대한 오래 머무르는 ‘지속 가능한 여행’을 시작해 보시길 바랍니다. 산과 바다를 여행할 때는 집게나 장갑을 챙겨서 쓰레기를 줍고, 사람들이 무심코 버린 쓰레기가 야생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이와 이야기 나눠보세요. 아이의 환경 감수성이 무럭무럭 자라날 거예요.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도심의 아파트에서 자라나기 때문에 여행을 통해서라도 자연을 최대한 많이 접해야 합니다. ‘교육여행’에 관한 대표적 고정관념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면 아이에게 무조건 유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책에는 아이들이 독일의 자연 놀이터를 경험한 이야기가 담겨있는데요, 색깔도 없고 놀이기구도 별로 없는 그곳에서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새로운 놀이를 만들며 몇 시간을 뛰어놀았습니다. 박물관이 정해진 주제를 정해진 방식으로만 경험할 수 있는 ‘한국식 놀이터’라면, 자연은 창의적 상상의 공간이자 제약 없는 배움이 이루어지는 ‘독일식 놀이터’입니다. 주의 집중력과 과제집착력은 책상에서 길러지는 게 아닙니다. 바위틈에서 말미잘 하나를 오래도록 관찰해본 아이가 진득하게 앉아 공부할 수 있고, 웅덩이에서 뜰채 하나로 30분간 사투하며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본 아이가 어려운 수학 문제에 도전할 수 있는 법이죠.”
─ 끝으로 책 <잘 키우고 싶어서 아이와 여행하는 중입니다>를 읽을 부모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부탁드립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를 잘 키우고 싶죠. 하지만 아이의 대학 입시 결과가 부모의 성적표처럼 여겨지는 경쟁적 현실 앞에서, 우리는 자꾸 아이에 대한 사랑을 사교육비로 환산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결과, 요즘 아이들은 너무 빨리 사교육을 시작하고, 과도한 선행학습에 시달리죠.
육아는 기본적으로 한 아이가 독립된 성인으로 성장할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입니다. 육아의 본질을 ‘시간’으로 본다면, 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교과 중심의 사교육이 이른바 ‘묻지마 투자’라면, 여행은 결과와 보상이 확실한 투자입니다. 사교육의 효과는 당장 측정하기 어렵지만, 여행의 결과는 ‘가족의 추억’이라는 뚜렷한 형태로 남잖아요. 아이가 가족여행에 기꺼이 동행해주는 시기는 생각보다 짧을지도 몰라요. 아이가 방문을 걸어 잠그기 전에 아이와 반짝이는 추억을 많이 만드시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아이가 인생의 어두운 골목을 헤매고 있을 때, 그 빛이 아이를 다시 일으켜 세울 거예요.”
☞ 정미연 작가
여행업계 종사 18년 차 직장인이자 초등학생 남매를 양육하는 워킹맘이다. 하나투어 해외여행 인솔자, 여행신문 객원기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위촉연구원을 거쳐 현재 한국관광공사에서 새로운 여행을 기획하고 홍보하는 일을 한다. 엄마가 되고 나서는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환경에 관심을 두고 키즈여행연구회를 만들어 관련 콘텐츠를 개발했다. 해외 지사 주재원으로 근무할 때는 현지 가족들을 위한 한국 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해 호응을 얻었다. 귀국 후 둘째 아이가 발달지체 판정을 받으면서 여행 영역에 학습을 접목한 새로운 여행법으로 아이의 놀라운 성장을 이끌어냈으며, 이 과정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해 많은 이들에게 큰 공감을 일으켰던 바 있다.
정미연 작가 “여행은 아이가 관심사를 발견하는 최고의 방법” (인터뷰)
장희주 조선에듀 기자
jhj@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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