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엠의 독서논술] 근접 발달 영역에 대한 이해
손지혜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삼성교육센터 원장
기사입력 2025.02.12 09:00

손지혜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삼성교육센터 원장

  • ‘선행 학습’에 대해서는 세 가지 정도의 시선이 있다.

    첫째, 선행 학습은 사교육을 조장하는 일이며, 겉핥기식의 선행은 학생들에게도 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 

    둘째, 영화나 책을 한 번 볼 때와 두 번 볼 때 이해하는 정도가 다른 것처럼 선행 학습은 난이도 높은 학습을 대비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다. 

    셋째, ‘내가 상급 학년 과정을 공부했다’는 허영심만 부추기고 대충대충 훑어 넘기는 수업은 좋지 못하지만, ‘꽤’ 제대로 이해하며 공부한다면 도움이 된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상당히 많은 양의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고등 교육과정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 손지혜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삼성교육센터 원장.
    ▲ 손지혜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삼성교육센터 원장.

    과목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으나, 대부분 세 번째 정도의 시각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제는 ‘내가 현재 선행 학습을 해야 하는 시점인지, 아닌지’다. 자신이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는 객관화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그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의 조언을 들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특정 과목의 전 과정을 통과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지나온 단계에 대해서 안목이 생기기 때문이다. ‘A 단계’에서 ‘B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목표라고 할 때, 해당 학생이 A 수준을 좀 더 충분하게 수행하는 것이 필요한지, B 단계로 도전을 하는 것이 필요한지 좀 더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다.

    이것에 대해 이론화시킨 표현이 있는데, 바로 ‘근접 발달 영역’이다. 근접 발달 영역이란, 아동이 스스로 해결하거나 성취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보다 인지수준이 높은 또래나 성인의 도움을 받아 과제를 해결하거나 성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능력 간의 차이를 말한다. 교육심리학자 비고츠키(Vygotsky)는 아동이 현재 수준에서 다음 수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근접 발달 영역’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보았다.

  • 책을 선택할 때에도 ‘근접 발달 영역’의 파악이 필요하다. 앞 단계를 충실하게 거쳤다는 가정하에 다음 단계로의 시도가 이루어지면 좋기 때문이다. 초 1, 2학년 때 양장본을 통해 ‘충분히’ 즐기면서 책을 읽었다면, 40~60쪽 내외의 도서(문학)를 통해 글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좋다. 이 또한 제법 많은 양을 접했다면 이제 100쪽 내외의 도서에 도전해 볼 차례다. 이때는 비문학 도서들도 슬슬 시작해 보는 것이 좋다. 100쪽도 거뜬히 읽어낼 수 있는 상황이라면 150~200쪽 분량의 문학 도서와 비문학 도서를, 그 후에는 심도 있는 내용과 주제의 책들에 도전해 보면 좋다.

  • 그러면 초등 고학년, 중·고등학생, 성인도 얇은 양장본 동화로부터 독서를 시작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학교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며 접한 텍스트 형식의 자료들(교과서, 업무 자료, 뉴스 기사 등)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디딤돌 삼아 100쪽 내외의 도서로 책 읽기를 시작할 수 있다.

    복잡하고 광활한 인간을 이해하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파악하는 다채로운 시각과 방법을 배우는 데 있어서 책은 꽤 도움이 된다. 도서관과 서점에서 자유롭게 책을 고르면서 주도적인 독서를 해나가는 것이 너무 바람직하지만, ‘근접 발달 영역’에 맞는 도전을 해 줄 전문가가 있다면 한 걸음 더 깊고 넓은 세계로 발을 디딜 수 있을 것 같다. 더욱이 그 전문가가 나를 진정으로 아껴주고 이해해 주는 이라면 신나게 달려 발돋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