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엠의 독서논술] 낮아진 주의력을 끌어올리는 방법
김은경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대치도곡교육센터 부원장
기사입력 2025.01.22 09:39
  • 얼마 전의 일이다. 산책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뭔가 바스락대는 느낌이 들어 잽싸게 고개를 돌려 보았다. 이런! 후투티 한 마리가 부지런히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갈고리처럼 긴 부리, 검정과 하양의 줄무늬 날개, 경계할 때 왕관처럼 커지는 머리 깃털 장식. 소년이었던 윤무부 박사를 반하게 만든 그 새 말이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부주의했던 탓일까? 나도 모르게 바투 다가가자 후투티는 머리 깃털을 왕관처럼 한 번 세우더니 이내 날아가 버렸다. 내가 낯선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였듯, 녀석도 나의 수상한 몸짓을 눈여겨보았으리라.

  • 김은경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대치도곡교육센터 부원장.
    ▲ 김은경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대치도곡교육센터 부원장.

    주의는 진화론적으로 꼭 필요한 것이다. 한번 상상해 보자. 작고 귀여운 토끼가 열심히 풀을 뜯고 있다. 이때 저 멀리서 스르르 뱀이 다가온다. 만약 토끼가 뱀의 움직임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그날 뱀은 만족스러운 식사를 즐길 것이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날카로운 이빨도, 그렇다고 효과 빠른 독도 없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항상 경계 태세를 갖추어야만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주의를 불러일으키는 자극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 문제다. 소위 우리는 ‘주의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의 알람으로 시작되는 우리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니 광고가 흘러나온다. 자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나 하고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다가도 광고에 노출된다. 전화, 메시지뿐만 아니라 각종 앱의 알림, 심지어는 동네 마트의 할인행사 소식까지, 세상의 모든 자극은 쉴 새 없이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주의의 과잉은 역설적으로 주의의 결여를 가져왔다. 주의할 게 너무 많아지자 오히려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되었다. 옅은 주의의 질 때문에 우리의 생각은 파편화되고, 글을 읽을 때도 훑어 읽게 되었다. 서둘러 문자 메시지를 읽다가 내용을 잘못 이해한 경험을 글쓴이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 그렇다면 이런 낮아진 주의의 질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 인지신경학자이자 아동발달학자 매리언 울프의 저서 <다시, 책으로>에 나온 실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스라엘의 과학자 타미 카치르는 초등학교 5학년생들에 관한 대규모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동일한 이야기를 인쇄물로 읽느냐, 스크린으로 읽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독해력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디지털 읽기를 선호한다고 했지만, 자신이 읽은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인쇄물이 더 나았다.

    인쇄물에 더욱 주의를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읽을 때 우리 두뇌에서는 다음과 같은 반응들이 일어난다. 먼저 이미지화다. 세부 묘사를 통해 우리는 머릿속에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동시에 주인공의 처지에 공감하는 단계에 이른다. 또한 폭넓게 제대로 책을 읽게 되면 많은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된다. 이후 자신이 지니고 있는 배경지식을 활용해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를 통해 나만의 통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스포츠 정신의학 전문의 한덕현은 그의 저서 <집중력의 배신>에서 각종 챌린지 영상과 같이 짧은 콘텐츠를 반복해서 시청하는 인간의 성향은 이미 오래전부터 발현된 유구한 특징이라고 말한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아에게 딸랑이를 반복해서 흔들어줄 때, 아기들이 웃으며 반응하는 것처럼 성인 역시 이러한 반복과 변형을 반복한 놀이에서 재미를 느낀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애써 못하게 막을 게 아니라 그건 그것대로 인정하고 진득하게 주의 집중을 할 수 있는 독서 환경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방학 오전 시간 동안 학생들과 책 읽는 수업을 했다. 교사는 뒤로 빠져 있다. 모르는 단어에 대해서 물으면 대답해 주는 정도다. 학생들이 스스로 읽을 책을 골라 목록표에 적고, 책을 읽는다. 그리고 다 읽은 뒤에는 적절한 활동지에 그림이나 글로 책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는 게 전부다.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이 주체적으로 참여한다. 

    위와 같은 수업을 하기 전 ‘학생들이 지루해하면 어쩌지?’하는 걱정도 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기 전에 학생들에게 수업에 대한 평가를 요청했다. 

    초등 1학년 여학생은 “제가 책벌레가 되는 걸 도와줬어요”라고 말했다.

    초등 1학년 남학생은 “(내가) 책을 읽게 만들었다”라고 평가했다.

    초등 2학년 여학생은 “책 읽기가 더 좋아졌다”고 했고, 초등 2학년 남학생은 “(계획했던 권수만큼)책을 다 못 읽어서 아쉬웠습니다”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초등 2학년 남학생은“(활동지를 작성하면서) 책에서 빼먹었던 점을 다시 볼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초등 3학년 여학생 “좀 더 다양한 책을 읽으며,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으며, 다른 초등 3학년 여학생은 “책을 많이 읽게 돼 좋았다”라고 강조했다.

    한 초등 5학년 남학생은 “아침에 일어나면 집에서는 스마트폰을 보는데, 여기서 책을 읽게 돼서 좋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마 집에서 혼자 있었다면 스마트폰을 켜거나 패드를 들었을 테지만, 모두가 조용히 책을 보니 자연스럽게 도서관처럼 책을 펼치게 됐다. 그리고 장난꾸러기들은 차례로 책 속에 풍덩 빠져들었다. 

    긴 시간 집중하며 주의의 질을 올리는 연습으로 이만한 것이 있을까? 물론 가정에서도 가능하다. 가족이 모두 모인 늦은 저녁 시간,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책 읽기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