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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국민 독서실태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중 최근 1년 내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중 1권 이상 읽은 비율을 의미하는 종합 독서율의 추이가 흥미롭다. 성인의 종합 독서율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학생의 종합 독서율은 상승으로 바뀌었다.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독서 시간이 늘면서 아이들이 책을 손에 쥘 시간이 늘어난 점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성인은 1년에 평균 4권의 책을 읽고, 학생은 36권을 읽는다. 성인과 학생 모두 본인의 독서량이 부족한 것은 인식하고 있으나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 데다 다른 매체의 유혹은 강력하다. 책 읽기는 자꾸 뒷순위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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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마음속으로는 인지하고 있으나 차마 행동으로 잇지 못하던 와중에 스웨덴 한림원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첫 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니! 벅찬 마음을 안고 드디어 발걸음을 내디딘다. 서점을 향하고 책을 손에 쥐기 시작하면서 신조어 ‘텍스트힙’도 탄생했다. 책을 손에 쥐고 있는 것, 책을 읽는 것은 멋진 일이 되고 ‘힙’한 일이 된다. 텍스트힙 열풍이 불면서 주변을 둘러보면 책을 손에 쥔 사람이 심심찮게 늘어난 모습이 보인다. 소셜미디어에도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어떤 종이책과 함께했는지 기록해 둔 게시물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작년 이맘때쯤 필자가 썼던 칼럼에서 ‘고른 책을 꼭 끝 페이지까지 넘겨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썼던 기억이 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일부는 텍스트힙 열풍을 타며 보여주기식으로 책을 구매하고 독서를 하는 것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얼마든지 보여주기식 독서를 해도 된다. OTT 속 알고리즘이 왜 있겠는가. 내가 은연중에 이야기 나눈 소재가 광고에 바로 뜨는 것도, 어색한 자본주의 미소를 띠며 물품을 사용하고 부자연스럽게 칭찬하는 PPL도 모두 단순 노출을 노린 것이다.
소비자가 동일한 광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광고 태도 및 상표 태도가 호의적으로 형성된다. 이는 정보처리가 명료화되어 태도가 변하는 것이다. (Lutz K, 「Effects of interactive imagery on learning」,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1977, 493-498) 당장 유행을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사서 덮어놨던 책도 마찬가지다. 책꽂이에 꽂혀 있거나 인테리어 소품이 되더라도 상관없다. 다른 사람의 소셜미디어 게시물에서 지나가며 얼핏 본 책에 내 시선이 닿았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종이책에 호의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과정이 짜릿하다. 당장의 완독이 필수는 아니다. 다시 한번 변하지 않은 작년의 생각을 꺼내 본다. 지금 다 못 읽었던 이 책은 다음 날의, 1년 후의 내 인생 책이 될 수도 있다.
표지가 예뻐서, 유행을 따라 우연히, 추천을 받아서, 앞의 몇 페이지를 읽었더니 흥미로워서 내 손으로 들어온 책은 이미 절반 이상의 성공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작가의 의도를 오롯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글에 대한 느낌과 분위기를 기웃거리기만 해도 괜찮다. 그렇게 이 책 저 책에 눈인사를 건네다 보면 자연스럽게 페이지 속의 화법에 눈이 간다. 단어가 보이고, 문구가 보이고, 마음에 닿는다. 멋진 문장을 괜스레 따라 적어본다. 이 과정이 모여 나의 독서 훈련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 입맛에 딱 맞는 이야기를 만나 끝장을 본다. 마지막에 닿기까지 속력은 제각각이다. 어디까지 성공했느냐도 제각각이다. 다 괜찮다. 텍스트힙! 이미 ‘책을 손에 넣은 나’만으로도 추앙한다. 수업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책 읽기가 힘들었다고 시무룩한 학생에게 책을 펼친 시간과 과정을 묻고 다 읽었는지 물어본다. “다 읽긴 읽었는데…”라며 우물쭈물 자신 없는 뒷말이 이어진다. 학생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눈을 크게 뜨고 활짝 웃으며 칭찬한다. 책을 손에 넣고 다 읽은 것만으로도 이미 멋진 아이가 된 것이다. 어깨가 올라간 상태로 수업을 시작하면 이제 그 뒤는 책에 대한 이해도, 내가 읽으면서 알지 못했던 부분도 더 마음 깊이 와닿는다. 수업에 집중하는 힘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텍스트힙은 대환영이다. 마음 한편으로 아주 작게 소망하는 바는 이 열풍이 탄력을 받아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자연스럽게 책이 놓이게 되고, 자주 노출됐으면 한다. 글을 읽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문해력이 낮아 고민인 아이도, 편독이 있는 아이도, 말은 잘하는데 문장으로 옮기기만 하면 짧고 어색해지는 아이에게도 녹아들어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를 바란다. 텍스트힙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다음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는 아래에서 위로 바라본 미끄럼틀같이 생긴 종합 독서율이 멋지게 등장하길 기원한다.
[리딩엠의 독서논술] 버선발로 반기는 텍스트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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