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엠의 독서논술] 의도적으로 더 자세히 보려고 노력해봐요
김은경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대치도곡교육센터 부원장
기사입력 2024.11.06 10:12
  •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혼자서 팔을 휘두르며 지적확인환호를 하는 역무원이 있다고 해 보자. 어떤 마음이 드는가? 누군가 나를 위해 출입문이나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준다면? 정장을 멀끔하게 입고, 눈 내리는 퇴근길에 공 차듯 얼음을 툭툭 차면서 걷고 있는 중년 남성의 모습을 본다면 어떨까?

    이럴 때마다 마음이 뭉클해지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일본의 에세이스트 ‘마스다 미리’다. 그녀는 <뭉클하면 안 되나요?>라는 책에서 자신이 뭉클한 순간을 잔잔히 이야기한다. 옮긴이 권남희는 원제의 ‘큔토스루(キュンとする)’라는 일본말에는 ‘찡하고, 짠하고, 뭉클하다’라는 뜻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찡하고 짠하고 뭉클한 순간은 해당 장면을 현미경으로 보듯이 확대하고 곰곰 새겨 보지 않는 이상 쉬이 오지 않는다. 작가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상황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인생을 보다 재미나게 음미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갓생’이라고 하며 생산성을 높이는 등 부지런하고 모범이 되는 삶을 강조하지만 진짜 갓생은 시간만 쪼개며 알차게 채우는 게 아니라, 그 시간 속 나의 마음도 옹골차게 충전하는 게 아닐까 싶다. 

    어른만이 갓생*을 사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하루야말로 갓생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 수업, 방과후 수업, 그리고 여러 학원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숙제하고 복습하며 하루 동안 배운 것을 소화하는 시간까지 24시간이 모자라다. 그야말로 테트리스처럼 빈틈없이 하루일과가 짜여 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알차게 하루를 살아가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그런 아이들을 응원한다. 하지만 내심 살포시 걱정이 깃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의 내면 역시 잘 짜인 천처럼 짱짱한지 말이다. 

    *갓생: 신을 뜻하는 ‘God’과 인생을 뜻하는 ‘생’이 합쳐진 남들에게 모범적이고 부지런한 삶을 뜻하는 신조어.

    “오늘 급식 중에 제일 맛있는 게 뭐였어요?”

    “다 그저 그랬어요.”

    “그럼 그중에 맛이 제일 이상한 건 뭐였어요?”

    “다 똑같았는걸요.”

    “오늘은 학교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어요?”

    “기억이 안 나요.”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분주한 마음에 공부 이외의 시간은 향유하지 못하고 그냥 보내버리는 것만 같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글쓴이 역시 하루를 가득 채운 것 같아도 빈틈이 많음을 깨닫는 순간이 있었기에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 김은경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대치도곡교육센터 부원장.
    ▲ 김은경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대치도곡교육센터 부원장.

    “여러분, 참새 자주 보지요? 선생님도 참새를 자주 봐요. 그래서 참새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루는 산책하다가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참새가 다가왔어요. 가만 보니 선생님이 알던 참새가 아니더라고요. 머리는 어찌나 반질반질한지 방금 미용실에서 손질한 것 같았어요. 눈을 보니까 진하게 눈 화장을 했더라고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처럼 눈매가 짙었어요. 그리고 양볼에 검정색 볼터치도 했어요. 여러분도 나중에 한번 자세히 봐 보세요.”

    물론 우리의 뇌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무엇이든 빠짐없이 저장하지 않고 듬성듬성 정보를 받아들인다고 주장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렇기 때문이라도 더 의도적으로 자세히 보려고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한 번은 저학년 수업에서 친구 묘사하기 활동을 했다. “머리가 길어요.”, “안경을 썼어요.”라는 답뿐이어서 조금 더 찬찬히 친구를 관찰해 보라고 했다.

    “선생님, ○○이는 (가마를 가리키며) 머리가 뱅글뱅글 도는 모양이 이마 위에 있어요. 이거 되게 귀여워요.”

    아주 잠깐의 관찰로도 충분히 멋진 문장이 나왔다. 

    이렇게 한순간, 한순간 내 것으로 만들고 잠시 멈추어 생각하면 나의 삶도 정비하고, 나만의 이야깃거리도 있는 짙은 삶이 될 것이다. 또 글쓰기에서도 상투적인 생각과 표현 대신 멋들어진 나만의 글이 담길 것이다. 

    어쩌면 뭉클할 수도 있는 순간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진다면 너무 아깝지 않을까? 같은 생활, 다름없는 일상이지만 내 하루를 더욱 깊은 맛이 나게 보내는 방법을 실천해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