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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란 태어날 때부터 살아 있는 책과 죽어 있는 책으로 나뉘어. 지은이가 혼을 불어넣어 썼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에 따라서…… 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도 반은 죽어 있고 반은 살아 있다. 그리고…….” (김성범. (2002). 숨 쉬는 책,무익조.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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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따라, 내용의 경중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글을 쓸 때는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친구한테 가벼운 쪽지를 보낼 때도 어떤 내용을 담아야 친구가 내 뜻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을지 망설여진다. 하물며 도서 한 권은 어떨까. 그곳에는 ‘지은이가 혼을 불어넣어 썼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생각을 꾹꾹 정성스레 눌러 담은 글이 읽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숨 쉬고 있는 다른 책들은 읽은 사람의 가슴 속에서 푹 쉬고 있으니…(중략)…다른 책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씩이나 읽어 줘서 그 사람들의 품속으로 들어가 쉬고 있으니 얼마나 포근하겠느냐…….” (김성범. (2002). 숨 쉬는 책,무익조. 문학동네.)
이제 그 혼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느냐는 읽는 자의 몫이다. 집중해서 읽은 만큼 지은이의 혼이 독자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다. 글 속에서 다룬 내용에 대한 기본 지식이 풍부하지 않더라도, 그 글을 읽는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지더라도 상관없다. 지은이가 외치는 말을 읽는 이는 야무진 눈매로 집어내야 한다. 반은 죽어 있는 책의 혼을 깨워 내 것과 섞어 영글어야 할 따름이다.
초등 저학년은 학부모가 학생에게 단행본을 직접 읽어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렇게 읽은 책은 아이와 더 쉽게 교감한다. 지금도 학부모가 “우리 아이가 아직도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데, 읽어 줘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학년에 상관없이 “네!”라고 외친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소리 내어 읽은 책은 더 쉽게 이해가 된다. 청소년은 음독이 아니어도 학생과 부모 혹은 주변의 어른, 또래의 친구가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지은이의 혼’이 무슨 말을 담았는지 이야기해 보면 더 쉽게 핵심에 접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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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하근찬의 작품 중 <흰 종이수염> 수업 시간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비참한 삶의 모습과 가족애를 통한 극복을 주제로 한 책이었으나, 한 학생이 우정에 대해 논하는 감상문을 제출했다. 그 감상문을 읽는 순간 작가의 혼은 힘을 잃고, 힘들게 글을 쓴 학생의 노력도 헛수고가 된 것 같아 아차 싶었다. 결국 그 아이는 교사의 지도를 다시 받고 책을 이해하여 작가가 혼을 담아 하는 말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책을 읽을 때 타인의 생각이나 작가의 의도를 먼저 듣고 읽으면 쉽게 의도한 대로의 생각이나 편견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순수하게 어떤 정보도 없이 책을 읽는다면 무궁무진한 상상력이나 창의력을 펼칠 수 있고 더 넓은 세계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독서 가능 단계를 1, 2, 3단계로 나눈다면 1단계는 통과한 2단계 독자에게 해당하는 주장이다. 작가의 혼이 열심히 외치는 것이 아닌 마음대로의 해석을 담아 한 권을 읽고 책을 덮는다면, 어떤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재미도 없는 무미건조한 글자 더미가 되는 셈이다.
독서의 옳고 그름을 쉬운 잣대로 평가할 수는 있을 것이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 그 책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더 많은 생각 가지를 펼칠 수 있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단련할 것인가는 읽는 이 각자가 할 노릇이지만 다양한 방법과 느낌을 갖고 독서를 하면 지은이의 혼은 더 많은 사람의 품속으로 들어가 포근하게 쉴 수 있다. 책이 나에게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리딩엠의 독서논술] 책이 나에게 하는 말에 귀 기울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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