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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덴마크 현지 기업에 재직 중인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덴마크에서는 여성들이 출산 후에도 경력의 중단 없이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을 하는 것은 성별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릴 권리이자 의무로 여긴다는 것. 일 가정 양립을 가능케하는 정부의 지원과 기업의 가족친화적 분위기도 아주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결혼 결심과 동시에 커리어 고민부터 하게 되는 우리나라와는 참 다른 풍경이라고 느껴졌다. 과거에는 남성이 경제적 역할을 하고, 여성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현대 여성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가꾸며 꿈을 키워야 한다고 교육 받으며 자랐다. 그에 반해 전통적인 성 역할의 고정관념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인 상황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여성들은 커리어우먼과 가정의 돌봄책임자라는 두 가지 페르소나를 모두 소화하며 살아가게 됐다.
◇ 워킹맘 84% ‘퇴사고민’, 서울 맞벌이 24% ‘우울상태’…어려움 1위는 단연 “돌봄공백”
맞벌이 가정이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충을 겪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킹맘은 갈수록 늘고 있다. 높아진 교육 수준과 비례하게 자아실현의 욕구도 높아졌다.
영어교육 전문기업 윤선생이 지난 8월 고등학생 이하 자녀가 있는 여성 677명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현재 일을 하고 있다고 답한 워킹맘 비율은 78.4%였다. 이전 조사를 진행했던 2017년 대비 7년 만에 워킹맘 비율이 24.6%포인트 상승했다. 약 1.5배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이 중 83.8%는 퇴사를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눈에 띄었던 항목은 일을 그만두고 싶은 순간을 묻는 문항이었다. ‘아이에게 미안하고 죄책감이 든다’는 답변이 무려 50.8%를 차지했다. 일하는 엄마는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일과 육아를 모두 해내는 멋진 사람들인데, 도대체 왜 잘못한 것도 없이 죄책감을 느껴야만 하는 걸까. 일 육아 병행이 어려워 가정에만 충실하기로 마음먹으면 “집에서 논다”는 오해를 받기 일쑤니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가 참 가볍지 만은 않다고 느껴진다.
그런가하면 서울연구원은 지난 6월 서울 맞벌이 가정의 23.6%가 우울 문제를 겪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불면증과 불안감을 경험한 비율은 각각 20.8%, 15.8%였으며, 8.6%는 자살 생각까지 한 적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결과였다. 맞벌이 가정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은 문제는 단연 ‘돌봄공백(53.1)’이었다.
◇ ‘회사원’ 아닌 맞벌이 가정 돌봄 사각지대 놓여…직업 다양성 고려한 정책 필요
앞서 언급했던 덴마크에서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을까? 일 가정 양립 문화가 깊숙이 정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양성평등 원칙이 있었다. 성별 구분없는 경제활동을 적극 장려하는 정책의 일환으로써 촘촘하게 짜여진 아이돌봄 지원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덴마크는 어떠한 근무 형태에도 가정의 돌봄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직접 돌봄할 수 있는 시간과 함께 어린이집, 유치원 등은 물론이고 1:1 아이돌봄(Private childminder), 놀이교실 등 다양한 돌봄 방법을 부모가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상대적으로 육아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대기업 회사원 부모는 앞으로 점점 나아지는 육아지원 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맞벌이 부부 육아휴직 기간 확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확대 등에 대한 논의가 드디어 본궤도에 올랐기 때문이다.
문제는 9 to 6의 근무시간을 적용할 수 없는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이나 소방, 경찰, 의료진 등 특수직 근로자, 중소기업 근로자 부모를 위한 돌봄 정책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답보 상태라는 것이다. 특히, 다른 맞벌이 가정과 마찬가지로 부모가 모두 일을 하고 있지만 고용보험 미가입자인 자영업자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보장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또 근로 특성에 따라 평일 야간,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돌봄공백에 대한 걱정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서울시에서 소상공인 부모를 위한 ‘소상공인 민간 아이돌봄서비스 지원 사업’을 시행해 눈길을 끌었다. 일주일간의 짧은 신청 기간에도 불구하고 1000가구 지원대상 모집에 총 6528가구가 신청해 최종 6.5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그동안 돌봄 지원 정책에서 소외됐던 소상공인 부모 역시 아이돌봄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결과였다.
◇ 일하며 아이 키우는 것이 ‘행복한’ 선택이 되려면
많은 사람들이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매우 크고, 육아로 인한 고충 또한 매우 크다고들 농담처럼 말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인 자신도 같이 커가는 기분을 느낀다고도 말한다. 그 만큼 한 사람을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 키워내는 일에는 많은 노력과 관심, 정성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테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아이와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배 부모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일하며 육아하는 일상이 ‘그래도 해볼 만하다’고 느껴져야 아이 낳을 결심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과 개인이 ‘원팀(One Team)’이 되어 함께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치열한 고민을 이어가야 한다.
정부는 적재적소에 필요한 정책적 지원을, 기업은 임직원의 일 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적 지원을, 개인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생산적인 일을 하며 자아 성취를 이룰 때, 비로소 일하며 아이 키우는 것이 의심의 여지없이 ‘당연하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단순하지만, 아주 어려운 이 문제를 최선을 다해 해결해 나가고 있는 만큼, 일하며 아이 키우기 좋은 세상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는다.
[정지예의 워킹맘 인사이트] 일하며 아이 키우기 좋은 세상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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