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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저출생이 국가적 화두가 되면서 ‘돌봄’이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함께 혼재되어 등장하는 용어가 ‘가사’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제도도 마찬가지로 ‘가사관리사’라는 명칭을 쓰고 있으나, 780시간 이상 돌봄교육을 이수하고 온 이들의 핵심 업무는 ‘아이돌봄’이다.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간의 혼란을 막기 위해 돌봄의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구분 짓는 논의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이미 돌봄, 가사, 학습 등의 시장에서는 각기 다른 고유의 전문성을 구축하며 분야별로 특화된 시장을 형성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 내에서 실행되는 일이라는 특성에 따라 정확한 구분이 없이 용어가 사용돼 부모들의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 베이비시터는 아이돌봄 전문가, 무리한 가사 요구는 안돼요!
필자가 아이돌봄산업에 뛰어든 지도 벌써 9년 차에 접어들었다. 지난 8년간 서비스를 운영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역시 ‘돌봄의 업무 범위 구분’이다. 부모는 베이비시터(육아도우미)에게 어디까지 요청드릴 수 있는지 궁금해하고, 베이비시터는 “호의로 도와준 가사일이 점점 당연시되고 있다”는 고충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서 필자는 ‘필수 돌봄 업무’와 상호 간 협의를 통해 정할 수 있는 ‘추가 업무 범위’를 구분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요청 기준은 ‘아이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업무인가’를 판단해 보면 된다. 예컨대, 아이돌봄 중 놀이가 끝난 후 놀잇감 정리는 가능하지만, 아이와 분리된 공간에서 수행해야 하는 베란다 정리는 불가능할 것이다.
만약 아이돌봄 외 추가 업무 요청이 필요하다면 먼저 우리 가정에 필요한 돌봄 유형이 무엇인지 체크해봐야 한다. 부모와 베이비시터가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상호 동의하에 돌봄 활동 범위를 정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돌봄 비용을 책정해야 한다. 첫 돌봄 계약을 맺을 때 상호간 협의한 업무 범위를 기록해 문서화해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 알쏭달쏭한 업무 범위, 분야별 특성 이해하는 것이 중요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돌봄, 가사, 방문학습의 업무를 구분할 수 있을까? 넓은 범주에서 본다면 ▲집 안에서 일을 한다는 것 ▲돌봄 행위를 한다는 것에 공통점이 있다. 다만 돌봄의 대상이 누구인지, 돌봄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 업무의 내용과 필요한 직무 역량이 달라진다.
‘아이돌봄’은 말 그대로 양육 공백이 생긴 가정에서 부모 대신 아이를 돌보며 정서와 신체의 안전, 아이 연령이나 성향 및 기질별로 알맞은 돌봄을 제공하는 업무이다. 아이를 안전하게 돌보는 것이 최우선 목표이기 때문에 안전한 공간에서 아이에게 필요한 식사와 수면, 상호작용, 위생관리 등을 제공해주며 아이가 편안하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보호자의 역할을 한다. 또 위급상황 시 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응급상황 예방 및 대처, 아동학대 예방 등의 교육 등을 이수한다.
‘가사관리’는 맞벌이 등으로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집안의 살림을 대신 돌보며 쾌적한 주거 환경을 만들어 준다. 돌봄 대상이 사람이 아닌 주거 환경이라는 점에서 아이돌봄과 차이가 있다. 가사관리사는 설거지와 빨래, 청소 등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공간별 청소 방법, 전자기기 사용법, 쓰레기 배출 방법 등을 숙지한다.
‘방문학습’은 서비스의 대상이 아이라는 점과 집으로 방문하여 제공되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아이돌봄과 공통점이 있지만, 그 목적이 교육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교육 서비스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방문학습은 어린 영아보다는 유아 이상 아이를 둔 가정에 적합할 수 있으며, 장시간 돌봄보다는 주로 단시간의 집중적인 학습이 필요할 때 도움이 된다.
◇ 돌봄 전문가가 인정받는 사회를 위하여
사실 우리나라에서 돌봄과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전에는 육아와 가사일 모두 으레 ‘엄마’가 당연하게 하는 일로 여겨지게 마련이었다. 이 같은 배경으로 말미암아 돌봄과 가사의 용어가 정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혼재되어 사용된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다. 그동안 그림자 노동으로 치부되던 돌봄과 가사에 사실은 엄청난 노력과 기술, 많은 시간과 기회비용이 숨어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제는 아이돌봄과 가사관리, 학습놀이수업이라는 영역으로 분리되어 각기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직무 전문성 또한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를 계기로 돌봄의 업무 범위 역시 점차 명확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맞벌이 가정에게 필수로 자리잡은 돌봄 서비스. 우리 가정에 꼭 필요한 서비스 유형을 잘 선택해서 균형 잡힌 육라밸 라이프를 실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지예의 워킹맘 인사이트] 돌봄의 업무 범위, 어디까지일까?
- 맞벌이 부모의 워라밸! 베이비시터와 함께하는 일·육아 균형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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