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찬 서울대 교수 “진로탐색은 명사가 아닌 동사에서 시작됩니다”
장희주 조선에듀 기자 jhj@chosun.com
기사입력 2024.08.16 09:00

- 이찬 서울대학교 첨단융합학부 교수
- “진로 설계는 직업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그 여정에 포인트를 두는 것”

  • 이찬 교수의 모습. / 장희주 기자.
    ▲ 이찬 교수의 모습. / 장희주 기자.

    청소년기는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진로탐색은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발견하고,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입시라는 현실적인 과제가 학생들에게 큰 압박을 주면서, 진로탐색은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조선에듀는 이찬 서울대학교 첨단융합학부 교수와 만나 청소년기 진로탐색의 중요성을 조명하고, 입시와 진로탐색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맞출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이찬 서울대학교 첨단융합학부 교수의 일문일답.

    ─ 청소년기 진로탐색이 중요하단 걸 알지만, 솔직히 와닿지는 않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의 교육체제를 살펴보면 입시교육이 특화됨에 따라 진로교육은 상대적으로 많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청소년기 진로탐색이 중요하단 걸 다들 알지만, 현실은 입시에 치여 꿈을 찾는 행위는 일종의 사치가 돼버렸어요. 사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꿈을 갖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함인데 말이죠. 청소년기에 입시를 준비하느라 자신의 꿈을 정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꿈이 없다 보니 자신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청소년기를 인생의 암흑기처럼 보내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교육체제는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성취도 측면에서 매우 우수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꼭 필요한 진로교육을 기회비용으로 치르고 있는 셈이죠.” 

    ─ 진로교육이 잘 시행된다고 해서 뿌리 깊게 박힌 인식이 달라질까요?

    “제도적으로 개선하려는 시도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어요. 대표적으로 ‘자유학기제’가 있습니다. 자유학기제는 학생들이 입시에서 잠시 벗어나 자유롭게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마련됐죠. 문제는 자유학기제도 결국 ‘자유롭게 학원을 마음껏 다닐 수 있는 학기제’로 변질됐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청소년의 진로탐색은 단순히 강의를 하나 더하고, 덜 하고의 수준을 벗어났어요.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죠. 

    이미 자리 잡은 인식을 바꾸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방치해야 할까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적어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인성교육, 진로교육, 성교육, 금융교육 이 네 가지 영역은 겉핥기식으로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입시 교과목이 아니더라도 이 네 가지 영역을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도록 어떠한 형태로든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봐요.” 

    ─ 꼭 청소년기에 진로탐색이 필요할까요? 청소년기엔 입시에 집중하고, 대학에 가서 진로탐색에 나서도 되잖아요.

    “진로탐색은 대학에 간다고 해서 해결되는 부분들이 아닙니다. 생애 주기별로 길게 늘어뜨려 놓고 삶 전반에 걸쳐 실행해나가야 하죠. 진로나 경력 개발은 길게 보고, 그 프로세스를 즐기는 것이지 단기 속성 과정으로 바싹 집중해서 자격증 따내듯 하는 게 아니에요.”

    ─ 청소년기에 입시 준비와 진로 탐색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결국 선택의 문제인 것 같아요. 어느 쪽을 선택해도 기회비용은 발생합니다. 또, 입시와 진로탐색 중 어느 한쪽에 집중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죠. 제도적으로는 고등학교때부터 직업 세계에 일찍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마이스터고등학교’와 같은 곳이 활성화되는 게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부모의 용단이 필요하죠. 예전에는 좋은 대학이 좋은 직장을 보장해줬어요, 그래서 더 입시에 집중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죠. 꼭 상위권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저마다의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 상위권 대학교에 들어가더라도 끝나는 게 아니에요. 학점 경쟁, 취업 경쟁이 있습니다. 점점 더 치열해져요. 이처럼 진로교육과 경력 개발의 구조가 바뀌었음을 인정하는 게 우선이에요. 우리의 자녀들이 직업 세계로 나섰을 때, 그 세상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진 성공 방정식이 존재할 겁니다. 이를 인정하고,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 이찬 교수의 모습. / 장희주 기자.
    ▲ 이찬 교수의 모습. / 장희주 기자.

    ─ 진로를 정하지 못한 학생들은 대체로 어떤 어려움을 겪나요?

    “서울대학교는 국내 최고의 대학이죠. 이곳에서 아이들의 진로상담이나,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꿈의 대학에 진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입학 후 방황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부모나 선생에 대한 깊은 원한을 가진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원한은 일종의 배신감이에요. 청소년기 대부분 ‘이 시간만 참아라.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여태까지 고생한 것을 보상받을 수 있어.’라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을 믿고 따라왔거든요. 

    하지만 이들이 마주한 현실은 다릅니다. 청소년기 때보다 더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입시라는 첫 단추부터 스스로가 아닌 다른 이의 뜻대로 결정하면서, 진로나 직업을 주도적으로 탐색해나갈 다음 동력이 나오지 않는 겁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배부른 소리 하고 있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당사자한테는 되게 현실적이고, 심각한 고민이에요.” 

    ─ 진로 탐색이라고 하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진로탐색이 어려운 이유는 직업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진로를 설계할 때는 명사형보다 동사형으로, 직업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정에 포인트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걸 내 직업으로 삼고 싶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럼 의사나 간호사를 떠올릴 수 있고, 또 구급대원이 될 수도 있죠. 마음을 치료하는 상담사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를 가르치는 게 좋다면,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기업에서 멘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진로를 동사형으로 생각하면 여러 가지 일을 떠올릴 수 있어요. 직업보다는 일 자체를 풀어서 동사화된 꿈을 갖는 것을 추천합니다.” 

    ─ 자신의 적성이나 흥미를 모르는 경우는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청소년들이 정말 많아요. 사실 청소년기에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게 당연해요. 오히려 잘 아는 게 더 드문 케이스죠. 자신을 모른다는 부담감은 가지지 마세요. 다만 천천히 알아가도록 해야죠. 가장 먼저 ‘내가 무엇을 할 때 시간이 제일 빨리 갔는지’를 떠올려보세요. 본인이 좋아하는, 흥미가 있는 영역은 그 행동을 하는 시간이 굉장히 빨리 가거든요. 또, 어릴 적에 어른들이 물어보면 ‘꿈’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생각해보세요. 혹은 내가 주로 구독하거나, 팔로우하는 유튜버나 인플루언서가 누군지를 보면 무의식 중에 ‘내가 이쪽을 주로 관심을 두고 있었구나’라고 알게 될 거예요.

    내 적성을 알 수 있는 일은 ‘나는 어떠한 결과물을 내는데, 힘이 들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이 잘한다고 칭찬하는 경우’를 찬찬히 떠올려보세요. 이처럼 나의 흥미와 적성을 찾는 방법은 결국 나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되돌아보는 것이에요.”

    ─ 청소년들이 진로를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할 주요 요소는 무엇인가요?

    “내가 좋아하는 일(흥미), 내가 잘하는 일(적성),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일(가치). 이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먼저, 내가 흥미 있는 영역들을 찾고, 그중에 내가 잘하는 일을 교집합을 찾는 게 진로 설계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에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일인지를 고려해야 하죠. 인류에 기여할 수 있어야 소속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세 가지 요소의 교집합을 찾는 것, 이론적으로는 쉽지만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만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죠.” 

    ─ 청소년 시절, 교수님의 진로 탐색 과정도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의견을 제시하고,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기자’를 꿈꿨죠. 중고등학교 때는 문학부, 교지편집부로 활동하면서 기자라는 꿈을 준비했어요. 어느 날, 친구가 말하길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널 지켜본 결과, 너는 기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라고 하더라고요. 하고 싶은 표현을 지나치게 많이 해서 기자를 하면 일찍 잘릴 것 같다며 우스갯소리를 했죠.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우연히 매거진에서 한 인터뷰를 보게 됩니다. 기업 내 인사담당자를 인터뷰한 기사였어요. 인터뷰를 통해 인사담당자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면접을 통해 사람을 뽑기도 하고, 업무역량을 높이기 위해 직원들을 가르치며, 인재를 육성하기도 하더라고요. 인사담당자라는 직업이 너무 재밌게 느껴졌죠. 그때부터 인사 업무가 제 꿈이 됐습니다.

    대학에는 인사와 관련된 학과가 없어서 교육학과 산업심리학을 전공했고, 인적자원개발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도 갔죠. 박사 과정을 마치고 난 후에는 LG전자 미국법인의 인사팀으로 입사했고, 인사 업무를 수행하다가 지금은 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교수로 왔다고 해서 강의만 하는 건 아니에요. 인사 업무를 좋아해서 지금도 신입 직원 면접을 보기도 하고, 인사위원회에 들어가는 등 여전히 인사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 오랜 시간 꾸준히 자신의 길을 닦아온 모습이 정말 멋집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역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인사와 관련된 일들, 인재 육성에 대한 일들을 좋아하고, 잘했기 때문에 유학도, 회사 생활도, 지금 교수를 하기까지 쭉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저처럼 직업을 찾기보다 ‘하는 일’ 동사에 관심을 두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세요. 어디에서 무슨 직책으로 있든지 이 일이 좋다면 오랜 시간 재미있게 할 수 있습니다.

    ─ 끝으로 청소년들에게 진로탐색과 관련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롤모델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유명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보다는 내가 흥미를 느끼는 영역을 찾아보면서 해당 영역에서 활동하는 실제 인물을 내 롤모델을 찾고, 그 사람의 특징을 최대한 벤치마킹해 봤으면 좋겠어요. 신문이나 방송, 유튜브, SNS등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들에 대해 살펴보며, 그들이 지금의 자리에 가기까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 파악하고 따라해보는 거죠. 진로탐색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롤모델을 찾고, 벤치마킹하는 과정부터 시도해보세요. 분명 즐겁게 나에 대해 알아갈 수 있을 겁니다.” 

  • 책『이런 진로는 처음이야』표지.
    ▲ 책『이런 진로는 처음이야』표지.

    이찬 교수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인적자원개발(HRD)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레고 코리아 인사팀 HR 전문가, LG전자서비스 미국법인 인사부 HRD 팀 리더를 거쳐 지금은 서울대학교 산업인력개발학과 교수이자, 2024년 신설된 첨단융합학부 학생부학부장으로 임명되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미래 인재들을 양성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력개발센터 센터장, 서울대학교 평생교육원 원장 등을 두루 역임하며 서울대 학생들의 든든한 진로 멘토로 활약 중이다.

    『꿈꾸는 진로여행』을 아버지인 이무근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집필했고, 『한 권으로 보는 그림 직업 백과』 등 아이들을 위한 진로 도서를 감수했다. 또 『진로와 직업』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런 진로는 처음이야』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