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엠의 독서논술] 따라 쓰기의 유익
김은경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도곡교육센터 부원장
기사입력 2024.07.10 09:39
  • 인터넷 서점 검색창에 ‘따라 쓰기’라고 입력하면 실로 여러 도서가 화면에 촤라락 펼쳐진다. 각종 외국어 따라 쓰기부터 멋진 글귀, 노랫말 따라 쓰기까지 내용도 다채롭고, 초등 저학년부터 성인, 심지어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그 대상 또한 다양하다. 출판계에서 이렇게 두터운 독자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이들 사이에 따라 쓰기의 효용성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따라 쓰기를 말할 때마다 언급하게 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정약용은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내게 되는데 이때 자녀들을 바르게 교육하기 위해 여러 차례 편지를 쓴다. 그의 편지에 자주 등장하는 게 바로 초서(抄書)다.

  • 김은경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도곡교육센터 부원장.
    ▲ 김은경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도곡교육센터 부원장.

    김병완은 그의 책 ‘초서 독서법’에서 초서를 다음의 다섯 가지 단계로 설명한다. 

    입지 - 해독 - 판단 - 초서 - 의식

    요약하자면 입지는 독서 전 준비 단계로 책을 읽는 목적을 생각해 보는 단계다. 두 번째, 해독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독서’의 단계로 책을 읽으며 내용을 파악한다. 세 번째, 판단은 능동적으로 내용을 따지며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단계다. 네 번째, 초서 단계에서 비로소 손으로 문장을 기록한다. 마지막으로 의식은 헤아린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새로운 견해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입지부터 의식까지, 초서는 학생들에게 어떤 유익을 줄까?

    초등 저학년에게 따라 쓰기가 어떤 이로움이 있는지 네 번째 단계인 초서 단계만 뚝 떼어 놓고 보겠다. 따라 쓰기는 소근육 운동에 보탬이 된다. 1, 2학년 수업을 하다 보면 손이 아프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아직 손과 팔에 힘이 없어 쓰기 활동이 힘에 겨운 것이다. 초서를 통해 손힘을 기를 수 있다. 

    둘째, 바른 글씨를 쓸 수 있다. 한 자 한 자 획순에 맞추어 글을 쓰다 보면 글씨 쓰기 실력이 성장한다. 처음에는 글자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도 어려워해 다음 줄로 글자가 넘어가지만 연습을 거듭할수록 알맞은 크기로 적게 된다. 

    셋째, 글자를 덩어리로 익힐 수 있다. 저학년 학생들이 판서를 따라 쓰는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자음, 모음을 조각조각 따로 보고 옮기다가 차츰 한 글자, 한 단어, 한 어절 등의 큰 단위로 외워 베껴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좋은 문장을 옮겨 쓰면서 올바른 문장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바른 맞춤법과 어순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학년 학생들에게 따라 쓰기는 어떤 도움이 될까? 고학년은 저학년과 달리 초서의 전 단계를 오롯이 해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바른 공부법을 스스로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초서 자체가 목표를 정하고, 내용을 이해하고, 지식을 정리해 자신이 깨달은 바를 기록하는 공부의 전 과정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 “깨끗하게 보면 깨끗하게 잊어버린다.”

    신정철의 ‘단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남는 메모 독서법’을 읽다 만난 문장이다. 이 문장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글쓴이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실은 이 글을 염두에 두며 책을 읽다 스마트폰에 적바림한 문장이 있는데, 급하게 기록하느라 책 제목을 적지 않아 이 책, 저 책 한참을 찾다 결국 활용하지 못한 아까운 문장이 있기 때문이다. 

    “어, 나 읽었는데, 왜 기억이 안 나지?”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학생들도 수업 중 종종 본다. 

    애써 읽은 책을 깨끗하게 잊어버리기 전에 기억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행동의 변화까지 이끌어주어 창조적인 활동을 하게 하는 초서, 즉 따라 쓰기를 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