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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한 중학생이 도박으로 1600만 원을 탕진한 일이 벌어져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해당 중학생은 돈을 잃은 데 이어,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절도를 저지르고 수백만 원의 돈을 빌리기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 도박, 어느새 초·중학생까지
최근 10대 청소년들의 도박 문제가 급증하며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이 지난해 9월부터 지난 3월까지 실시한 사이버도박 특별단속에 의하면, 검거된 2900여 명 중 1035명이 19세 미만 청소년인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는 초등학생 2명이 포함돼있어 세상이 충격에 빠졌다. 이뿐만 아니다. 단순히 도박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도박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는 청소년도 12명이나 적발됐다.
사이버 도박에 빠지는 나이 또한 점점 어려지고 있다.
지난 2019년 4명이던 중학생 도박 사범 수는 2023년 32명으로 5년 새 무려 8배가 늘어났다. 집단적인 성향을 띄는 청소년들의 특성상, 한 학급 내 1~2명의 아이만 도박을 저질러도 금방 학급 전체로 퍼질 위험성이 높다. 실제로 경찰에 따르면, 청소년이 도박에 유입되는 가장 큰 경로는 ‘친구 소개’였다.
불법 사이버 도박은 주로 스마트폰 등의 광고 배너를 통해 연결된다. 스마트 기기 사용률이 높은 요즘 청소년들에게 이 같은 도박 접근 경로가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해당 배너는 특히 웹툰이나 웹소설, 영화나 드라마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 등 청소년들이 자주 이용하는 사이트에 만연하게 퍼져있다. 부모나 교사가 이를 일일이 제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흔히 청소년들이 이용하는 사이버 도박은 도박인지 단순 게임인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게임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어린 아이들의 경우, 도박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중독될 위험이 있다.
◇ 뛰는 도박 위 나는 사채놀이
지난 3월 도박으로 1600만 원을 잃고 빚 독촉에 시달려 온 중학생은 ‘대리입금’을 통해 도박 자금을 빌린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사이버 도박에 빠진 청소년 대다수가 자금 마련을 위해 대리입금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리입금이란, 10만 원 이하 소액을 단기간에 빌려주고 연이율 1000% 이자를 챙기는 고금리 사채다. 대리입금 업자들은 개인 계좌가 없는 청소년들에게 대신 입금을 해준다거나, 게임 아이템 등을 사주겠다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대리입금뿐만 아니라 학교 내 동급생, 선후배끼리 고금리의 사채놀이까지 성행하며, 폭력이나 절도 등의 2차 범죄로 이어지는 일 또한 빈번하게 발생한다. 온라인 도박에 중독된 한 중학생이 타인의 개인정보로 대출을 받거나, 자금 마련을 위한 중고거래 사기 등의 2차 범죄를 일으켜 소년원에 입소한 사례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진 빚을 떠안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학생들까지 생겨난다는 것이다.
사이버 도박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 적발과 단속이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이러한 사이버 도박 특성상, 잠재된 청소년 도박 범죄의 수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해결 위해 두팔 걷어부친 당국
청소년 도박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 되면서 정부와 지자체, 기업 등 모두가 팔을 걷고 나섰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3월까지 청소년 대상 도박 특별단속을 펼치는 등 청소년 도박 사범을 검거 및 계도 하고 있다. 전국 시도경찰청 또한 관련 기관들과 연계해 예방에 힘쓰고 있다.
서울경찰청의 경우 지난달 20일 올해 첫 긴급 스쿨벨을 발령하고, 증가하는 청소년 도박과 대리입급 대응에 나섰다. 더불어 서울지역 학교를 대상으로 ‘청소년 도박 및 대리입금에 대한 실태조사’를 병행하고, 오는 9월 17일까지 ‘첩보 집중 수집기간’을 운영한다.
여성가족부 또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홀덤펌·홀덤게임카페에 대한 청소년의 출입과 고용을 전면 금지했다. 청소년에게 카지노게임을 제공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된 일이다. 그러나 카지노 포커게임을 제공하는 ‘홀덤펌’ 등은 일반음식점으로 신고돼 그동안 청소년들의 출입이 자유로웠다.
경찰과 교육지원청, 강원랜드 또한 손잡고 청소년 불법 도박 예방에 앞장선다. 강원랜드는 지난 11일 정선경찰서, 정선교육지원청과 함께 MOU를 체결하고 도박 문제 해결을 위한 교육, 업무 공조, 홍보·캠페인 공동 전개 등에 힘을 합친다고 밝혔다. 강원랜드는 지난 2001년 중독관리센터(현 마음채움센터) 설립 후, 꾸준히 도박 중독 예방 활동을 전개해왔다.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는 청소년들의 도박 중독에 대해 “아이가 평소와 달리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많아지거나 휴대전화 요금이 증가한다면 일단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도박은 부모의 훈육으로 다스릴 수 있는 만만한 주제가 아니다”라며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를 받는다면 다시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부모는 아이의 도박을 절대 가볍게 여기지 말고 ‘심각한 질병’으로 인식해 달라”고 당부했다.
성장 중인 청소년기는 중독에 빠질 위험성이 높아 성인이 된 후에도 중독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경제적으로도 미성숙한 청소년들의 도박 중독은 한 가정은 물론, 우리 사회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청소년들의 삶 속에 깊숙이 침투하는 사이버 도박. 아이들이 제때 치료 받고, 중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요즘N] 날뛰는 청소년 도박 중독… 빠른 발견과 치료가 필요합니다
강여울 조선에듀 기자
ky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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