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엠의 독서논술] 두꺼운 책읽기, 얇은 책읽기
손지헤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삼성교육센터 부원장
기사입력 2024.05.29 09:00
  • 부끄럽지만, 초중고 시기를 보내며 ‘교과서’를 중심으로 공부에 깊게 접근해 본 적이 없다. 그 대신 자세한 해설이 나오고 선택형 문제가 함께 실린 자습서나 문제집을 자주 보았다. 그러다가 국문 전공을 선택하고 나선형 교육과정(동일한 성격의 내용을 학년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더 폭넓게, 또 깊이 있게 가르치는 것. 이와 같이 조직된 교육과정이 마치 달팽이 껍질 모양〔螺旋形〕과 같다고 해 나선형 교육과정이라고 부른다)에 대해 배우면서 교과서가 얼마나 깊이 있고 체계적인 목적을 가지고 구성됐는지 알게 됐다. 그 후에 교과서의 학습목표, 학습활동, 제재 구성 등을 볼 때는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물론, 헷갈리는 개념들을 구체적으로 짚어볼 수 있는 문제집의 효용 역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 손지헤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삼성교육센터 부원장.
    ▲ 손지헤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삼성교육센터 부원장.

    그런데 왜 학생 때는 보이지 않던 교과서의 짜임과 질문의 깊이가 그때에서야 보였던 걸까? 그 이유는 내가 해당 내용에 대해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구조화를 시키려고 애를 쓰기도 하고, 시간이 흘러 그 내용들을 체감하는 경험이 쌓이기도 하면서 독서교육이나 문학교육, 의사소통 교육론에 나온 서술들은 두껍고 깊숙한 의미를 지닌 문장들로 와 닿았다.

    모든 ‘책읽기’도 이와 비슷하다. 시간을 들이고, 고민하고, 때로는 책 내용을 삶에서 맞닥뜨리는 순간을 겪기도 하면서 그 책은 나에게 ‘두꺼운 의미’를 주게 된다.

    지난 3월, 필자가 진행했던 책읽기, 글쓰기 수업에서는 한 달 동안 과학 도서를 읽었다. 우주와 천체, 여성 과학자들의 삶, 미생물, 전통 과학, 인체, 과학과 사회의 관계 등……. 다채로운 과학 이슈들에 몰입하여 흥미로워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우주에서의 삶’이 연구되는 중이어서인지 우주 관련 도서 수업에서는 이전 해보다 실제적인 반응을 보여주기도 했다. 

    반면 읽은 책 내용 중 50%는 잘 이해되지 않아서 후련치 않아 하는 아이도 있었다. 책읽기에 대해 고민하시는 어머님들과 상담을 하며 ‘배경지식은 켜켜이 쌓이는 것’이며, 이번 주에 했던 ○○이의 책읽기가 그 주제에 대해 쌓은 시간이 되고, 기초 뼈대가 될 것이라 말씀드렸다.

  • 두 반응의 차이는 ‘들인 시간’에 있다. 2년 전쯤 초3 자녀를 둔 학부모님과 상담을 진행하던 중, ‘△△이가 이번 주 수업 도서를 울면서 읽었어요.’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90쪽 정도의, 길지 않은 분량의 책이었으나, 얇은 책들을 주로 읽었던 △△이에게는 큰 산같이 느껴졌을 것이었다. 그것을 보는 어머니는 얼마나 답답하고, 안쓰럽고, 대견하기도 했겠는가. 아이들 입장에서는 더하다. 이해될 것을 기대하고 글자를 읽어 내려가는데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내용 앞에서 오죽 답답했을까? 나 역시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얇은 1, 2학년 도서들을 읽다가 한층 두꺼워지고 내용도 깊어진 중학년 도서들을 읽게 된 △△이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용기를 주자’고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계단을 더 오르는 일에는 이전과 다른 수고와 노력을 들이는 과도기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는 문학, 비문학 두꺼운 도서들도 꽤 잘 읽어내고 책에서 얻은 배경지식들도 누구보다 옹골차게 표현해 내었다.

    누구나 ‘얇은 책읽기’ 시기를 거친다. 겨우겨우 연속된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읽기의 목적인 시기이다. 그 시기에는 책을 읽고 얻은 한두 가지 새로운 점이 있을 뿐, 그 책들이 재미있을 리도 없다. 현재 그 시기를 마주한 학생들은 참 답답하고, 당장이라도 책을 밀어 두고 싶을 것이다. 때때로 대충 읽어 넘기고 싶은 유혹도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얇은 책읽기’ 시간이 켜켜이 축적된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꽤 두께를 가진 사람이 되리라 생각한다. 관련 문제에 대해 고민했던 시간들은 비슷한 소재의 책을 읽을 때 그 아이들을 흡입력 있게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걷는 아이들을 외롭게 두지 않고 온 마음으로 지지하며 격려한다면, 한층 더 힘찬 걸음을 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