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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해 도심 한복판이 물에 잠겨버리는가 하면, 불과 몇 년 전 한강마저 꽁꽁 얼려버릴 정도로 매서웠던 겨울은 비교적 평온해졌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과 가뭄으로 과일, 채소 가격이 폭등하며 ‘금사과’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김 가격이 오름에 따라 아이들의 급식에서는 김 반찬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녹아들었다. 녹색연합 등에서 활동하며 꾸준히 목소리를 내어 온 정명희 환경운동가는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기후위기’를 사회의 시급한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20대에 처음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후, 엄마가 된 지금까지 환경문제에 누구보다 앞장서 온 정명희 환경운동가. 지난 1월에는 10대의 두 딸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책 ‘인류세를 사는 10대를 위한 엄마의 환경 수업’을 발간했다.
조선에듀는 정명희 환경운동가에게 현재 직면해 있는 환경문제와 더불어, 아이들이 건강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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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환경운동가 정명희입니다. 오랫동안 녹색연합에서 일했고 지금은 우리나라 대표 제로웨이스트가게인 알맹상점의 매니저로도 일하고 있어요. 얼마 전부터는 ‘기후위기를 건너는 일상생활 기술’을 배우고 나누는 ‘수리상점 곰손’을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결국은 기후위기 시대, 인류세 시대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며 하는 일들입니다.
─ 지난 1월 ‘인류세를 사는 10대를 위한 엄마의 환경 수업’을 출간했어요
환경운동가인 제가 누구보다도 10대인 제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썼어요. 엄마는 어떤 생각으로, 나아가 환경과 생태, 녹색 등을 말하는 사람들은 어떤 세계관으로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들려주고 싶었어요.
모든 생명은 공생을 통해서 시작됐어요. ‘엄마의 환경 수업’은 지구라는 집 안에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가 서로 돕고 함께 사는 관계라는 생태적 관점에서 시작했죠. 우리 일상부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환경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책이예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과 그 결과 이뤄낸 변화들도 담고 있어요.
─ 책을 본 자녀들은 어떤 반응이었나요?
책을 읽는데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하던데요?(웃음) 어릴 때 늘 언니, 오빠들 옷을 물려 입고 또 입던 옷을 물려주는 게, 지금까지는 엄마가 그냥 옷이 아까워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대요. 책에서 패스트패션에 대해 다룬 부분을 읽고 나서야 왜 그렇게 하는지 제대로 이해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말로만 하면 잘 듣지 않고, 어쩌면 잔소리같이 들렸을 이야기들이 책으로 전해지니 좀 더 의미 있게 다가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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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딸들과 함께 꾸준히 실천하는 환경 운동이 있나요?
특별하진 않아요. 다들 아는 것들이죠. 생활에선 일단 일회용품을 거의 쓰지 않아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천 기저귀를 사용했고, 물티슈도 거의 쓰지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커서도 물티슈를 쓰는 습관 같은 건 없고요. 면생리대나 생리팬티를 사용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텀블러 늘 들고 다니고, 간혹 까먹더라도 목이 마르면 좀 참지 바로 물을 사 먹거나 일회용 컵에 담긴 음료를 잘 사 먹진 않아요.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일도 거의 없고요.
특별하지 않고 다 아는 것이지만, 막상 하나하나 실천하려면 습관이 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 어떤 거창한 실천보다 이런 생활 습관부터 바로잡는 게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이들이 환경문제에 대한 감수성과 민감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관련 기사나 정보를 자주 읽고 이야기해요. 아이들과 함께 환경운동단체에 가입해 후원도 하고, 환경단체에서 하는 여러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죠.
─ 환경문제에 관심을 두고,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20대 때 인도의 고산지대인 라다크 지방을 트래킹한 적이 있어요. 하루를 꼬박 걸어야 사람이 사는 마을이 나오는 깊은 골짜기들을 트래킹했는데요. 그런 곳에도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있더라고요. 마트도 없고 차도 다니지 않는 깊은 골짜기까지 마치 문명의 증거인 양 발견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불편했죠.
그 쓰레기들은 대부분 여행자들이 버린 걸 텐데,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광 속을 걸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썩어 없어지지도 않을 쓰레기를 버리는 인간의 마음은 대체 뭘까 생각했어요.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있다면 반대편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마음이 있을 테고,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나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결국 환경운동을 하게 됐죠.
─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면서 특별히 심각성을 느낀 문제가 있었다면요?
몇 년 사이 기후위기로 인한 변화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고 느낍니다. 겨울엔 산불, 여름엔 극한 폭우로 인한 재난이 계속되고 있어요. 이번 봄에만 해도 개화 시기가 20여 일 가까이 앞당겨졌는데, 사실 이런 현상은 생태계 전체의 조화가 무너지는 ‘생태계 엇박자 ecological mismatch’의 한 모습이에요.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기후위기’를 사회의 시급한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는 데 있죠. 우리 사회의 경제, 사회, 안보, 식량 등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될 기후위기 상황에서 사회가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 적응해 갈 건지, 또 기후위기 상황을 어떻게 완화 시킬지가 모든 일의 판단기준이 돼야 해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개발이나 성장이 모든 일의 판단기준인 게 안타깝죠.
─ 일상에서 쉽지만 확실하게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은 뭐가 있을까요?
소비에 관해 다시 생각하는 거예요. 지금처럼 끊임없이 물건을 만들어내고 소비하는 과정이 결국 기후위기를 만들고, 그렇게 소비된 자원은 폐기물이 되죠.
모든 물건은 지구의 유한한 자원으로 만들어졌고, 물건을 만들고 쓰고 폐기하는 모든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됩니다. 가장 좋은 건 옷을 덜 사고, 가방을 덜 사고, 학용품을 덜 사는 거겠죠. 사야 한다면 지구에 덜 해를 미치는 물건, 재활용되거나 재사용된 물건, 오래 쓸 수 있는 물건, 포장 안 된 물건을 골랐으면 좋겠어요. 소비를 할 때마다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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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맹상점’과 ‘수리상점 곰손’은 어떤 곳인가요?
알맹상점은 대한민국 최초의 리필스테이션이자 제로웨이스트숍입니다. 저는 알맹상점에서 매니저로 근무하며, 처음부터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무포장제품’, ‘리필제품’, ‘다회용제품’ 등을 판매하는 일과 제로웨이스트 교육, 캠페인 활동 등을 하고 있어요.
‘수리상점 곰손’의 부제는 ‘기후위기를 건너는 일상생활 기술’인데요. 한 번 산 물건을 오래오래 쓸 수 있도록 수리, 수선하는 생활기술을 배우는 곳이에요. 핸드폰 배터리도 교체하고, 우산도 고치고, 각종 공구 사용법과 구멍 난 옷을 꿰매는 법도 배울 수 있죠.
과거엔 쓰던 물건이 고장이 나면 고치는 게 당연했어요. 모든 제조사엔 AS센터가 당연히 있었고, 동네마다 여러 물건을 고치는 만물 수리상이 있었죠. 그러나 이제 쓰다가 고장이 나면 버리고 새 물건을 사는 방식의 소비가 기본값인 사회가 됐어요. 수리하고 싶어도 수리할 곳이 없고, 제조사에선 수리를 위한 부품이나 매뉴얼도 제공하지 않아요. ‘수리상점 곰손’은 스스로 수리하고 수선하는 법을 배우며, 사회에 수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자리 잡도록 ‘수리권’ 활동도 펼치고 있어요.
─ 환경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알고는 있지만, 막상 실천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알고 느끼고 행동하는 게 바로 연결되는 사람도 있지만 잘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뭐라도 일단 시작해 보세요. 페트병 분리배출 할 때 꼭 라벨을 떼고 내놓든가, 음식물을 남기지 않고 먹는다든가, 텀블러를 갖고 다닌다든가, 자동차를 덜 타든가, 배달 음식을 덜 시킨다든가. 아니면 환경단체에 기부를 해 보는 것도 방법이죠. 거창하지 않더라도 뭐라도 당장 할 수 있는 것, 관심 가는 것을 해 보세요.
그리고 혼자 하려 하지 말고, 같이 하려는 동료를 만나세요. 나의 실천을 지지하고 격려해 주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지속할 수 있을 거예요.
─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채 환경에 해를 끼치는 사소한 행동이나 습관도 존재할 것 같아요
한 가지만 꼽자면 물티슈 사용을 말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사람이 평균 하루에 11장 정도의 물티슈를 쓴다고 합니다. 젖은 채로 버려지는 물티슈는 소각할 때 더 많은 열이 필요하고, 플라스틱 재질이라 땅에 묻혔을 때 썩지도 않죠. 게다가 여전히 변기에 물티슈를 버리는 사람도 있어요. 물에 풀어지는 물티슈라고 변기에 버려도 된다고 나오는 제품도 있지만, 분해 조건에 따라 풀어지는 속도가 달라요. 변기에 버려진 물티슈가 하수관을 막기도 하고 하수처리장까지 흘러가 펌프 등 시설물의 기계 고장을 일으켜 사람들이 일일이 물티슈를 걷어내는 작업을 해야만 하죠. 대용량 물티슈를 사다 놓고, 물만 쏟아도 뽑아 쓰고 함부로 버리는 습관만큼은 꼭 바꾸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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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으로, 인류세를 살아가는 모든 기후시민에게 한 마디 부탁합니다
기후위기로 닥칠 여러 비관적인 상황이 있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인류가 생태계의 조화를 깨트리고 기후위기를 일으키고 있다는 걸 자각한 첫 세대예요. 자각한 순간 변화가 시작되고, 오늘의 변화가 결국 미래를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사소하거나 작다고 생각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당장 시작해 보세요.
또 이런 각자의 실천들이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회의 제도와 법이 바뀌어야 해요. 제도와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국회나 정부가 기후와 환경을 최우선 고려할 수 있도록 견인해 내는 것도 우리 기후시민의 역할이라는 걸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정명희 환경운동가 “우리는 기후위기를 자각한 첫 세대예요” (인터뷰)
강여울 조선에듀 기자
ky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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