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수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비상 걸린 초등학생 ‘사이버 도박’
서민수 경찰관
기사입력 2024.05.01 09:00

서민수 경찰관

  • 사이버 도박이 성인에서 고등학생으로 이동했다 이제 중학생으로 연령이 낮아졌다는 걸 부정할 수 없고, 이제 초등학생도 안심할 수 없게 됐습니다.
    ▲ 사이버 도박이 성인에서 고등학생으로 이동했다 이제 중학생으로 연령이 낮아졌다는 걸 부정할 수 없고, 이제 초등학생도 안심할 수 없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평소 활달한 편은 아니지만 나름 친구들과 갈등 없이 지내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도 흘려듣지 않는 아이죠. 말수가 없기는 하지만, 학급에서 자기 의견도 곧잘 말하는 아이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부모님과 씩씩하게 인사하고 학교에 와서 친구들과 유쾌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방과 후 집으로 가는 길에 알 수 없는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문자에는 대뜸 ‘하루를 즐겁게 보내자’는 다정한 문장이 적혀있었고, 그 밑으로 인터넷 주소창 같은 ‘링크’가 달려 있었죠.

    만일 이 상황에서 이 아이가 여러분의 자녀라면 어떻게 행동할까요. 그러니까 우리 아이라면 링크를 누를까요, 누르지 않을까요. 한 연구에서 아이의 호기심으로 인한 행동 반응은 어른보다 7배 가까이 높다고 합니다. 그만큼 아이의 호기심은 즉각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죠. 아이의 행동은 우리의 예상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문자를 본 순간 바로 링크를 눌렀고 링크는 곧장 도박 사이트로 연결됐습니다. 그럼, 아이는 도박 사이트를 보고 이게 도박 사이트인지 게임사이트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요.

    처음 도박 사이트를 경험하는 아이들은 사이트에 있는 단어뿐 아니라 캐릭터 디자인까지도 게임사이트와 흡사해 알아차리기 쉽지 않습니다. 결국, 아이는 사이트에서 설명하는 대로 휴대전화로 돈을 충전해 홀짝·사다리·스포츠 결과 맞히기를 해 5만 원을 벌었습니다. 중요한 건, 아이는 이 사실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까지 했다고 하죠.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아이의 휴대전화에서 도박 사이트를 보게 돼 아이의 도박을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작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사이버 도박 특별단속’을 벌여 청소년 1035명을 포함해 총 2925명을 검거했습니다. 놀랍게도 전체 도박 사범 중 35.4%가 청소년이었죠. 설마설마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난 셈입니다. 도박으로 검거된 청소년 중에는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고, 광고하는가 하면, 도박용 대포폰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검거된 청소년 중에는 고등학생이 798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이번 단속에서 처음으로 초등학생 2명도 적발됐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맞습니다. 앞서 말한 초등학생 아이의 사례는 이번 단속에서 적발된 아이의 이야기를 각색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이번 단속 과정에서 중학생이 ‘총책’을 맡아 도박 조직을 진두지휘한 사실도 밝혀졌다는 겁니다. 한 중학생이 고등학생과 공모해 사이버 도박 사이트를 직접 개설하고, 지인 찬스를 이용해 100여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참여하도록 해 무려 2억 원이 넘는 돈을 챙겼다고 하죠. 더구나 운영에 필요한 홍보, 환전, 불법 대포계좌 구매 등 모든 역할에서 중학생들이 주도했다는 게 밝혀져 충격을 줬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이버 도박이 성인에서 고등학생으로 이동했다 이제 중학생으로 연령이 낮아졌다는 걸 부정할 수 없고, 더구나 초등학생 2명이 적발된 것으로 보아 이제 초등학생도 안심할 수 없게 됐죠. 다시 말해 중학생은 물론이고 이제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당장 아이의 계좌와 휴대전화 소액결제 명세를 확인하지 않으면 아이의 안전을 안심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심상치 않은 청소년 사이버 도박의 특징과 부모의 대응 방법을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먼저, 청소년 사이버 도박은 성인 도박과 달리 철저하게 ‘집단화’ 경향을 보입니다. 그래서 도박 진입 경로 또한 ‘친구 소개’가 많고 다음으로 SNS나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배너, 스팸 광고가 주요 경로죠. 특히 또래 집단으로 움직이는 아이들의 특성을 고려하면 또래 집단 안에서 ‘슈퍼전파자’가 있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또래 집단 안에 한 아이가 도박하면 나머지 친구들도 도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들의 속성상 다른 친구들이 도박하면 안 할 수 없는 구조를 보이죠. 이걸 심리학에서는 ‘동조압력(Peer Pressure)’, 사회학에서는 ‘소외 불안 증후군(Fear of Missing Out)’이라고 부릅니다.

    또,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어떻게 사이버 도박에 입장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될 겁니다. 현재 불법 사이버 도박 사이트는 아이들에게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습니다. 인증이 없거나 인증이 있더라도 형식에 불과해 거짓말로 나이를 속이면 아이 누구나 입장할 수 있죠. 계좌가 있는 아이는 계좌이체로 판돈을 충전하지만, 초·중학생의 경우 계좌나 현금이 없을 때는 소지하고 있는 휴대전화로 소액결제 해 충전합니다. 특히, 사이버 도박 업체는 아이가 돈이 없더라도 ‘꽁머니’라고 해서 공짜로 도박할 수 있도록 무료 충전까지 해주고 있고 친구를 데리고 오면 성과급까지 지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도박 사이트에 접근한 아이들은 빠르고 간단한 도박 게임과 스포츠 승부를 알아맞히는 도박을 즐깁니다. 특히 ‘실시간 게임’이라고 해서 단시간에 결과가 나오는 홀짝, 타조, 사다리, 달팽이 같은 게임을 더 많이 즐기는데 이러한 게임은 짧은 시간에 많이 할 수 있어 중독성이 높죠. 

    최근에는 아이들이 이마저도 시시하다고 해 성인들이 하는 바카라, 룰렛, 포커 같은 전형적인 도박도 서슴지 않습니다. 결국, 아이들은 도박에 빠지게 되면 부모님의 신분증을 도용해 대출받거나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큰 빚을 지게 되면서 결국, 학업은 물론 가정의 화목과 개인의 일상이 무너지는 처참한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부모님들이 주목해야 하는 건, 도박행위가 아이들의 문제행동이나 비행으로 생각해 “우리 자녀는 상관없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기억해 주세요.

    그럼, 부모는 아이의 도박 징후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또, 알게 됐다면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까요. 일단, 아이가 평소와는 다르게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많아지거나 휴대전화 요금이 증가한다면 의심해 봐야 합니다. 특히 아이가 최근 들어 돈에 집착하거나 피곤해 보인다면 부모가 잠든 시간에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도박할 가능성이 큽니다.

     또, 이미 도박 사실을 알았다면, 곧장 ‘한국 도박 문제 예방치유원’에서 운영하는 ‘1336번’으로 전화해 상담을 받거나 지역에 있는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중요한 건, 도박은 부모의 훈육으로 다스릴 수 있는 만만한 주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다행히 아이가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를 받는다면 아이는 다시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부모는 아이의 도박을 절대 가볍게 여기지 말고 ‘심각한 질병’으로 인식해 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