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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난 영재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나요?” 송용진 인하대학교 수학과 교수에게 물었다. 뛰어난 암기력이나 빠른 암산 등의 대답을 기대했으나,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겸손’이었다.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는 지난 1995년부터 20여 년간 ‘국제수학올림피아드(International Mathematical Olympiad, IMO)’ 한국대표팀을 이끌었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 대표는 상위 0.001% 안에 드는 영재들로 꼽힌다. 송 교수는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이들을 지켜봐 왔다. 그가 만난 대한민국 상위 0.001% 영재들은 어떤 모습일까. 송 교수와 함께 ‘영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다음은 송용진 교수와의 문답.
─ ‘영재’라는 말 흔히 사용하지만 정확한 의미는 모르는 것 같아요.
“영재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지 20여 년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도 영재의 뜻을 혼동하시는 분들이 있더군요. 영재는 그저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 아이’라는 뜻이에요. ‘체육 영재’, ‘음악 영재’ 등과 같이 예체능 분야의 영재를 제외하고 저는 영재라는 말을 ‘머리 좋은 아이’에 국한해서 주로 사용합니다. 많이들 영재를 ‘공부 잘하는 아이’와 혼동해요. 그래서 저는 ‘공부 잘하는 아이’ 즉, 학업 성취가 좋은 아이는 ‘수재’라고 부르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수재라는 말을 사용해 영재교육의 목표는 단순히 말하자면 ‘영재를 수재로 키우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영재를 구분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있나요?
“현재 정부의 ‘영재교육시행령’에서는 영재의 범위를 상위 2% 정도의 지능을 가진 학생으로 잡고 있습니다. 웩슬러 지능검사(IQ 검사) 기준으로는 130점 이상인 학생들이 해당하죠. 최상위급의 영재들을 지칭하기 위해 ‘고도영재’, ‘초고도영재’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고도영재는 일반적으로 상위 0.1% 이내의 지능을 가진 아이를, 초고도영재는 상위 0.01% 이내를 의미합니다. 흔히 영재 판별 기준으로 지능검사를 떠올리지만, 단순히 수치를 통해 영재성을 나타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지난해 교육부가 발표한 ‘제5차 영재교육진흥종합계획’에 처음으로 고도영재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채택됐고, 교육부는 고도영재의 판별과 그들을 위한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 영재라고 하면 ‘태어날 때부터 지능이 뛰어난 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타고난 영재’, ‘길러진 영재’라고도 하는데요, 대중은 타고난 영재를 좋아하고, 타고난 영재가 진짜 영재라고 생각하죠. 뛰어난 운동선수나 음악가를 볼 때도 사람들은 타고난 재능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어요. 노력만으로는 타고난 천재를 따라갈 수 없다거나, 진짜 천재는 따로 있다고 하는 분들을 흔히 볼 수 있죠.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뛰어난 성취를 이루는데 재능은 꼭 필요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스스로 노력’이에요.”
─ 길러진 영재가 타고난 영재의 재능을 따라잡기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저는 타고난 재능이 길러진 재능보다 더 소중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릴수록 영재성의 차이가 두드러지지만, 커가면서 점차 재능의 차이는 좁혀집니다. 고등학생 또는 대학생쯤 되면 당연히 재능보다 본인의 노력과 관심이 더 중요해져요. 뛰어난 성취를 이루려면 재능은 꼭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 이상의 재능을 가진 학생들끼리는 더 이상 재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 대표 정도가 되려면 상위 0.001%, 즉 10만 명 중 한 명 정도의 성취를 이뤄야 합니다. 그 정도 성취를 이루려면 상위 0.1~1% 정도의 재능은 꼭 필요하죠. 하지만 재능을 가진 수백 명 학생 사이에서 최고가 되는 데 있어 더 이상 재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수학을 매우 잘하는 학생들에게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대표 학생들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다가오죠. 일반 학생들에게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대표 학생은 엄청난 천재로 보일 테지만, 실은 대표 학생들도 남다른 성실함과 끈기로 그런 성취를 이룬 것입니다. 가끔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대표 학생들을 볼 때면 ‘저 아이가 저런 성격이 아니었다면 과연 저 정도 실력을 갖출 수 있었을까?’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 아이의 영재성은 보통 몇 살쯤 발현되나요?
“요즘에는 좋은 환경과 조기교육 등의 영향으로 어린 나이부터 뛰어난 영재성을 보이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런 아이들의 특징으로는 ▲뛰어난 기억력 ▲강한 호기심 ▲높은 이해력 ▲강한 집중력 ▲자아의식 ▲예민한 감성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릴수록 재능의 차이가 두드러져 보입니다. 일부 영재 중에는 ‘과흥분성’을 보이거나, 사회성이 크게 부족한 아이들도 있어요. 영재들은 대개 감성이 예민하고, 자아의식이 강해서 생활 지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긴 합니다.
여러 지능검사 중에 우리나라에서는 웩슬러 검사가 가장 대중적입니다. 요즘에는 5세 이하의 유아용 웩슬러 검사를 받는 아이들도 많다고 해요. 하지만 저는 6세 이후에 검사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부모는 지능지수나 학업 성적이 높은 자녀를 보면서 ‘혹시 내 아이도 영재가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현대의 지능검사는 오랜 기간 연구하고 개선되어 온 것이어서 나름의 신뢰성을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지능지수가 높은 아이들이 영재인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지능지수는 그저 참고 사항일 뿐 지능의 정도를 정확하게 나타낸다는 것은 무리이기도 하고, 자라면서 점수가 변하기도 합니다.
학업 성적이 아주 뛰어난 아이는 당연히 영재입니다. 재능이 없이는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루기 어렵죠. 역으로 영재지만 학업 성적이 뛰어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당연하죠. 이 단순한 상관관계를 혼동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자칭 영재교육 관련자 중에도 그런 분들이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영재와 수재라는 말을 써서 앞서 언급한 상관관계를 다시 말씀드리자면, 영재라고 해서 반드시 수재인 것은 아니지만, 수재는 당연히 영재입니다. 즉, 수재의 집합은 영재의 집합의 부분집합이지요. 예전에 과학영재교육을 주도하던 분들 중에는 이런 상관관계를 혼동해서 ‘시험 잘 본다고 영재는 아니다.’ ‘수학올림피아드 대표라고 해서 영재인 것은 아니다.’ 등 같은 주장을 하는 분들이 주류를 이룬 적도 있었습니다.”
─ 영재의 특징이나 기준 외에 교수님이 실제로 만난 영재들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나요?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대표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겸손’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학생들이 모두 겸손하고, 착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최고의 학업 성취를 이룬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이고 남들과 잘 소통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는 선입견을 갖기 쉽지요. 이들을 잘 관찰해보니 겸손한 마음가짐은 학업 성취에 필요한 성품인 ▲끈기 ▲성실 ▲사회성 ▲인내심 ▲책임감 ▲타인을 인정하기 ▲타인의 말 듣기 등과 모두 연관성이 있는 핵심적 성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탁월한 영재들은 대개 완벽주의 성향 있어요. 겸손의 미덕을 갖춘 영재는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힘도 좋습니다. 그런 것을 ‘심리적 회복탄력성’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정신적 맷집’이라고 부릅니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강한 경쟁심과 자신감이 꼭 필요합니다. 다만 그것은 건전한 경쟁심, 건전한 자신감이어야 해요. 겸손한 마음가짐을 가진 아이들은 남들이 잘하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가 있어요. 자기보다 잘하는 아이들을 미워하거나 자기는 뭐든지 1등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아이들은 자신의 성과가 만족하지 않을 경우, 핑계를 대거나 경쟁을 회피하게 되지요.”
─ 그렇다면 영재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공통점은요?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대표급 학생들의 또 다른 공통점을 꼽자면 그들의 어머니들이 대개 아주 침착한 분들이라는 점이에요. 아이의 재능이 아무리 좋더라고 너무 성급하게 아이를 몰고 가면 좋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가 사춘기를 겪게 되고, 그때는 잘 넘기더라도 뒤늦게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성급하게 아이를 몰지 않는 것.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영재성 계발에는 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실 10세 이하의 영재에게는 부모 외에 남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요. 이때 부모가 주의해야 할 것은 아이의 영재성에 맞는 효율적인 교육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영재성이 뛰어나고 학업 집중력이 좋은 아이의 경우, 수학 공부나 영어 공부를 시키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과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영재교육이 모자란 것은 별문제 없지만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거든요.
어린 영재는 아이의 재능 계발이나 학습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다른 소양교육에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아이가 진짜 머리가 좋다면 학업에 필요한 성품과 소양을 갖추기만 하면 언젠가는 공부를 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소양교육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소양교육을 위해서는 세 가지에 유념하면 좋아요. 첫째는 다양한 것에 관심 갖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음악, 그림, 운동 중 관심 있어 하는 것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외에도 별, 곤충, 여행, 지리, 언어, 캠핑, 바둑 등 다양한 것에 관심을 보이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쉽게 심취하는 동영상이나 게임도 어느 정도 선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이미 그런 시대에 살게 되어서 어쩔 수 없는 데다가 아이가 지나치게 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것도 자제력을 키우는 교육적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두 번째는 독서입니다. 독서가 중요한 것은 누구나 알지만 어떻게 책 읽기를 좋아하게 만드느냐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나마 알려진 방법으로는 부모가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도서관에 자주 데려가기, 책 읽기를 실제로 재미있게 느끼게 하기 등입니다.
세 번째는 남들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유도하는 것입니다. 영재일수록 자기중심적이거나 자기가 늘 최고여야 한다는 생각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훈육이 필요합니다. 부모 스스로가 남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고 아이가 그런 행동을 했을 때 칭찬을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야단칠 일이 있다면 그것은 가능한 남들에 대해 실례가 되거나 피해를 주는 행동을 했을 때 위주로 야단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단체 놀이나 단체 활동을 통해 협동심과 남에 대한 배려심을 키우는 것, 그리고 불쌍한 아이들에 대해 관심과 동정심을 갖도록 하는 것도 좋습니다.”
송용진 교수는 1991년부터 인하대학교 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수학과에서 이학사,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위상수학 분야 이학박사를 받았다. 1995년부터 20여 년간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대표단 단장·부단장을 맡으며, 대한민국 대표팀을 이끌었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선출직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대한수학회 수학문화앰버서더이다. 최근에는 책 ‘영재의 법칙’을 출간했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인터뷰①] 송용진 교수가 말하는 ‘상위 0.001%’ 영재에게 가장 중요한 것
장희주 조선에듀 기자
jhj@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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