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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고등학교 교장을 지내신 전성은 선생님은 “교육은 평화를 위한 목적 이외의 어떤 목적으로도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필자에게 요즘 특별히 저릿하게 와닿는 것은 지금이 평화롭지 않은 세상이기 때문인 것 같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여전히 진행 중인 싸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희생자 소식, 우리 사회 곳곳 갈등의 현장들은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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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이들이 소비하는 문화가 즉흥적이고 자극적이며, 다소 폭력적인 것임을 듣게 될 때마다 안타까움이 일어난다. 길지 않지만 인생을 살아오며 배운 것은, ‘작은 태도와 선택이 훗날 큰 결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금 가지는 가치관이나 그로 인한 선택들은 언젠가 ‘어떤’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매일의 삶에서 나의 태도와 선택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목표를 위해 다른 사람의 손해나 아픔을 모른 척하는 시각, 반성하지 않는 습관은 이익 때문에 진실을 외면하거나, 국익을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태도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서, 생명과 향유, 연대감, 평화, 성찰, 감사, 진실의 가치를 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깊고 넓은 생각의 경험, 생각의 길, 생각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눈과 귀로 들어오는 자극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잘못된 흐름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늘 만족스러운 수업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하는 자리가 되었던 몇 번의 수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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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말, 초3 학생들과 <흥부가>(이청준, 문학과 지성사) 수업을 했다. 익숙하게 들어왔던 줄거리였지만, 함께 이야기하고 글을 쓰며 ‘자신 안에 있는 흥부와 놀부의 모습’을 살펴보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다 흥부의 모습을 닮고 싶어 하지만 놀부의 모습도 가지고 있다. 나는 밖에서는 흥부의 모습이고 집에서는 놀부의 모습을 닮았다. 왜냐하면 나는 집에서 맛있는 반찬을 더 먹으려고 아빠와 경쟁하고 욕심을 부리며 밥을 먹기 때문이다. 또 집에서 물건을 사달라고 엄마한테 떼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밖에서는 집보다 더 착하고 생각보다 친구를 많이 도와주고 배려하는 편이다.’
초6 학생들과는 <잘사는 나라, 못사는 나라>(석혜원, 다섯수레) 수업을 진행하였다. ‘국내총생산, 국민총소득, 1인당 국민 소득’에 대해 배우면서 세계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도 접하게 되었다. 중국은 국내총생산 기준으로 세계 경제 대국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71위에 해당한다. 국민들이 생산해 낸 소득의 합은 전 세계 최상위권에 해당하지만, 국민들의 실제 생활은 그와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과 ‘정말 잘사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라는 질문을 나누어 보았다.
중3 학생들과 했던 <아Q정전>(루쉰, 창비) 수업 때에는 절망스런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정신승리법'으로 대응하는 인물 ‘아Q’를 통해, 서양 열강에 굴복하면서도 자존심만을 내세웠던 근대 중국인들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보았다. 실수와 실패의 순간에 패배를 인정하고 원인을 들여다보는 것,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정직하게 모색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수업들을 통해 학생들은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을 만나게 되었고, 필자는 수업한 내용을 스스로의 가슴 속에 되묻고 새기는 계기를 얻었다. “선생님, 여기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역사책에 기록될 수도 있을까요?” 이번 칼럼을 쓰는 동기가 된 한 학생의 질문이다.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 뜸을 들이다가 대답할 정도로 교사의 마음을 묵직하게 한 물음이었다.
연어는 강의 흐름을 거슬러 가기 위해 ‘태어난 하천의 냄새’를 쫓아간다고 한다. ‘별자리’를 보고 찾아간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회귀 원리가 무엇이든, 책읽기와 글쓰기가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가게 돕는 어떤 냄새가, 어떤 별자리가 되길 바란다.
[리딩엠의 독서논술] 생각의 자리를 만드는 독서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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