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엠의 독서논술] 마음에 닿는 글 친구 만나기
박혜진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송파파크리오교육센터 부원장
기사입력 2023.11.29 09:00
  • “내 인생을 바꾼 책은 무엇인가?”

    수업을 하다가 불쑥 하게 된 질문에 생각보다 많은 학생이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그럼 내가 진심으로 읽은 책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라고 해도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그저 눈으로 보고 뇌로 전해야 하는 활자의 일부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글이나 작가와 교감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책을 어떻게 봐야 진심으로 읽을 수 있을까에 대한 방향을 잡고 싶어졌다. 

  • 박혜진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송파파크리오교육센터 부원장
    ▲ 박혜진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송파파크리오교육센터 부원장

    우선 처음부터 엄청난 책을 만나겠다는 마음은 단호하게 버려야 한다.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겪으면서 어떤 사람이 나와 잘 맞는 친구인지 알 수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옷깃이 스치듯 스쳐 지나가는 책 중에서도 내 마음에 남는 ‘글 친구’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일단 끝없이, 많이, 다양하게 만나야 한다. 매달 다른 분류에서 접점 루틴을 만드는 것도 좋다.

    글의 서론 첫 글자를 시작하기가 가장 쉽지 않듯,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나’와 ‘글 친구’의 접점을 찾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평소 관심 있었던 분야나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접근은 아주 손쉬운 방법의 하나다. 나에게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색도 더욱 빠르게 가까워지는 지름길이다. 사방팔방 흩어진 다양한 접점을 겨냥하는 것은 인생을 함께할 글 친구를 만날 수 있는 하나의 지략이 된다.

    자서전이나 위인전, 에세이를 읽어보는 것도 좋다. 호불호가 강한 이 분류의 책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녹아있다. 내가 향하려고 하는 길을 앞장선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이다. 나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을지라도 상관없다. 타인의 나침반을 바라보며 나의 방향 찾기에 도움을 받고 내 길을 책 친구와 함께 걷는 셈이다.

  • 같은 ‘글 친구’일지라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달라진다. 10살에 만난 어린 왕자는 순수함이다. 20살의 어린 왕자는 현실이고, 30살의 어린 왕자는 인생의 교훈을 준다. 연도의 개념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단순히 시간만 두고 봐도 다르다. 아침에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읽은 책과 늦은 저녁 촉촉한 감수성을 안고 만난 책은 천지 차이다. 시간에 따라 같은 글 친구라도 나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는 달라지는 것이다. A 시간에 봤던 것이 재미없고 이해가 안 됐을지라도 B 시간에 다시 봤을 때 평생지기가 될 수 있다. 장소도 마찬가지다. 아늑한 집에서, 벚꽃잎이 흩날리는 길에서, 억새가 춤을 추는 강가에서, 함박눈이 떨어지는 겨울의 창가에서 만난 글 친구는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 장소와 시간을 달리하면서 반복해 만나보면 의미는 무한대로 해석할 수 있고 서로 다른 보폭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마음을 두드리는 글 친구는 언제나 내 주변에 있다.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른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설렘도 좋고 등잔 밑을 밝혀 책꽂이에 고독하게 잠들어 있던 글 친구를 찾아내는 것도 좋다. 책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책은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내 그릇의 깊이는 글 친구와 얼마나 교감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글 친구의 손을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