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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있는 글을 쓰는 첫째 단계는 용기를 갖는 단계이다. ‘멋진’ 생각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가치롭다’는 자존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글쓰기 초반에 이 자존감을 얻기 위해서는 부모님 또는 선생님의 지지가 필요할 수 있다.선생님 : 이번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어디였니?학생 : 재미있는 부분이 없었는데요.선생님 : 응, 그럼 재미있는 부분이 없었다고 써 볼까? 그럴 수 있으니까! ‘이 책에서는 재미있는 부분이 없었다.’ 왜 재미가 없었을까?학생 : 그냥요. 그림도 없고, 글씨가 작아요.선생님 : 맞아. 글씨가 작으면 읽기가 싫지. ‘글씨가 작은 책은 읽기가 쉽지 않아서 재미있지 않았다.’ 이렇게 쓰면 되겠네? (쓰는 시간) 그럼 그중에서 그나마 기억에 남는 부분은 뭐가 있었어? 재미는 없더라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내용.학생 : 사자가 똑같은 말을 반복한 거요. ‘붉으락푸르락’이라고 하면서요.중요한 것은 ‘재미있는 부분이 없었는데요.’라는 대답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써 보는 것이다. ‘재미없다’라는 생각도, 그의 중요한 의견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재미없다는 대답을 쓰고 나면 그때부터 글의 물꼬가 열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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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생각’이란 없다. 그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글로 표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문장다운 표현으로 다듬어 주기만 하면 된다. 이런 과정을 어느 정도 거치면, 학생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생각을 용기 있게 써 내려갈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맞는 답’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눌리지 않고, 나의 생각이 가치롭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둘째 단계는 형식적 완결미를 갖추는 단계이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중요하다. 그래야 소통할 수 있는 글이 되는 동시에 나의 글을, 스스로 ‘괜찮은 글’이라고 여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 자신이 없으면 글쓰기 자체에도 자신감을 가지기 어렵다.셋째 단계는 고민하며 쓰는 단계이다. 생각하며 쓰는 글은, 읽는 이 또한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글은 당연히 좋은 글이 될 수밖에 없다. 상투적인 글이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는 ‘지루함’이 글을 통해 전해지기 때문이다. 조금 서툴고 세련되지 못하더라도, 고민을 담은 글은, 쓰는 이와 읽는 이의 생각을 성장시킨다.글의 주제나 질문을 보고, ‘바로’ 써 내려가기보다,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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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단계는 책을 읽고 쓰는 단계이다.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최재천 교수는 ‘독서는 일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초등 고학년부터 적용되는 것 같다. 4학년 때까지는, 비교적 편안하게 쉬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5학년, 6학년, 중학교 때 만나게 되는 책들은 ‘배우는 자세’로 읽는 것이 필요하다.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읽지는 않더라도,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히 여기며 배우는 자세로 읽을 때 저자가 전달하는 배경 지식, 작품의 주제를 느끼고 얻게 된다.대충 읽으려고 하면 내용이 들어오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원하는 재미’는 얻을 수 없다. 그러나 한 글자 한 글자 배우는 자세로 읽어가다 보면 ‘마음에 지식이 쌓여가는 기쁨, 노력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또 이렇게 읽으면, 글이 쓰고 싶어진다. 책을 읽으며 배웠기 때문에, 떠오른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이 네 과정은, 첫 단계를 제외하고는 순차적이지 않으며, 때론 회귀적이고, 뒤섞이기도 하며 또는 한꺼번에 등장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이 단계를 만족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글들이 쓰이기도 한다. 글에도 사람 수만큼의 다양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위에 제시된 과정을 하나의 척도로 삼아, 자신의 글쓰기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과정으로 도전해 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글=손지혜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삼성교육센터 부원장
글에 깊이를 더하는 몇 가지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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