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초등

글에 깊이를 더하는 몇 가지 단계

손지혜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삼성교육센터 부원장

2023.03.1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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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있는 글을 쓰는 첫째 단계는 용기를 갖는 단계이다. ‘멋진’ 생각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가치롭다’는 자존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글쓰기 초반에 이 자존감을 얻기 위해서는 부모님 또는 선생님의 지지가 필요할 수 있다.

선생님 : 이번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어디였니?
학생 : 재미있는 부분이 없었는데요.
선생님 : 응, 그럼 재미있는 부분이 없었다고 써 볼까? 그럴 수 있으니까! ‘이 책에서는 재미있는 부분이 없었다.’ 왜 재미가 없었을까?
학생 : 그냥요. 그림도 없고, 글씨가 작아요.
선생님 : 맞아. 글씨가 작으면 읽기가 싫지. ‘글씨가 작은 책은 읽기가 쉽지 않아서 재미있지 않았다.’ 이렇게 쓰면 되겠네? (쓰는 시간) 그럼 그중에서 그나마 기억에 남는 부분은 뭐가 있었어? 재미는 없더라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내용.
학생 : 사자가 똑같은 말을 반복한 거요. ‘붉으락푸르락’이라고 하면서요.

중요한 것은 ‘재미있는 부분이 없었는데요.’라는 대답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써 보는 것이다. ‘재미없다’라는 생각도, 그의 중요한 의견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재미없다는 대답을 쓰고 나면 그때부터 글의 물꼬가 열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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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혜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삼성교육센터 부원장
‘틀린 생각’이란 없다. 그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글로 표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문장다운 표현으로 다듬어 주기만 하면 된다. 이런 과정을 어느 정도 거치면, 학생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생각을 용기 있게 써 내려갈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맞는 답’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눌리지 않고, 나의 생각이 가치롭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둘째 단계는 형식적 완결미를 갖추는 단계이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중요하다. 그래야 소통할 수 있는 글이 되는 동시에 나의 글을, 스스로 ‘괜찮은 글’이라고 여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 자신이 없으면 글쓰기 자체에도 자신감을 가지기 어렵다.

셋째 단계는 고민하며 쓰는 단계이다. 생각하며 쓰는 글은, 읽는 이 또한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글은 당연히 좋은 글이 될 수밖에 없다. 상투적인 글이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는 ‘지루함’이 글을 통해 전해지기 때문이다. 조금 서툴고 세련되지 못하더라도, 고민을 담은 글은, 쓰는 이와 읽는 이의 생각을 성장시킨다. 

글의 주제나 질문을 보고, ‘바로’ 써 내려가기보다,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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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삼성교육센터
네 번째 단계는 책을 읽고 쓰는 단계이다.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최재천 교수는 ‘독서는 일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초등 고학년부터 적용되는 것 같다. 4학년 때까지는, 비교적 편안하게 쉬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5학년, 6학년, 중학교 때 만나게 되는 책들은 ‘배우는 자세’로 읽는 것이 필요하다.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읽지는 않더라도,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히 여기며 배우는 자세로 읽을 때 저자가 전달하는 배경 지식, 작품의 주제를 느끼고 얻게 된다.대충 읽으려고 하면 내용이 들어오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원하는 재미’는 얻을 수 없다. 그러나 한 글자 한 글자 배우는 자세로 읽어가다 보면 ‘마음에 지식이 쌓여가는 기쁨, 노력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또 이렇게 읽으면, 글이 쓰고 싶어진다. 책을 읽으며 배웠기 때문에, 떠오른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네 과정은, 첫 단계를 제외하고는 순차적이지 않으며, 때론 회귀적이고, 뒤섞이기도 하며 또는 한꺼번에 등장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이 단계를 만족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글들이 쓰이기도 한다. 글에도 사람 수만큼의 다양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위에 제시된 과정을 하나의 척도로 삼아, 자신의 글쓰기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과정으로 도전해 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글=손지혜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삼성교육센터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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