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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모스’라는 말에 조명에 불이 들어오고, ‘아베르토’라는 주문에 커튼이 열리고, ‘스코지파이’라는 명령에는 로봇 청소기가 청소를 시작한다. 마법과 같은 일이 벌어지는 모 전자 회사의 스마트싱스 광고를 한 번쯤 봤을 것이다.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람과 사람이 촘촘히 연결됐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사람과 사람을 넘어서 사물, 사람, 장소, 프로세스 등 유·무형의 사물들이 연결돼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연결의 깊이는 어떨까? 인터넷과 스마트싱스로 우리의 깊은 그릇을 채울 수 있을까?‘식물학자의 노트’라는 책에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이라는 말이 나온다. 식물과 식물 뿌리에 붙은 수많은 곰팡이들이 연결돼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것이다. 땅속에 있는 곰팡이가 일종의 인터넷과 같은 역할을 한다. 땅속 곰팡이는 식물과 공생하며 탄소, 질소 등을 교환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한걸음 더 나아가 식물과 식물을 연결해준다. 이를 테면 환경의 변화나, 주변에 어떤 식물이 있는지, 침략자의 등장 등 더 심도 있는 정보까지 전달한다.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의 식물학자 수전 더들리 교수는 봉선화가 근처의 식물이 친족인지 아닌지를 뿌리로 구별하고, 친족이라고 생각되면 뿌리나 잎, 높이 등을 조절해 이웃 식물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노력까지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상대방의 삶을 방해하지 않고 상생하려는 연결. 식물 세계에서는 땅속 곰팡이가 그 역할을 한다면 우리 인간 세계에서는 무엇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글쓴이는 감히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책은 먼저 독자와 저자를 연결해 준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어휘와 문장, 그리고 문단을 보고 거기에 담긴 뜻을 헤아리는 과정이다. 독자는 저자가 정성스럽게 적은 글을 읽으며 저자의 생각을 하나씩 따라가게 된다. 그 가운데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정하는 가운데 둘의 관계를 설정해 나간다. 수긍의 영역이 많든 그렇지 않든 간에 둘 사이에는 나름의 관계가 생긴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내가 아끼는 작가와 멀리하고 싶은, 혹은 안타깝게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저자도 생기기 마련이다.둘째, 책은 나와 친구를 연결해 준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현장에 몸을 담고 있다 보니 그 누구보다 체험적으로 많이 목격하는 연결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 한다. 그 경험이 강할수록 나누고자 하는 열망은 더하다. 아이들은 교실 문턱을 넘자마자 책 이야기를 시작한다. 문이 열리는 동시에 입술이 열리는 식이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 바꾸고 싶은 점, 의문이 들었던 장면 등 쉴 새 없이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한 주 동안 이 많은 수다를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다. 아이들이 그렇게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때론 뜨겁게 토론하기도 하며 동지애를 키운다. 이러한 시간이 쌓이면 이제 서로 책을 추천하고 더 깊이 생각을 나누려는 관계로 발전한다.셋째, 책은 나와 타인을 연결해 준다. 많은 연결이 있는 것 같아도 곰곰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실로 한정적이다. 그나마 만나는 사람조차도 나와 비슷한 특정 범주에 포함된 경우가 많아 우리는 79억의 세계 인구와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사실 굉장히 좁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우리에겐 79억의 면면을 이야기해 줄 책이 있으니 말이다. ‘사막의 꽃’을 보면 소말리아 소녀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고, ‘마사코의 질문’을 펼치면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은 수난에 대해 살펴볼 수 있고, ‘잘못 뽑은 반장’을 통해 우리 반 말썽쟁이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도 있다. 이처럼 책은 나와 저 멀리에 있는 타인을, 혹은 나와 결이 다른 타인을 연결해 준다.나와 저자, 나와 친구, 그리고 나와 저 멀리 타인을 연결해 주는 책. 이것이 바로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책장을 넘기며 ‘북 와이드 웹(Book Wide Web)’을 꿈꿔본다.
[교육칼럼]사회 연결망을 촘촘하게 하는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