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공부는 그만…"즐기는 공부해야 합니다"
이영규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22.07.05 22:00

-'공부' 책 펴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인터뷰

  • /최근 이화여대에서 만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설명하고 있다./ 임화승 기자
    ▲ /최근 이화여대에서 만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설명하고 있다./ 임화승 기자
    “교육의 목적은 견문을 넓히고, 즐기는 과정에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구조는 반세기 전 시행된 주입식 교육과 국·영·수 위주의 오지선다형 체제를 답습할 뿐이죠. 방대한 지식을 외우는 식이 아닌, 학생들이 모여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최재천(68)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을 이같이 진단했다. 생태학 전문가로 이름을 알렸지만, 평소 국내 교육시스템의 문제점을 제기해온 그다. 최근 이러한 숙원을 담아 ‘최재천의 공부’를 펴낸 최 교수는 “서로 협업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교육인데, 타인과의 경쟁을 통해 개인의 역량만을 신장하는 형태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를 만나 견해와 바람을 들어봤다.

    ◇대입 목적 교과 과정에…‘공부=대입’ 인식부터 바꿔야

    최 교수에게 현행 교육시스템에 대한 소회를 묻자 돌아오는 답변은 회의적이었다. 현재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고 과거와 달리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교육방식은 학력 향상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관점에서다. 지금의 구조가 이어지면서 아이들이 학습한 내용에 대한 기계적인 문제풀이 방식만을 배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이 같은 문제의 원인으로 사회 깊숙이 내리박힌 ‘공부=대입’ 시스템을 꼽았다. 그는 “학력고사가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뀐 이후에도 다양한 개선책이 꾸준히 나왔지만, 주된 목적이 ‘대입’임엔 변함이 없었다”며 “이는 경쟁을 학생의 필수 덕목과 성공의 기준으로 여기는 사회적 시선이 우리 인식에 뿌리 박혀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를 타개하려면 지금의 시험과 평가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한 차례 시험으로 학생을 판단하는 방식을 벗어나 다각화된 방향에서 바라볼 평가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최 교수는 지난 20년간 강의에서 중간·기말고사를 단 한 차례도 보지 않았다. 대신 매 학기 팀 활동을 나눠 총 10개 이상의 과제를 주고 배점을 줄여 다면평가를 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협력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답했다. “학생들은 사회에 나간 이후 타인과 협동하며 일하지만, 학교는 시험이라는 한정된 역량으로 혼자 살아남는 방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력이 모든 것을 보장해주는 시대는 오래전 끝났어요.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잘 습득하고 외우는 능력뿐 아니라 ‘팀 활동을 얼마나 잘했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평가해야 하죠.”

    ◇“다양화된 교육 확립해야”…최 교수, 환경교육 언급
  •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임화승 기자
    ▲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임화승 기자
    최 교수는 교육의 다양성 부재도 풀어야 할 숙제라고 했다. 지나친 입시 경쟁 때문에 교육을 암기식 위주의 획일화된 방향에 몰두하고 있는데, 여러 경험을 체험할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 방안 중 하나로 ‘환경교육’을 강조했다. 초·중·고 내 환경교육을 의무화해 일선 학교에서 환경 과목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추진했던 환경 교사는 전국에 20명 남짓 있는데, 이를 확대해 학교마다 1명 이상의 환경 교사를 두자는 얘기다. “환경 과목이라고 해서 거창한 수업이 아니에요. 아이들이 함께 논이나 산에 다니면서 자연을 직접 만지고 실험해보는 거죠. 이러한 생태교육은 자발성과 적극성을 높여줘 좁은 교실에선 떠올릴 수 없던 창의적 발상을 도울 수 있어요. 여러 능력을 발휘하는 활동 속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도 있죠. 지금처럼 감염병 사태를 마주한 상황에서 꼭 필요한 수업이기도 합니다.” 단 최 교수는 환경 과목을 입시에 반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대입 과목으로 편중되면 다시 암기식 시험으로 변질돼 교육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최 교수는 특히 창의력 신장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지금의 토론식 수업도 달라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주제의 토론이든 ‘올바른 방향을 찾는 과정’보다 상대방의 주장을 꺾어야 한다는 뿌리박힌 인식의 개선을 요구한 것. 그는 “좋은 토론은 짜임새 있는 말과 이를 뒷받침할 논리적인 사고력, 그리고 상대의 말에 집중하는 청취 역량이 관건”이라며 “하지만 학생들은 제대로 된 토론법을 못 배워 자기 의견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훈련이 부족한 실태”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초·중·고 때부터 생각을 정리하고,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교육을 일선 학교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견해를 내비쳤다.

    ◇올바른 교육 위해…“사교육 단속에만 초점 둬선 안 돼”

    하지만 최 교수의 이 같은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바로 사교육 문제다. 일각에서는 공교육에서 기존 국·영·수 교육시간 등이 줄면 학생과 학부모가 사교육에 더 의존할 것이란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최 교수는 “사교육은 오히려 필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교육만으로 한정된 분야를 사교육을 통해 보완이 가능해 교육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물론 사교육에 대한 지나친 의존 현상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사교육이 공교육을 조력하는 역할을 하도록 그 기준을 조정할 필요는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무엇보다도 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인식 전환이 먼저 필요하다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부모 세대 때와 비교해 지금의 자녀가 배우는 교육환경은 달라졌어요. 한 가지 능력보다 다양한 역량을 키우는 과정이 중요해졌죠. 그럼에도 ‘네가 뭘 알아’라며 아이의 결정을 대신하는 부모가 많다는 게 문제에요. 부모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공부를 할 필요는 없어요. 아이마다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히 있고, ‘어떻게 해야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죠. 부모의 응원을 받는 아이만이 올곧은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lyk12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