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얼마나 더 참아야 부모가 되나요
기사입력 2021.02.09 15:59
  • 노란 택배 상자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상자는 꽤 묵직했고, 상자 겉에는 이름과 주소가 생소한 발신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조심스레 상자를 열었더니 안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란 손난로’가 가득 들어 있더군요. ‘누가 보냈을까?’ 생각하던 찰나, 때마침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중학생인 아들 때문에 고민이 많던 한 아버님이셨습니다. 길게 써 내려간 메시지에는 고맙게도 “이제 아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게다가 개인적인 선물을 보내면 받지 않을 것 같아서 “아이들을 만날 때 나눠줬으면 좋겠다”라며 손난로를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사회의 온도를 바꿀 수 있다는 데 저는 동의합니다. 또, 부모의 마음이 가족의 온도를 결정한다는 데에도 동의하지요. 그리고 이 동의 때문에, 저는 시간과 거리를 불평하지 않고 많은 아이와 부모를 만납니다. 손난로를 보내주신 아버지를 만난 건 한 지방 서점에서 진행된 강연회장에서였습니다. 당시 아버님은 친구분과 우연히 서점을 지나다가 제 강연을 듣게 되었고, 아들의 문제를 의논해보고 싶어 강연이 끝날 때까지 먼발치서 기다렸다고 하시더군요. 사실, 보통 아버님들의 행동에 비하면 보기 드문 일입니다.

    아들의 문제는 좀 복잡했습니다. 중학생이 된 아들은 갑자기 부모와 학교 선생님에게까지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특히 엄마에게는 거친 욕설까지 서슴지 않았다는군요.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놀다가 들어오는 횟수가 늘면서 심지어 새벽 시간에 나가 아침이 다 되어서야 들어오는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아들을 향해 무섭게 야단을 쳤고, 야단을 쳐도 달라지는 게 없자 자신도 모르게 손찌검도 딱 한 번 했다고 했습니다. 화날 때마다 아이의 휴대전화를 던져 깨 먹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죠. 하지만 그날 이후 아들은 아버지를 피하기 시작했고, 대신 엄마만 상대하며 점점 더 행동이 나쁘게 변했답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오토바이 타는지 손과 다리에 멍과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이런 상황이 생기면 부모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릅니다. 저 또한 오래전 큰아들과의 전쟁에서 이미 경험한 적이 있고, 제가 만났던 아버지들이 똑같은 하소연을 했으니 이 글을 읽는 부모님 또한 “참기 힘들죠”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건 당연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아이의 행동에 부모가 화를 내는 건 지금까지 어떤 사례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경험 한 바 있습니다. 굳이 전문가들이 나서서 설명하지 않더라도 부모는 준전문가잖아요. 결국, 화를 내는 게 도움이 안 된다면 부모에게는 화를 다루는 방법이 필요하고, 아이와의 갈등 상황에서 부모의 화를 인식하는 자체가 중요합니다.

    따지고 보면, 저를 비롯한 부모들은 화를 참 잘 냅니다. 왜 유독 우리는 아이들에게 화를 잘 내는 걸까요? 저는 지금 ‘아이들에게 부모의 화가 모든 상황에서 적절한가’를 묻고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잦은 화를 내는 이유로 ‘부모가 자녀를 인식하는 일관성이 부족하다’라는 말도 있죠. 다시 말해, 아이의 성장기를 고려하면,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는 자세가 불규칙해서 일어나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부모는 양육과정에서 아이의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대부분 가정에서는 이 이상 징후를 포착하는 게 어려워서 단계가 생략된 게 사실입니다. 결국, 아이가 ‘갑자기’ 달라졌다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죠.

    아이의 비행과 일탈은 대부분 ‘가정불화’에서 시작한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불화’라는 건 일방적인 뜻을 가지죠. 아이와 부모 사이에서 화 나는 일이 생겼다는 건, 원인을 떠나 큰 화를 내는 사람은 결국 늘 부모라는 겁니다. 혹여 제 말이 부모 입장에서 서운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인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부모가 화를 얼마나 더 참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사실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문제라는 걸 의미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화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죠. 하지만 쓸데없이 화를 내는 건 아닌지, 혹은 화를 내는 정도가 너무 과한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질문은 제 생각이 아니라 아이들이 제게 물은 질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부모는 언제나 ‘큰 소리’를 내면서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화를 내지는 않죠. 사실 부드럽게 웃으면서 화를 내는 게 더 무섭긴 합니다. 보통 부부 사이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죠. 하지만 대개 부모는 아이에게 일단 큰 소리를 내면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사실 부모의 큰 소리를 무척 싫어합니다. 부모의 ‘큰 소리’가 무섭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부모를 무서워한다는 건 생각보다 아이의 사고와 행동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 무섭다는 것은 싫다는 걸 넘어 아예 회피하고 싶다는 강한 부정의 전달물질이기도 하죠. 그래서 아이들은 그 ‘큰 소리’가 싫어서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모든 ‘화’는 결국 ‘큰 소리’에서 시작하고 맙니다. 제안 드리건대, 오늘부터 우리 가정에 ‘큰 소리’를 없애는 가족문화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무엇보다 ‘큰 소리’는 부모의 마음을 아이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결함이 있기도 하니까요.

    또, 아이와의 갈등 상황에서 ‘큰 소리’를 참기 힘들다면 자리를 잠시 피하고, ‘90초의 법칙’을 활용해보는 것도 권해 드립니다. 하버드 대학의 뇌과학자 질 볼트 테일러 박사에 의하면 “우리 몸이 분노 때문에 생겨난 화학물질을 제거하려면 ‘90초’의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하더군요. 또, “우리의 뇌에서 분비된 화학물질은 몸 전체에 퍼지면서 생리적인 반응을 일으킨다”라고도 했습니다. 결국, 이렇게 생겨난 분노 화학물질은 분비된 지 90초가 지나면 혈관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다고 하니, 만일 아이에게 화가 난다면 잠시 자리를 피하고, 한 번 쉬어가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어쩌면 부모의 인내에 관한 질문을 수없이 받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두 아이가 이제 성인이 되었지만, 지금도 어떤 상황에서든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러한 부모의 인내는 생각보다 아이에게 좋은 효과를 안겨주더라고요. 무엇보다 대화의 실마리가 끊이지 않아 아이와 좋은 관계를 지속해나갈 수 있습니다. 무지했던 지난 시절, 아이의 문제가 아닌데도 제 기분에 따라 화를 냈던 날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아이들에게 정식으로 사과도 했습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말입니다. 아이들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걸 좋아하니까요. 운이 좋게도 아이들은 뒤늦은 부모의 사과를 받아주었고, 그 사과로 인해 아이와 저의 시간은 마법처럼 바뀌었습니다.

    저는 선물을 보내주신 아버님에게도 똑같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일단 ‘큰 소리’를 내지 말고, 지난 시간을 돌이켜 부모가 아이에게 과하게 화낸 사실을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행동에 대한 부모의 반성부터 시작하자고 했지요. 무엇보다 아이에게 사과할 게 있으면 진지하게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결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좋았습니다. 일단 아버님과 아이 사이에 말문이 트였으니까요. 아이에게 부모의 인정과 사과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면적을 차지합니다. 순식간에 아이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아이가 변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부모라면 꽤 믿어볼 만하다는 사실이죠. 아이를 변화시키는 건 부모이고, 또 돌아오게 만드는 변화도 부모가 만들어야 함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