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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흔히 요즘 아이 세대에게 가리켜 ‘예의가 없다’라거나 ‘도덕성이 없어 큰일이다’라고 혀를 차곤 합니다. 어른들이 즐겨 보는 소식통에 익숙해지면 앞선 표현처럼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하지만 우리는 모든 아이가 ‘무례하다’라거나 ‘도덕성이 없다’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건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아이들은 모두 예의가 바릅니다. 또 도덕성도 잠재적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아이를 바라보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우리가 왜곡된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 더 주요한 대목입니다. 어차피 아이의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금의 어른들 또한 그들이 10대였을 때 당시 어른들로부터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어른들이 10대, 20대 시절에도 어른 세대의 평가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이 세대를 대표하는 강력한 특징 중 하나는 ‘또래 집단’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못마땅한 어른들은 일명 ‘패거리 세대’라고도 부릅니다. 요즘 아이 세대를 설명하는 데 있어 이 또래 집단을 빼놓을 수 없고 또,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려면 아이 세대만이 가진 또래 집단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부모가 아이의 문제를 발견했을 때 아이에게만 초점을 맞춰서는 효과적인 해결방안이 나올 수도 없습니다. 굳이 시작점을 찾자면, 또래 집단은 X세대와 N세대로 불렸던 지금의 부모 세대 때부터 이미 존재했습니다. X세대 때에는 ‘서클’이라는 집단 용어가 있었고, 사회적으로 ‘폭력 서클’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 N세대 때는 ‘동아리’라는 집단 용어가 등장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아이 세대의 특징이 ‘초개인주의’ 특성을 갖다 보니, 동아리 같은 협력 활동이 힘들다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지금 아이들의 또래 집단을 보고 있으면,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의 또래 집단을 고스란히 대물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어른들의 또래 집단을 많이 흉내 내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쉬운 예로, 어른들이 몸담은 어느 조직이든 또래 집단이 없는 조직이 없고, 심지어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또래 집단은 존재합니다. 어른들의 또래 집단을 들여다보면 아이들의 또래 집단 못지않게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속성을 숨기고 있는 것도 많이 닮았습니다. 어른들의 또래 집단 목적이 ‘집단 옹호’와 ‘이익 분배’에 있다면, 아이 세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아이들의 또래 문화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달까요. 그래서 “요즘 아이들의 또래 집단이 왜 이기적이고 공격적인가?”에 대한 고민과 실마리는 어쩌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 구조에 있지 않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사회 구조를 해체해서 보지 않으면 효과적인 대처방안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뿐인가요? 어른 세대의 또래 집단 안에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다면, 아이 세대의 또래 집단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서열은 내부를 헤집고 작정해서 들춰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이들의 또래 집단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조직적이고 권력적인 특성을 가진 집단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의 또래 집단은 힘을 가진 아이가 집단 전체를 통제하는 것은 물론 아이들에게 역할까지 할당하며 동조하는 분위기를 이끕니다.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흔히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아이들은 동조압력을 받는다”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착하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되고 또 멀쩡하던 아이가 아무 거리낌 없이 사이버 도박을 하는가 하면, 순했던 아이가 단체 대화방에서 성희롱에 가담하는 이유에는 아이가 또래 집단에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또래 집단을 두고 우리 사회가 고민하는 건 바로 ‘도덕성’ 또는 ‘도덕 규범’의 상실입니다. 우리가 도덕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행동을 인도하는 행동 강령입니다. 도덕성은 우리 사회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행동들을 규제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동들을 포함하죠. 그래서 학교 교육이 중요한 이유도 아이에게 이 도덕성을 체험하는 일련의 사회화 과정을 학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의 또래 집단은 학교와 사회가 권장하는 도덕을 마음대로 왜곡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아이들은 힘을 가진 1인 내지는 소수 권력자의 논리에 의해 아이가 지니고 있던 올바른 도덕성을 너무 쉽게 와해시키죠. 그러다 점점 심해지면 또래 집단에 동화되어 아이에게 새로운 도덕성이 만들어집니다. 아시겠지만 부모가 이것을 눈치채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무서운 지점이라 볼 수 있죠. 혼자서는 왜곡할 수 없는 것들을 집단을 통해 어쩔 수 없이 합리화하고 규범화합니다. 따라서 지금 아이들의 또래 집단이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에는 바로 ‘도덕성의 붕괴’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생각보다 해답은 간단명료해집니다. 아이들의 문제를 또래 집단 단위에서 고민하면 생각보다 실마리는 쉽게 찾을 수 있지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사실 또래 집단 단위로 교육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부모의 포용력이 따라주지 못하는 현상 때문이죠. 드러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입증할 만한 자료가 충분했을 때 부모들은 교육을 수용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내 아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문제의 시작은 언제나 또래 집단 속 개인에서 출발해서, 끝은 또래 집단 전체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학교와 가정은 한 아이의 개인적인 문제 접근에서 또래 집단이라는 단단한 ‘집단지성’을 단위로 접근하고, 여기에 ‘부모의 공감대’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아이들의 ‘도덕성’과 ‘예절’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충분히 우리 사회가 힘을 모은다면 다양한 교육 모델을 이용해 얼마든지 아이들의 도덕성을 지켜낼 수 있다고 봅니다. 아이들의 ‘줄 서기’를 예로 들어 볼까요? 학교 급식실에서 아이들은 줄 서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아이도, 매사에 불만을 가진 아이도, 또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똑같이 줄을 서야 합니다. 아이들은 ‘줄 서기’에서 각자 품행에 상관없이 “줄을 서야 한다”라는 규칙을 지킵니다. 어쩌면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아이가 줄을 서는 모습은 신기하고 재밌기까지 합니다. ‘줄 서기’라는 하나의 질서 안에는 아무리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도 “줄을 서지 않으면 많은 아이에게 비난받고 비겁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라는 경험적 기대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줄 서기’ 규칙은 아이와 선생님, 또 보이지 않는 시선이 결합해야 지켜지는 규범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이의 또래 집단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바로 이 ‘줄 서기’ 모델을 통해 고민하면 생각보다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모님들은 지금 우리 자녀의 또래 집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단순히 아이와 함께 지내는 몇몇 친구들의 이름 말고 우리 아이의 또래 집단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나누는지 궁금해 본 적이 있을까요? 또, 우리 아이의 또래 집단이 바뀌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안타깝게도 또래 집단이 없는 건 아닌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만약 궁금하지 않다면, 오늘 이후부터는 아이의 또래 집단에 대해 반드시 궁금해하셔야 합니다. 아이를 정확하게 안다는 건, 아이 개인이 아닌 아이의 또래 집단까지 알아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부모는 아이의 ‘또래 집단’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