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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동안 저를 키워주셨을 뿐 아니라 동생과 싸우고 숙제도 잘 잊어버리는 저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신 부모님께 ‘마음 고생상’을 드립니다.”
“제 행실이 가끔 좋지 않아도 참고 이해해 주셨으며,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매번 저를 믿어주신 어머니께 ‘긍정상’을 드립니다.”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강원 내촌초등학교 체육관. 졸업생과 재학생, 학부모 등 100여 명이 참석한 졸업식에서 특별한 시상식이 열렸다. 졸업을 앞둔 9명의 학생이 부모 몰래 준비한 이벤트였다. 이들은 ‘항상’ ‘사랑상’ ‘인내상’ 등 특색있는 상을 부모에게 전달했다. 학부모도 자녀를 위한 깜짝 선물을 공개했다. 한 명씩 일어나 진심을 꾹꾹 눌러담은 편지를 낭독했다. 졸업생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졸업식 시즌이 돌아왔다. 학교마다 졸업생들의 기억에 남을만한 특색 있는 행사를 진행 또는 기획 중이다. 부모, 친구들에게 직접 만든 상을 주는가 하면 영화제나 시상식에서나 볼 수 있던 레드카펫을 깔고 졸업생들을 입장시키는 식이다.
지난 3일 열린 전남 나주 남평중의 졸업식에서는 53명의 졸업생이 유생복을 입고 조상의 예식인 세책례(洗冊禮)와 진다례(進茶禮)를 재현했다. 세책례는 조선시대 서당에서 학생이 책 한 권을 다 읽어 떼거나 베껴 쓰고 난 뒤에 훈장님께 감사를 표하는 행사로 학업보다 인성과 배움의 자세를 먼저 생각했던 선조의 교육철학이 담긴 전통문화다. 진다례는 다례를 올리는 일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에 차를 올리는 의례가 행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은 이에 따라 교사들에게 절을 올리고 차를 대접했다. 학교 측은 “인성교육을 중시하는 학교의 교육 철학을 반영해 세책례와 진다례를 졸업식 프로그램으로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전남대사대부고에서는 이달 31일 타임캡슐 이벤트가 펼쳐질 예정이다. 졸업생들이 저마다 20년 후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이 종이를 통에 담아 문서고에 저장한다. 20년 후 지정된 날짜에 졸업생들은 학교를 방문해 과거 자신이 쓴 편지를 펼쳐보게 된다.
다음 달 21일 열리는 부산 대상초 졸업식도 눈에 띈다. 당일 행사의 주인공인 졸업생 11명과 이들의 가족이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하면서 각자 특별한 소감을 밝힐 계획이다. 대상초는 전교생이 58명인 작은 학교로 평소 가족처럼 지냈던 선배들을 위해 후배들이 졸업식장도 직접 꾸민다. 행사장 곳곳에 포스터와 풍선 장식을 붙이고 졸업생을 응원하는 영상을 제작해 보여준다. 김영희 대상초 교감은 “단순히 졸업장을 수여하는 행사가 아니라 전 학년이 참여해 유대감, 결속감 등을 느끼는 축제 형식으로 졸업식이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레드카펫 밟거나 부모님께 깜짝 상 전달 … 전국 이색 졸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