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사실상 ‘시범사업’ 디지털교과서, 다시 활성화한다는데…
최예지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07.08 10:29

- 현장선 실감형 콘텐츠 질 아쉽고, 인프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
- “디지털교과서 개발에 집중…학생 기기 활용, 인터넷망 개선해야”

  • # 광주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최만 교사는 2015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올해 초등학교 5·6학년에 적용한 디지털교과서를 보고 실망했다. 그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적용해 ‘실감형 콘텐츠’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전혀 실감이 안난다”며 “예를 들어 공룡 콘텐츠는 소리가 안 나오고 움직이지도 않는 식”이라고 토로했다.

    디지털교과서는 기존 서책형 교과서에 멀티미디어나 외부 자료를 연계한 학습 자료다. 2007년 교육인적자원부가 ‘디지털교과서 상용화 추진 방안’을 발표한 다음, 이듬해부터 연구학교에서 활용했다. ‘스마트교육 추진 전략 실행계획’(2011년)으로 2015년 모든 교과에 디지털교과서를 전면 적용하려 했지만 예산과 효과성 논란에 수포로 돌아간 바 있다. 그 후로 별다른 확대 정책 없이 연구학교 위주로 운영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디지털교과서 정책은 10년 넘게 시범사업”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다시 활성화한다는 방침이다. 2015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지난해 초등 3·4학년과 중학교 1학년에 새로운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마쳤고, 올해 초등 5·6학년과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접하고 있다. 내년에는 중학교 3학년까지 확대한다. 교육부가 투입한 예산도 크게 늘었다. 본지가 정보공개 청구한 바에 따르면, 개발을 시작하던 시점인 2017년에는 36억1000만원으로 이전해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네 개 학년에 적용·개발한 지난해는 65억1700만원, 세 개 학년에 적용·개발한 올해는 56억4200만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이번 디지털교과서 정책에 대해 현장에서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새로운 콘텐츠의 질이 떨어지고 여전히 인프라가 미비하다는 이유에서다. 학교 현장에 디지털교과서가 효과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없을까.

    ◇ “실감형 콘텐츠 질 아쉽다” …현장에서는 선별적 활용 추세

    교사들은 디지털교과서가 기술적인 면은 발전했다고 봤다. 이전보다 다양한 자료를 탑재한 것이 긍정적인 평가의 이유다. 개발 초기부터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한 우대관 충북 앙성중 교사는 “과거에는 기존 교과서의 PDF 판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성이 높아졌다”며 “예컨대 과학의 경우 실험 영상이 많아 학생이 보고 스스로 공부할 수 있어 과거의 ‘전과’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반면 디지털교과서의 기능이 잡다해졌다는 평도 나온다. 일부 교사는 디지털교과서에 토의·토론 플랫폼인 ‘위두랑’이 접목되며 불편해 하는 상황이다. 최 교사는 “시중에 구글 클래스룸이나 클래스팅 등 더 좋은 무료 서비스가 많은데도 연구·선도학교에서는 위두랑을 무조건 활용해야 해 애로사항이 있다”며 “학습에 효과적인 플랫폼은 시중에 많으므로 디지털교과서를 개발하는 데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작년 기준 디지털교과서 플랫폼에 투입된 교육당국의 예산은 45억7200만원으로 디지털교과서에 들어간 예산인 10억7000만원의 4배가 넘는다.

    교사들은 정부가 강조했던 실감형 콘텐츠는 아쉽다고 입을 모은다. 황성진 대구 구지초 교사는 “실감난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화질이나 완성도가 아쉽다”며 “유튜브, 구글 아트&컬쳐나 익스페디션 등으로 접할 수 있는 무료 AR·VR 자료와 비교된다”고 했다. 게다가 이번 학기 내용임에도 아직 ‘준비중’인 콘텐츠가 많아 필요할 때 학습 자료를 활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본지가 입수한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디지털교과서 활용 현황 조사’에 따르면, 활용 방법으로 ‘디지털교과서의 실감형 콘텐츠 중심으로 활용한다’는 비율은 11.8%에 그쳤다.

    ◇ 무선인터넷 끊기면 수업 도루묵…“인프라 지원 부족해”

    더 큰 문제는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할 인프라다. 수업시간에 디지털교과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디지털기기와 무선인터넷망이 필요하지만 충분치 않다는 목소리다. 디지털기기가 적게 구비된 경우가 많아, 한 학교에서도 일부 학급이나 과목만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하는 추세다. 무선인터넷이 끊겨 준비한 수업이 도루묵 되는 상황도 빈번하다. 이에 교사들 사이에서는 디지털교과서를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우 교사는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하지 않는 대다수의 교사들은 ‘불편하다’는 반응”이라고 했다.

    교사들은 인프라를 구축할 정책적인 지원은 부족하다고 강조한다. 디지털교과서를 활발하게 사용해야 할 연구·선도학교조차도 인프라 구축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교육부 이러닝과에 의하면 연구학교는 기자재를 구입하는 데 예산을 전혀 활용할 수 없고, 선도학교는 50%에 한해 쓸 수 있다. 울산 지역 선도학교인 한 중학교 교사는 “차라리 예산 전부를 태블릿PC 구입에 쓸 수 있다면, 모든 아이들이 기기를 이용할 수 있어 디지털교과서를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전국의 모든 초·중학교에 2021년까지 디지털 기기와 공유기를 보급하겠다는 입장이다. 디지털 기기는 학교당 최대 60대, 공유기는 4대 제공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인프라로는 많아야 네 학급 정도만 활용할 수 있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교사들의 의견이다.

    ◇ “디지털교과서 개발 선택과 집중해야…BYOD 원칙 필요”

    일부 전문가들은 디지털교과서가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가 지금처럼 디지털교과서 플랫폼 개발에 힘쏟기보다는 디지털교과서부터 보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임순범 숙명여대 멀티미디어과학과 교수는 “디지털교과서 플랫폼에 딥러닝과 빅데이터를 통한 학습자 분석이나 맞춤형 학습까지 도입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직 기술이 성숙한 수준이 아니라서 현실성이 없으며 디지털교과서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며 “도입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활용도가 낮은 만큼, 디지털교과서가 교과서라는 기본적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게 우선순위”라고 강조했다.

    디지털기기 마련의 걸림돌은 예산으로 꼽히는 만큼, 묘수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김영일 한국디지털교육협회장은 “학생이 자신의 기기를 가져오는 BYOD(Bring Your Own Device)를 원칙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기 구입 예산이 막대해 정책의 지속성이 떨어지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선인터넷망 구축을 위해서는 학교에서 활용하는 유선인터넷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임걸 건국대 교육공학과 교수는 “가정·기업용과 달리 학교의 유선인터넷은 회선과 속도가 제한돼 있어, 공유기를 설치해 무선인터넷망을 구축하더라도 속도가 느리고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기기 개수에 한계가 있다”며 “유선인터넷 환경부터 개선해야 이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무선인터넷 환경이 나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