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주의 열정스토리] "어? 나... 배트맨이었어?"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8.10.01 14:54
  • 우리는 살다가 가끔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엄마로서 그래도 잘하고 있는 거야.. 라고 생각하다가 누가 애들 모두를 서울대에 보냈다거나, 누가 무슨 경시대회에서 상을 탔다거나, 어느 집 애가 의대에 갔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입은 축하를 하면서도, 마음은 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죠. 

    어제 중3 학생 학부모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름 자신이 잘하고 있는 부모라고 생각했는데 학생부를 챙기다 보니 '그동안 내가 정말 한 것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드셨다고 하셨습니다. 맞벌이하는 엄마는 참 이럴 때 아이에게 미안해집니다. 물론 일을 하지 않으시더라도 많은 분들이 '나는 최선을 다해 하려고 했는데 참 어렵다'라고 생각하시게 되죠. 누구는 학원 정보도 훤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렇게 잘 아는데 나는 왜 안 되나. 아이에게 면목이 없어지곤 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건 정말 엄마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처음 해 보는 교육환경을 맞닥뜨리게 된 것 때문이죠. 우리가 근 1000년 이래 제일 잘살게 된 것처럼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민족끼리 총칼을 겨누고 싸웠던 개발도상국의 국민으로서, 앞만 보고 달려왔던 그동안의 삶의 결과 때문입니다. 

    대학을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던 시대. 명문대를 졸업하면 평생 직업이 보장되던 시대의 대학은 상아탑이 아니라 '계급장'이었던 거죠. 학과나 적성은 아무도 안 물어보던 시대. '학생부'가 아니라 '성적표'였던 시대. 자신의 꿈이나 적성, 열정은 아무도 안 물어보던 시대. 창의적인 생각을 말하면 선생님께 뺨 맞던 시대. 대다수가 하는 대로 눈치 보며 따라가야 살 수 있었던 시대. 남의 것을 베껴도 처벌받지 않던 시대. 그런 시대의 교육 속에서 살아온 우리가 어떻게 '정량평가'가 아닌 '정성평가'를 신뢰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정량평가가, 숫자가 알려주지 않는, 아니 알려줄 수 없는 정보가 너무 많습니다. 판사가 아니라 왜 검사가 되려 하냐는 질문에 '대한민국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던 우병우. 환자의 생명 알기를 개떡처럼 생각하는 일부 의사들. 국민을 졸로 아는 국회의원들. 이들 대부분이 시험점수로 대학을 간 사람들입니다. 

    물론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이 다 문제가 있다는 시각은, 돈 번 사람은 다 죄인이라는 생각과 도긴개긴이겠지만 점수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점수라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를 끌어낸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라는 진로동기와 그래서 생긴 '자기주도성'과 '지적호기심'이라는 '동기'. 그리고 그 동기가 엔진이 되어 이끌어 낸 '과정의 우수성'이 함께 평가되는. 숫자가 아니라 '글'로 표현하고 '말'로 확인받는 그런 시대가 된 겁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그런 시대. 50 넘으면 회사 잘릴까 봐 전전긍긍하는 삶이 아니라 150살 너머 사는. 50이 되어도 100년을 더 살아야 하는 그런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입니다. 그 100년을 회사 잘릴까 봐, 자기가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면 안 됩니다. 그 아이가 50이 넘어 '어? 나 배트맨이었어?'라고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 그래서 어떤 성취를 얻었고, 어떤 역경을 극복해왔는지, 시험으로 줄 세우기가 아니라 자신이 일할 분야에서 성공할 자질과 능력을 지녔는지, 이를 위해 대학에서 관련된 학과에서 인터넷 안 베끼고 책과 선행연구와 자료를 찾아 레포트를 쓰고, 발표하고, 팀플에서 민폐 안 끼치고, 영어 원서 읽고, 영어강의 들을 수 있는지 바로 그걸 평가한다는 겁니다. 

    '우리 아이가 실은 배트맨이었다는 걸 발견하자는 말입니다.'

  • ※에듀포스트에 실린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