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지나친 조심이 아이의 놀 권리 침해” 지적 나와
최예지 조선에듀 인턴기자
기사입력 2018.05.04 18:11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성북구, 4일 2018 놀이정책 국제포럼 열어

  • 4일 오후,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성북구 주최로 2018 놀이정책 국제포럼이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렸다./ 최예지 기자
    ▲ 4일 오후,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성북구 주최로 2018 놀이정책 국제포럼이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렸다./ 최예지 기자

    '어른들이 아이의 안전에 지나치게 신경 쓴다'
    '부모는 간섭하느라 분주하다'

    놀이 전문가가 요즘 아이들을 둘러싼 놀이 현실을 보고 지적한 말이다. 4일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성북구 주최로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2018 놀이정책 국제포럼에 국내외 놀이 전문가들이 모였다. 영국의 팀 길(Tim Gill) 에지힐 대학 명예박사, 아마노 히데아키(Amano Hideaki) 플레이워크 협회 이사, 한국의 편해문 놀이 활동가가 강연자로 나서 놀 권리를 증진하기 위한 실천적인 조언을 건넸다. 포럼에는 교사, 학생, 학부모, 교육 분야 활동가 등 600여명의 시민이 참가해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어린이의 놀 권리는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에 명시된 엄연한 권리이나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어린이는 놀이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 실정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어린이 노출계수 핸드북’(2016)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하루에 평균적으로 34분의 실외놀이를 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 어린이들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간이다. 이에 따라 어린이의 주관적 행복지수도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치(2016년도)를 보였다. 아이의 놀 권리를 증진하기 위해 강연자들은 어른의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조금 위험해도 괜찮아”

    세 강연자가 소개한 아이들의 모습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이들은 놀 때 거리낌이 없었다. 히데아키 이사가 소개한 일본 아이들은 진흙탕에 몸을 담그며 놀고, 불을 피워 요리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편 활동가는 아이들이 하도 뛰어다녀서 잔디가 벗겨진 모험놀이터를 소개했다. 강연자들은 한결같이 아이들은 내버려두면 알아서 주변 도구를 이용해 재밌게 논다고 강조했다.

    길 박사는 “전 세계 곳곳의 어른들이 어린이의 안전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고 지적했다. 어린이는 어른의 지나친 조심 때문에 탐험하고 모험하며 놀 기회를 빼앗긴다는 얘기다. 그는 어린이로부터 ‘위험’을 숨기고 만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위험이라며, 지금의 사회는 ‘위험 회피 사회’라 진단하기도 했다.

    이어 길 박사는 영국의 얘기를 꺼냈다. 그는 “오늘날 영국의 어린이는 대부분 자유가 아닌 통제 속에서 자라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가령 증조부는 8살 때 반경 10km를 혼자 돌아다닐 수 있었다면, 지금의 아이는 고작 집이 위치한 길 끝자락까지 밖에 움직이지 못한다”며 “지금 어른들이 유년기에 경험했던 놀이와 모험을 요즘 어린이가 누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어른들의 시각이 달라져야 놀이에 대한 지지도 가능하다며 “현재 독일은 소음 공해에 대해 엄격하게 법으로 규제하지만, 베를린의 어린이는 이 법 적용에서 제외된다”고 전했다. 해당 법은 ‘아이들은 자라면서 소음을 낼 권리가 있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며 아이의 놀 권리를 의무적으로 배려하고 있다.

    히데아키 이사도 문제는 어른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제가 어렸을 때 부모가 만든 시스템은 학교 교육뿐”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학교 수업이 끝나도 어른들이 만든 또 다른 시스템에 따라야 한다”며 부모의 시선을 벗어나 놀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덧붙여 아이만의 세계를 존중해줘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누군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걸 다른 사람이 무시해서는 안 된다”며 “그건 아이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라 말했다.

    ◇“어른은 ‘아이의 관점’에서 놀 권리 증진해야”

    강연자들은 아이들의 놀이를 위해서는 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히데아키 이사는 “지금의 문제를 어른들이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으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며 “부모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행정가, 비영리단체 각각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길 박사는 아이 중심적인 관점의 도시로 로테르담을 긍정적인 사례로 들었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은 다른 도시처럼 자동차로 붐비는 곳이었지만, 어린이의 자유를 위해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차량을 줄이려 도로를 재설계하고, 주차장은 공원으로 바꿨어요. 어린이들이 상상의 동물을 찾으며 길거리를 탐험할 수 있도록 말이죠. 로테르담은 가족이 살기 싫어하는 도시 중 한 곳이었지만, 이런 노력 덕분에 가족들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한국의 많은 도시도 어린이 친화적인 곳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