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 교육부⋯“기하 넣자”는 2015 개정교육과정 정책연구진 의견, 당시 ‘묵살’
손현경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4.18 03:20

- 수학과 연구진, 기하 수능서 빠질까 우려⋯“일반선택과목에 포함시켜달라”
- 수학ㆍ과학계 “수능에 기하 포함여부 원점 논의 필요”⋯ 5ㆍ6월 국회 포럼 구상

  • 교육부가 ‘2015 개정교육과정’ 개발 당시 기하를 ‘일반선택과목’으로 넣어야 한다는 연구정책진의 의견을 배제한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는 최근 교육부가 2022 대입개편관련 ‘열린 안’이라며 소통 행보에 무게를 두고 쟁점나열식 시안을 내놓아 뭇매를 맞는 것과 반대인 양상으로 당시 교육부는 연구진 의견에 최종적으로 ‘불통’ 태세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도 이과 수능 출제범위에서 기하가 빠진 것을 놓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만큼 앞으로도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개발 과정 당시 연구진은 수학에서 기본적 이해를 요구하는 일반선택과목이 수능에 포함되고 진로선택과목은 제외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 ‘기하는 일반선택과목에 포함돼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는 “일반/진로선택 사안은 수능 과목 포함 여부와 논외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입장을 취했다. 이후 2015년 9월 기하가 진로선택과목에 포함됐고, 지난 2월에 교육부 대입정책과는 기하가 ‘진로선택과목’에 포함됐다는 이유로 2021학년도 수능 출제범위에서 제외된 결과를 내놓았다. 수학계는 교육부의 이 같은 ‘언행불일치’ 태도를 비판하며 수능 출제범위에 기하가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국회 포럼을 오는 5ㆍ6월 연다는 계획이다.

    ◇ 연구책임자 박경미 의원 “교육부가 기하 진로선택과목으로 최종 결정”

    17일 ‘2015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 연구 책임자인 박경미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더불어민주당ㆍ당시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의원과 수학과 정책연구진에 따르면 교육부는 지난 2015년 9월 2015 개정교육과정 발표 당시 기하를 일반선택과목으로 넣어야 한다는 연구진의 의견을 무시하고 기하를 진로선택과목으로 돌렸다. <그림1 참고>

  • <그림 1> 2015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 정책연구진은 기하가 ‘일반선택과목’으로 가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 ‘2015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 연구 보고서’ 갈무리
    ▲ <그림 1> 2015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 정책연구진은 기하가 ‘일반선택과목’으로 가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 ‘2015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 연구 보고서’ 갈무리
    애초 교육부는 일반선택과목과 진로선택과목으로 나눠 2015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 연구 초안을 내놓았다. 과목수 조절과 ‘학습량 적정화’ 즉 학습부담을 줄인다는 명목에서다. 이에 따라 일반선택은 ▲수학Ⅰ ▲수학Ⅱ ▲미적분 ▲확률과통계 4과목, 진로선택은 ▲기하 ▲실용수학 ▲경제수학 ▲수학과 탐구 4과목으로 분류됐다.

    박경미 의원은 “수학 정책 연구진은 교육부가 내놓은 초안에서 수학Ⅰ, 수학Ⅱ, 미적분, 확률과통계, 기하 등 5과목을 일반선택과목으로 넣자는 의견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고 이를 지속적으로 주장했다”며 “그러나 교육부는 최종 결정에서 과목수 균형을 4대 4로 맞추기 위해 1과목(기하)을 뺐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구진 회의 및 워크숍 주요 결과’를 담은 회의록(2015년 3월 12일, 3월 27일, 7월 3일, 7월, 13일, 7월 31일, 8월 31일 등)을 살펴보면, “기하 교과목은 일반선택 과목에 포함되어야 함”이라고 주요결과에 적혀 있는 등 연구자와 연구협력관 등은 꾸준히 기하의 일반선택과목 포함을 주장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열렸던 공청회에서도 교육부의 수학과 초안을 지적하며 기하가 일반선택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실제로 회의록에 기록된 2015년 8월 31일 2015 개정교육과정 2차 공청회 요약 내용을 살펴보면 “‘기하’를 진로선택으로 구분한 것은 문제가 있다. 세계적인 동향은 ‘쉬운 수학’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와 정반대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며 “‘기하’를 일반선택과목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기술돼 있다. <그림 2 참고>
  • <그림 2> 2015 개정교육과정 2차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은 기하가 ‘일반선택과목’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2015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 연구 보고서’ 갈무리
    ▲ <그림 2> 2015 개정교육과정 2차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은 기하가 ‘일반선택과목’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2015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 연구 보고서’ 갈무리
    당시 수학과 정책연구팀이었던 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는(한국수학교육학회 회장) “연구진 사이에서는 교육부 초안의 진로선택과목들이 추후 수능 출제범위에 포함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을 했다”며 “왜냐하면 교과별 학문의 기본적 이해를 돕기 위해 꼭 필요한 교과들이 일반선택과목에 포진됐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이 보는 수능에 진로선택과목은 채택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봤다”며 “2015 개정교육과정은 문이과 통합교육을 표방했기 때문에 기하가 일반선택과목으로 가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승훈 유원대 교양융합학부(수학 전공) 교수 역시 “진로선택과목은 수능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일반선택과목이 좀 더 수학에서 중요도를 차지하는 과목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8과목이 다 수능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이공계에서 중요한 과목인 기하만큼은 반드시 일반선택과목에 반영돼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관계자는 “학계, 시민사회, 교원, 학부모 등은 기하를 진로선택과목으로 하자고 연구개발과정 당시 말해 의견을 수렴했다”며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진로선택을 한 적은 없으며 논의 과정서 논란은 있었을 수도 있지만, 최종 결정은 연구진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전문가 주장 배제한 채, 2021 수능 출제범위에서 기하 제외

    정책 연구진은 한결같이 “설마”라는 생각을 했다고 토로했다. 그들은 “교육부 관계자는 당시 아직 수능 개정 방침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선택과목과 진로선택과목의 결정 여부를 수능 과목포함으로 연결짓는 걱정을 하지 말라고 말해 믿었다”며 “교육부는 일반선택과목과 진로선택과목 결정이 수능 과목 포함과 ‘논외’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결국 2021 수능 출제범위는 일반선택과목은 포함되고, 진로선택과목은 포함되지 않는 안을 토대로 결정됐다. 수학과 연구진은 “이러한 최종 결정도 언제 만들어진지 모르겠다”며 “기하는 결국 진로선택과목이라는 명목으로 2021 수능에서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송근현 교육부 대입정책과장은 “2015 개정교육과정 개발 당시 일반선택과목은 수능과목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2015 개정교육과정 개발 방향으로 내포 한 바 있다”며 “이러한 방향이 연구진들에게 전달이 제대로 됐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림3 참고>
  • <그림 3> 2015 개정교육과정 총론 개발에 참여했던 황규호 국가교육과정개정 연구위원은 문 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구성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일반선택과목들은 수능이나 대입에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그림 3> 2015 개정교육과정 총론 개발에 참여했던 황규호 국가교육과정개정 연구위원은 문 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구성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일반선택과목들은 수능이나 대입에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수학과 연구진들은  당시 교육과정정책과 수학과 연구사가 선택과목 분류에 따른 대입 연계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관계자는 “확인해봐야할 사안”이라고 했다.

    한편 한국수학관련단체총연합회ㆍ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을 비롯한 수학ㆍ과학계는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해 오는 8월 최종 발표되는 2022학년도 수능 수학 출제범위에 기하를 포함해달라는 내용의 국회 포럼을 5월과 6월 중에 구상 중이다. 이는 지난 2021 수능 출제범위에 기하가 제외된 것에 따른 후속조치로 이공계 경쟁력의 필요성을 알린다는 계획이다. 권오남 교수는 “수학과 연구진들은 지속적으로 기하의 일반선택과목, 나아가 수능 포함을 주장해왔다”며 “교육부의 언행불일치로 기하가 수능에 빠진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기하는 이공계 교육의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재논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