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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관찰하면 공통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는 느낌인지 할 수 있는지, 어디가 약하고 어디가 강하며 어떤 문제유형에 취약하고 어느 챕터에 공부가 더 필요한지 이미 알고 있다. 이를 입증하는 유명한 증거로 바로 모 방송국에서 했던 실험이 있다. 선행학습으로 수학을 비슷하게 배운 여러 명의 중3 학생들에게 고1 수학 문제를 주고 풀 수 있는 문제의 개수를 세도록 한 다음 실제로 시간을 주고 풀게 해본 결과, 공부 잘하는 학생들일수록 그 개수가 일치하는 패턴을 보이고 공부 잘하고 싶은 학생들일수록 불일치하는 패턴을 보인 것이다.
이렇기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해야 하므로 항상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공부를 하나도 안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 얘기를 곧이곧대로 들은 공부 잘하고 싶은 아이들은 정말 공부를 하나도 안한 것으로 오해하고 안심하다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배신감을 느낀다. 사실은 본인이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평상시에 하는 공부는 언제나 자기는 잘 모른다는 생각으로 '무엇을 모르는지'를 찾는 과정이다. 그래야 시험 때 자기가 무엇을 몰랐는지 깨닫지 않는다. 평소에 잘 안다고 자신을 과신하면 시험 때 비로소 무엇을 몰랐는지 깨닫고 당황하게 된다. 시험은 자신을 100% 믿고 아는 것만 찾아다니기에 바빠야 한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소에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좋은 방법은 네 단계를 구분하는 것이다.
1. 모른다 - 2.익숙하다, 아는 느낌이다 - 3. 안다 - 4. 할 수 있다.첫 번째 단계로 ‘모르는 상태’부터 살펴보자. 사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다. 보통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국어사전과 영어사전을 떠올려보자. 어느 쪽을 월등하게 많이 찾아보는가? 당연히 영어사전이다. 왜냐하면 모르는 줄을 아니까. 그러나 국어사전은 잘 찾지 않는다. 모르는 줄을 몰라서 그렇다. 사실 국어지문에서 어려운 한자어나 순우리말의 의미를 설명시켜보면 잘 모르거나 엉뚱하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도 말이다.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공부는 순조롭게 진행된다.
두 번째 단계는 '익숙한 단계'다. 학교와 학원에서 같은 내용의 수업이 반복되다보니 그냥 익숙해져 가는 경우다. 모른다고 하기엔 뭔가 아쉽고 아는 단계는 이르지 못한 애매한 상태다. 익숙해지다 보면 심지어 아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잘 모른다. 이유를 물으면 설명을 못하고 억울해 하니까. 차라리 모르는 거라면 공부를 하면 되지만 익숙한 단계는 공부를 더 할 필요성도 못 느끼게 된다. 제일 위험한 단계이고 잘못된 선행학습이 만들어주기 제일 좋은 단계다. 따라서 익숙함에서 빨리 벗어날수록 내 실력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세 번째 단계는 '아는 상태'다. 스스로 설명 할 수 있고, 실제로 아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 단계에서 많은 선생님이나 강사들이 실수하기 쉽다. 학생이 알기 때문에 당연히 할 수 있을 것이라 믿게 된다. 그러나 시험을 보면 여지없이 실망감을 준다. 분명히 연습 때도 알고 있고 잘 풀었는데 말이다. 안다고 해서 모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할 수 있다’는 것은 평상시가 아닌 긴장되고 제약이 심한 시험에서 할 수 있느냐를 말한다. 누구나 평온한 심리에서는 잘 하던 것도 막상 긴장되는 순간이 오면 무의식에 탑재된 진짜 기본기만으로 시험을 푼다. 이땐 정말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고서는 답을 맞추지 못한다. 그래서 아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상태로 넘어가기 위한 부단한 연습과 시험 이상으로 어렵게 설정한 상황에 대한 적응 훈련이 필요하다.
마지막 단계는 바로 '진짜 할 수 있는 단계'다. 진짜 할 수 있는 단계가 되면 시험에서도 실수하지 않으며, 시간이 지나도 설명하거나 풀 수 있고, 앞과 뒤 내용을 연관 지어 말할 수 있으며, 넓은 범위에서 랜덤하게 뽑아도 자신 있게 답한다. 이 단계의 상태야 말로 완전한 자신의 지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완전히 할 수 있는 단계의 지식들이 쌓이면 비로소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알아가는 즐거움과 공부의 재미를 누릴 수 있다.
이 네 개의 단계 중에 현재 공부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어느 단계에 도달했는지 알아보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우선 ‘문제’를 풀어보는 전통적인 방법이 있다. 익숙한 상태에서도 문제는 풀 수 있으므로 문제를 풀면 적어도 모르는 단계만 넘었다고 보면 좋다. 그 다음으로 ‘설명’해보면 익숙한 건지 아는 건지 알 수 있다. 익숙하기만 해서는 설명을 할 수는 없다. 단, 설명 할 때는 책을 보지 않고 머릿속에 정리된 내용만 가지고 꺼내 설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시험 상황을 가정하여 문제를 풀 되, 이미 배우거나 풀어본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시도해보자. 정리하면 내용을 설명할 수 있으면서도 시간이 지나서 언제든 문제를 시험처럼 긴장된 상황에서 풀 수 있다면 완전히 “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보면 된다.
자기평가작업에 제일 좋은 타이밍은 그날 공부를 끝내고나서다. 그날의 자기 공부를 마무리하고 잠들기 전에 하는 이 약간의 자기평가가 사실은 전부 실력이 되는 순간이라고 보면 된다. 운동도 다했다고 생각될 때 하는 약간의 추가 운동이 근육이 되듯 공부역시 끝내고 싶은 순간 약간의 추가 공부가 결국 진짜 자신의 무의식에 탑재되는 실력으로 전환된다.
이를 위한 노트를 따로 만들어도 좋고 공부플래너를 이용해도 좋다. 공부한 내용을 기반으로 문제풀이와 설명하기 (말하기, 써보기) 결과를 틀린 문제나 모르는 내용 등을 적어보고 부족한 부분을 표시해둔다. 틀린 문제를 핸드폰으로 찍어둬도 좋다. 나중에 복습하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당연히 만족할 만큼 결과를 얻기 어렵겠지만 이 노력이 반복될 때 비로소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의 습관이 들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공통점을 자기화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자기평가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찾기 위해서 하는 과정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찾아낸 결과를 토대로 보충 공부의 전략을 수립해보자. 시험 때는 내가 다 안다고 믿고 자신감 있게 공부하기 위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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