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업센터장님, 우리 애 00기업 채용 박람회 갈 건데…대학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대기업 상반기 채용 일정이 일제히 시작함과 동시에 각 대학의 취업관련 업무부서가 문의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화를 거는 사람은 학생이 아니다. 이들을 자녀로 둔 학부모가 바로 장본인. 서울 주요 사립대인 A 대학의 취업진로센터장은 “처음 학부모의 취업 문의전화를 받을 당시만 해도 당황했지만, 빈도가 잦은 지금은 웬만큼 익숙해진 상태”라고 전했다.
자녀의 취업준비까지 부모가 나서서 도와주는 ‘취업콥터맘’(‘취업준비+ 헬리콥터 엄마’를 줄임말)이 많아지고 있다. 아이 곁을 맴돌며 소소한 교육문제까지 직접 챙겨야 직성이 풀렸던 ‘헬리콥터맘’들이 이제는 취업 준비까지 발벗고 나선 것이다. 헬리콥터맘들은 우리나라 교육에서 엄마의 뜨거운 교육열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치맛바람’에서 파생된 용어다. 7년 만의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하는 현실 앞에서, 헬리콥터맘들의 관심사가 교육을 넘어 취업으로까지도 확장된 것이다.
충청지역 B 대학 취업인재개발처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 대학 취업팀장은 “상반기 취업시즌인 요즘, 상담 연락을 살펴보면 부모와 학생의 비중이 거의 4 대 6일 만큼 부모의 연락이 잦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모의 질문은 ‘우리 애정도면 어느 기업에 갈 수 있느냐”부터 시작해 ‘애가 면접에서 떨어졌는데 이유를 안 말해준다. 혹시 학업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냐’ 등 다양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요구는 담임교수들에게 더 구체적이다. 서울 C 대학의 국문학과 교수는 “심지어 개인 다이어리에 대기업을 포함해 중소기업, 스타트업 채용 일정을 빼곡히 써놓고 상담하러 오는 부모까지 있다”며 “저렇게까지 극성스럽게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자녀가 얼마나 걱정스러우면 저렇겠냐’하면서 안타깝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현상은 니트족(NEETㆍ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의 증가와도 연관된다. 니트족 비율은 2015년 OECD 평균 14.6%로 2007년 13.6% 대비 1% 포인트 증가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는 2013년 기준 18.0%로 OECD 평균(15.8%)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김문길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니트족 증가 추세는 청년의 물질적 빈곤과 맞물려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계속되는 서류ㆍ면접 탈락에 결국 일할 의지가 없게 되고, 이로 인해 물질적으로 빈곤해진 자녀를 위해 부모가 취업 시장 조사에 나서 자녀를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단순히 자녀가 걱정스러워서 취업을 돕는 경우도 있다. 아직 미성년자인 직업계고에 다니는 자녀를 둔 취업콥터맘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직업계고 학생을 대상으로 열리는 채용ㆍ취업 박람회 등을 참석하는가 하면 일일이 자녀의 일자리를 알아보기도 한다. 성동공고에 다니는 자녀를 둔 임미선(50ㆍ가명)씨 역시 매번 취업 박람회를 빼놓지 않고 참여하는 학부모다. 그는“어떤 기업에 들어가느냐가 아이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모가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기업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더 좋은 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면접 준비를 도와주는 건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녀의 취업준비를 과도하게 도와주는 것은 자칫 자녀의 독립심을 해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해천 전국대학취업협의회 사무국장(호서대 취업인재개발처 취업팀장)은 “부모의 불필요한 문의 등은 기업과의 연계 채용 선발권이 있는 대학 취업 담당자에게 자칫 판단력이 부족하거나 독립심이 결여돼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또한, 실제로 성인이 된 자녀 일에 부모가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자립심을 떨어지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면서 "부모는 자녀가 악화된 취업난에 지치지 않도록 취업준비를 옆에서 묵묵히 응원해주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부모세대가 가진 ‘내 자식만큼은 나보다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에 가야 한다’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자녀 역시 부모의 욕심에 무조건 맞추기보단 소통을 통해 원하는 직업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취업준비까지 이제는 부모가…‘취업콥터맘’ 등장
-대학 취업지원센터에 ‘우리 애 어느 기업갈 수 있어요’ 문의전화 잇따라
-전문가 “과도하게 취업준비 도와주면 독립심 해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