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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시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다.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에 누구에게 물어보기도 애매하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그 시작을 해냈을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시작의 경우의 수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위로부터 시작해서 내려오는 방식이 있고 아래로부터 시작해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전자를 탑다운이라 하고 후자를 보톰업이라고 해보자.
보톰업의 경우는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그냥 그날그날의 공부에 충실하는 것이 최선인 방식이다. 매일매일의 공부에 최선을 다함으로서 결국 최종적으로 좋은 결과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방법이다. 고민할 것도 없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면 족하다. 당장은 고민 없이 지낼 수 있겠지만 시간이 흐른 다음 운이 좋다면 원하는 위치에 도달해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엉뚱한 곳에서 후회할 공산이 크다. 그나마 이것도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고민 없이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처음에는 효율이 높아 보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충실함을 유지하기 어렵고 스스로에게 나태해지거나 불안해진다.
탑다운의 경우는 얘기가 약간 다르다.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곳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공부라면 어떤 분량을 할 것인가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공부를 해서 도달하고 싶은 나의 상태를 기준으로 한다. 등수도 좋고 등급도 좋고 어떤 실력도 좋고, 지금으로부터 변화하여 도달하고 싶은 정량적 달성치를 설정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목표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로부터 아래쪽 방향으로 구체적인 할 일들을 정하고 분량을 설정한 다음 비로소 매일매일 해야 할 공부를 결정하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탑다운 방식의 공부시작법이다. 당연히 목표를 설정해서 아래쪽 방향으로 구조를 설계해야 하므로 시간과 고민이 필요한 작업 방식이다. 이렇게 했을 때는 최종적으로 엉뚱한 곳에 도달하지 않는다. 다만 그 구체적 할 일 들 즉 계획을 예정대로 실천하지 않을 경우 목표 자체가 공허해 질 위험이 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항상 100%의 목표를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목표설정 자체가 주는 동기부여라는 큰 선물을 받는다. 또한 이렇게 설정한 목표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그것을 수행하기 때문에 달성도가 높다. 특히 구체적인 등수나 등급 혹은 어떤 점수나 실력 같은 것을 목표로 삼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적다. 그 자체를 스트레스나 부담으로 여길 필요가 없고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 도착지를 설정하면서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보자. 이번 시험에서 영어를 1등급으로 올리겠다고 선명한 목표를 잡아보자. 이를 위해 현재 점수에서 최소한 몇 점을 올려야 하는지 알아보자. 그 몇 점은 또 어떤 문제를 많이 틀리기 때문인지 유형도 살펴야 한다. 틀리는 원인을 알고 무엇을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휘 탓인지 문맥 탓인지 구문 탓인지 아니면 의외로 국어 비문학 독해력의 문제는 아닌지 알아봐야 한다. 그래서 결론이 어휘 탓이라고 판단했다면 어휘력을 높이기 위한 나에게 맞는 교재를 선정하고 완성하고자 하는 기간을 고려하여 분량을 정하고 매일의 공부에서 얼만큼씩 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처럼 큰 목표로부터 매일의 공부에 대한 계획이 도출되는 것이 바로 탑다운 방식으로 공부를 시작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틀리는 유형을 분석하기 어렵다거나 틀리는 원인을 찾지 못한다거나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힐 수도 있다. 또는 나에게 맞는 교재를 선택하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얼마동안 달성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선명한 목표가 없어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최종적으로 원하던 곳에 잘 도착하는 것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또는 조금 다른 곳일지라도 도착한 곳 자체에 만족하고 원래부터 거길 원했다고 스스로 만족하고 사는 것도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과를 떠나서 선명한 목표가 가져다주는 과정에서의 동기라든가, 달성도를 높여주는 구체적 계획과 방법 이라는 선물들을 고려할 때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왜 탑다운 방식의 공부출발을 고집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 모두가 꼭 공부가 재미있어서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다. 공부 자체의 즐거움으로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공부가 가져다주는 성취감으로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 성취감의 근원에는 바로 선명한 목표라는 출발점이 있으며, 목표는 또한 중간에 힘들고 고단한 과정들을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만약 여전히 ‘목표 그거 별거 있어? 그냥 열심히 하면 되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면, 과연 하루하루를 충실히 하는 방식으로 얼마동안 그 마음을 유지하고 실천할 수 있는지 측정부터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시작은 보톰업이 쉬울지 모르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데에는 탑다운이 월등하게 높은 확률을 가지며 오히려 나중에는 더 쉬워진다는 사실을 꼭 경험해보기를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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