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의 학습 원포인트 레슨] 공부는 자몽쥬스다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7.02.10 10:01
  • 아주 어린 시절 공부에는 단맛이 있다. 사실 원래 공부는 단맛이 있다. 시험을 위한 게 아니라 진짜 지적 호기심을 기반으로 알고 싶은 욕구를 충족해나가는 정상적인 공부라면 그것은 정말 달콤하다. 그러나 지적호기심이 아닌 득점을 위한 공부는 조금만 지나면 단맛은 사라지며 뒤로 갈수록 쓴맛이 강해진다. 평균에서 벗어난 하위권이나 상위권은 나름대로의 혀의 양옆처럼 신맛에 힘들어하게 된다. 짠맛은 언제나 느낄 수 있고 중독되기 쉽다. 감칠맛은 잊을 수 없는 맛을 선사한다. 사람들은 대게 단맛과 매운맛을 뒤섞어서 짠맛을 가미하면 나가떨어진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요리대결을 펼치는 것을 보면 대게 탄수화물이나 육류를 튀겨서 짜고 맵고 단맛을 짬뽕해서 발라버리면 게임이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거기에 감칠맛이 들어가면 거부할 수 없는 맛의 음식이 되어 버린다.

    음식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며 다른 근심을 잊게 만들기에 온통 근심거리 투성이인 이 시대에 작은 즐거움의 코드로서 먹방 쿡방이 브라운관을 아니 lcd를 도배하게 되었다. 셰프도 있고 백종원 아저씨도 있고 황교익 선생도, 방랑식객도 존재한다.

    문제는 일반적인 공부의 경우 단맛도 짠맛도 매운맛도 없다는데 있다. 구성해줄 맛이 별로 다양하지 않다. 특히 우리가 아는 청소년기의 시험 위주의 공부는 무가당 자몽쥬스 마냥 거의 신맛과 쓴맛뿐이다. 가끔 이런 신맛과 쓴맛도 맛이라 느끼면서 즐기는 아이들이 있다. 그게 영재다. 신맛과 쓴맛을 시고 쓴 줄 알지만 그래도 몸에 좋다니 먹는 아이들이 있다. 그게 모범생이다. 그래서 철들면 신맛과 쓴맛도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쯤 공부하고 싶다고 하는 것일까? 몸에 아무리 좋다고 해도 먹기 싫다고 이 시고 쓴 걸 왜먹이냐며 저항하면 성적이라는 배가 고픈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애들에게 자몽을 튀김가루에 튀겨서 고추장과 설탕을 섞어서 발라 먹일 수 없을까 고민한다. 우리 애가 왜 자몽쥬스를 안 마시는지 걱정이 되어 미치겠단다. 미리 마시게 하면 도움이 될 거라면서 소화시키지도 못할 주스를 앞당겨 마시게도 하고, 넙죽넙죽 잘 마시는 애들만 모아놓은 학교에 가면 인생이 수월해질 거라면서 서로 구분 짓고 갈등하고 스트레스 받는다. 어떻게 먹이면 시고 쓰고 떫은 자몽쥬스를 마실만 하게 만들까 고민하고 시고 떫고 쓴맛이 왜 몸에 좋은지 설명하고 일단 한번 먹어보면 왜 먹어야 하는지 알거라면서 설득하고 달래기도 한다. 지금 마셔두면 나중에 다 잘 될거라면서. 자기들도 자몽쥬스를 마시는 것만으로 인생이라는 긴 여정이 보장받던 시대가 끝난 줄 알면서도 자신들의 후배들에게 기꺼이 마실 것은 강권한다. 자기들도 어릴 적 마시기 싫었으면서. 내가 안 마셨더니 이 고생이라며, 내가 잘 마셨으니 너도 마시라며.

    자몽주스 안 마셔도 인생을 성공할 방법은 많다고, 아니 인생에는 자몽주스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쿨한 척 한다는 둥,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고 빈정대거나, 본인 자식의 문제가 되면 달라질 거라고 악담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스스로들 알고 있다. 지금은 자몽주스를 꾹 참고 벌컥대고 마셔봐야 학창 시절 남보다 좋은 평판을 얻는 것이나 부모를 안심시키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이 인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히려 나는 왜 자몽주스를 마시는지, 마시고 나서 어떤 도전을 할 것인지, 자몽주스를 마신 다음엔 또 어떤 주스가 있는지 스스로 찾아 나설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는 자세와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러니 시고 쓴 자몽주스일지라도 억지로 마셔야 한다고 강권할 것이 아니라 조금은 애정을 가지고 마시기 싫은 그 마음을 이해해주고, 때가 되어 주도적으로 마실 수 있도록 과정을 도와주고 격려하고 응원해줘야 하지 않을까? 자녀가 인생의 진짜 주스를 마실 때 용기를 내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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