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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구에 사는 회사원 이진성(38)씨는 며칠 전, 오랜만에 하루 휴가를 맞아 20개월 된 아들과 둘이서 마트에 갔다가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30분 정도 쇼핑을 했을 무렵, 아들의 기저귀가 젖은 것 같아서 급히 유아휴게실을 찾았으나 출입을 금지당했기 때문이다. 입구에는 아빠는 모유 수유하는 엄마를 위해 밖에서 기다리라는 내용의 주의사항이 적혀져 있었다. 서둘러 찾은 남자화장실에는 기저귀교환대가 없어서, 결국 이씨는 차에서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였다.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들이 많아지면서 엄마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육아 편의시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유아휴게실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유아휴게실은 수유실과 분리되지 않아 여성이 모유 수유를 할 경우를 대비해 남성의 출입을 막고 있다. 아예 이런 내용을 유아휴게실 입구에 주의사항으로 명시한 곳도 많다. 다른 나라의 경우 유아 휴게실을 ‘Parents Room’으로 표기해 아빠와 엄마 모두가 활용하게 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Nursing Room' 또는 ‘Mom's Lounge’ 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 때문에 혼자 아이를 데리고 나온 아빠들이 유아휴게실을 거의 활용하지 못해 난감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온라인 부모 커뮤니티에는 이런 내용의 불만을 담은 아빠들의 사연을 자주 볼 수 있다. 간이 기저귀 교환대가 많이 갖춰진 여자화장실과 달리 남자화장실은 이조차도 없는 곳이 대부분이라는 점도 문제다. 정부는 2010년 5월 이후에 지은 건물에 남성 화장실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하도록 했지만, 주변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유아휴게실의 남성 출입 금지에 대한 문제가 이슈가 된 데에는, 최근 들어 육아를 공동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아빠들이 많아진 배경이 한 몫 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하는 아빠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는 4874명으로 2014년보다 42.5% 급증했다. 같은 기간 여성 육아휴직자 증가율(12.4%)의 3배 이상이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싱글대디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15개월 된 아들을 혼자 키운다는 김수찬(40ㆍ서울 노원구)씨는 “아빠들에게 육아의 책임은 물으면서, 그들이 편하게 육아할 수 있는 배려는 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저처럼 혼자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온 아빠들도 편하게 아이 기저귀를 갈고 수유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준호(40)씨는 “여성의 신체 일부분을 노출하는 곳이니만큼 모유수유실은 남자 출입이 당연히 불가하다고 생각하지만, 유아휴게실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며 “여성이 아닌 유아의 휴식을 위한 장소이니만큼 보호자인 아빠도 출입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유실이 분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아휴게실을 무턱대고 아빠들에게 개방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많다. 5개월 된 아들을 모유 수유하고 있다는 엄마 이상아(30ㆍ서울 강서구)씨는 “수유를 하는 상황에서 낯선 남자가 들어온다면 아무래도 불편할 것 같다”며 “별도의 공간이 없이 칸막이로만 수유실이 있는 곳에서는 낯선 사람이 들어올 수 있다는 불안감에 서둘러 수유를 마칠 때가 잦다”고 말했다. 10개월 된 딸을 둔 김지호(33ㆍ서울 강남구)씨는 “아이와 엄마가 무방비로 노출된 곳에 아빠들의 입장을 무조건 허용하면 이를 악용해 범죄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엄마들을 위한 모유수유실은 따로 만들어주고 그 외의 유아휴게실 공간에는 아빠의 출입을 가능하게 하는 정부와 기업의 배려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아빠는 못 들어가는 유아휴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