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바뀌어야, 대한민국도 바뀝니다"
김재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11.25 18:48
  •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양수열 기자
    ▲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양수열 기자

    [한국 교육의 미래를 말하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불수능(어려운 수능)’의 기준이 뭔 줄 아세요? ‘단순히 문제 난도(難度)가 높냐, 낮냐’가 아니에요. ‘답이 아닌 나머지 네 개 선택지를 답처럼 보이게 혼동을 주는 문항이 많으냐, 적으냐’예요. 이번 수능이 ‘전자(前者)’였으니, 당연히 어려웠던 거죠. 다섯 개 선택지의 유사성에 따라 난도가 갈리는 수능, ‘창의력’ 대신 ‘정답 감별 능력’만 키우는 수능, 과연 올바른 평가제도라고 볼 수 있을까요?”

    한 교육학자가 이번 수능을 망친 수험생보다 더 ‘열’을 냈다. 수능에 대한 날 선 비판은 인터뷰 내내 계속됐다. 열변의 이유를 물었더니, 그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수능’이 바뀌어야, 대한민국이 바뀌니까요.”

    2017학년도 수능 닷새 뒤인 지난 22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의 한 카페에서 ‘평가 혁신이 곧 교육 혁신’이라는 그를 만났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이 그 주인공이다.

    ◇정답 감별 능력만 평가하는 객관식 수능

    이 소장은 대표적인 ‘객관식 수능 무용론자’다. 그는 “현행 수능은 미묘한 차이를 둔 정답 후보 다섯 개 중 적절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선택지 하나를 실수 없이 잘 골라내야 하는 시험”이라며 “이러한 시험은 ‘정답 감별 능력’만 측정할 뿐 ‘개인의 지적·창의적 역량’을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효과적인 평가제도로 보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근거도 있다. 이 소장에 따르면, 2017학년도 수능 국어영역 45문제 중 ‘다음 중 OO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을 묻는 게 25개, ‘다음 중 OO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을 묻는 게 19개였다. 나머지 한 문항도 물음 형태는 다르지만, 그 속뜻은 다섯 개 선택지 중 적절한 것을 고르는 문제다. 이 소장은 “정해진 답을 골라내는 능력만 필요로 하는 수능이 과연 미래가 요구하는 창의 인재 양성에 디딤돌이 될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

    이 소장의 ‘객관식 수능 무용론’ 논리는 또 있다. 그는 “현재 고3이나 N수생이 아닌 초·중·고교생 대부분이 기존 지식 암기, 문제 풀이 요령을 습득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이유를 찬찬히 따져보면 결국 수능이다. 초·중·고교 현장에서도 수능 대비를 위해 내신 시험을 객관식 형태로 출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능의 존재는 어린이·청소년이 특정 지식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막고, 지적·창의적 역량 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식의 틀’을 깨는 인재로 키우기 위해선 어렸을 때부터 객관식 시험에 적응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가 ‘객관식 시험 무용론’을 주장하게 된 데에는 2009년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 교수 시절 조사한 ‘서울대생의 공부법 연구’가 결정적이었다. “충격적이었어요. 고학점 받은 서울대생의 공부법은 ‘교수 숨소리까지 받아적는다는 일념으로 필기한 뒤, 이를 달달 외워 답안에 적으면 된다’였어요. 결국 ‘교수의 이론과 생각’이 중요하지,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예요. ‘왜 이렇게 됐을까?’ 자문해 보니, 결국 원인은 객관식 시험이었어요. 그 때문에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적 사고를 요구하는 수업 환경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거였죠.” 이 소장은 이를 토대로 2014년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라는 책을 냈다.

    ◇수능 대안은 수용적 사고 아닌 ‘발산적 사고’를 평가하는 시험

    그렇다면 객관식 수능의 대안은 뭘까. 이 소장은 “앞으로는 배운 지식을 응용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드러내는 ‘발산적 사고’를 평가할 수 있는 시험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한 시험으로는 스위스 비영리기관 IBO(국제학위협회)에서 개발·운영하는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가 첫손에 꼽힌다. “IB 시험의 문항을 보면 놀라워요. 평소 ‘발산적 사고’를 키우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정도죠. IB 역사 시험을 예로 들어 볼게요. ‘평화 합의는 새로운 갈등을 야기한다. 최소 2개 이상의 이와 같은 합의 사례를 들고 이 문장에 대해 얼마나 동의하는지 논하시오. 단, 답은 20세기 사건에 한해 답해야 한다’. 이게 문제예요. 역사에 대한 관점·해석·사관 등을 묻는 거죠. 질문 자체가 개인의 생각을 유도하고, 또 글로 표현하게 하는 거죠. 사실·정보에 대한 암기 여부를 확인하는 수능 한국사와는 큰 차이가 있죠.”

    이 소장에 따르면, 발산적 사고를 평가하는 이러한 시험 방식은 입시 대비에도 효과적이다. “현 대입 제도 아래에선 수능, 내신, 논술, 비교과 활동 등을 각각 따로 준비해야 해요. 하지만 IB와 같은 대입 시험이 도입되면 얘기는 달라지죠. 이러한 시험의 목적은 개인의 사고 능력 측정이에요. 대입을 위해선 결국 초·중·고교 과정에서도 발산적 사고를 평가하는 시험이 돼야 해요. 내신과 수능이 같아지는 거죠. 특히 특정 기간·범위 내 학습 여부를 평가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시험 범위도 의미가 없어요. 그리고 답안은 논술형으로 써야 해요. 따라서 수능·내신·논술 대비가 한꺼번에 되는 거죠. 비교과 활동은 최종 시험 통과를 위한 조건으로 제시하면 해결됩니다. 시험 하나만 대비하면 되는 셈이에요.”

    이 소장은 “평가 방식 변경은 또 다른 긍정적 효과도 가져온다. 바로 공교육 강화다. 그동안 진도 빼기에 급급했던 수업 진행 방식은 평가 방식 변경 후 발산적 사고를 기르는 데 도움을 주는 깊이 있는 수업 형태로 바뀔 것이다”라고 했다.

    ◇“하루빨리 평가 방식 바꿔, 교육 패러다임 전환해야”

    하지만 이러한 시험 도입엔 걸림돌이 있다. “주관식 평가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교육계 여론 때문이다. 이 소장은 “객관식 시험을 치르는 우리나라 평가 기관도 출제 논란에 휩싸인다”고 반박했다.

    그는 “주관식 평가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논리는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다. “IB의 경우엔 객관성·공정성 논란이 거의 없어요. 채점관은 주관이 개입되지 않도록 무기명으로 된 답안지를 평가해요. 한 답안지는 복수의 채점관이 공동 평가하고요. 채점 논란에 대한 조처도 다소 강한 편이에요. 덕분에 채점 과정에 대한 신뢰가 상당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우리나라 평가 기관이 주관하는 게 아니라 신뢰도 높은 해외 시험 주관 기관에 채점·평가를 모두 맡기면 논란은 최소화할 수 있다고 봐요.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 관리의 전권을 거스 히딩크 전 감독에게 넘겼더니, 어떤 결과가 나왔나요? 그것과 같다고 보면 돼요.”

    이 소장은 “평가 방식의 혁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옆 나라 일본은 이미 교육 개혁이 한창이에요. 발산적 사고를 평가하는 IB를 아예 통째로 도입했어요. 일본 대부분의 대학은 IB를 반영할 예정이에요. 현재 일본 일부 고교에선 IB 교육과정을 도입해 가르치고 있어요. 앞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지식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고민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이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근력’을 갖추게 될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는 힘’을 기른 학생들이 써낸 답안은 얼마나 독창적이고 창의적일까요? 전 일본이 시도하는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이 ‘제2의 메이지유신’이 될 거라고 봐요. 다른 나라와 교육 경쟁력 격차가 더 벌어지기 전에 발산적 사고를 기를 수 있는 평가 제도로 하루빨리 바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