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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치러진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일부 문항의 오류에 대한 이의신청이 잇따르고 있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은 이의신청 마감시한인 21일 오후 6시까지 국어 249건, 수학 39건, 영어 42건, 사회탐구 159건, 과학탐구 144건 등 총 661건의 의견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909건에 비해서는 다소 줄어든 수치이지만, 매년 수능이 끝나면 이의 신청 사이트에 글이 폭주하는 현상은 올해도 빗겨가지 않았다. 특히 올해부터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한국사 14번 문제의 경우, 복수정답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평가원이 최종 정답을 확정하고 발표하는 28일까지 수험생들의 혼란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능 시행 이래 총 6문제 오류 인정
1994년 수능이 도입된 이래 평가원은 다섯 차례, 총 여섯 문제에서 오류를 인정했다. 2004학년도 국어 17번, 2008학년도 물리Ⅱ 11번, 2010학년도 지구과학Ⅰ 19번, 2014학년도 세계지리 8번, 2015학년도에는 영어 25번과 생명과학Ⅱ 8번 문제에서 출제오류가 발생했다.
그중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8번은 ‘북미 자유무역협정권(NAFTA)과 유럽연합(EU)의 총생산에 대한 문제’가 출제됐다. EU의 총생산액이 NAFTA보다 크다는 내용의 보기 2번이 정답으로 발표되자 논란이 발생했고, 결국 소송까지 제기됐다. 소송을 제기한 측에서는 총생산액을 비교할 기준시점이 제대로 제시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또한 보기로 나온 지도 하단에 적힌 (2012)라는 표시를 토대로 하더라도 NAFTA의 총생산액이 EU를 앞질렀기 때문에 정답으로 발표된 지문은 객관적으로 틀렸다고 주장했다. 이에 원심은 평균 수준의 수험생이 정답을 고르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봤지만, 2심인 고등법원에서는 문제가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결국 수능을 치르고 1년이 지난 2014년 10월 교육부와 평가원은 오류를 인정하고 전원 정답처리 한 다음 사후구제에 나섰다. 해당 문제 때문에 지원 대학에 불합격된 학생들에게 추가 합격 관련 기회를 주긴 했지만, 너무 늦은 대처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출제오류가 줄기는커녕 2문제로 늘어났다. 2015학년도 생명과학Ⅱ 8번은 대장균이 젖당을 포도당으로 분해하는 효소의 합성 과정을 묻는 것으로, 보기에서 옳은 것을 고르는 문제였다. 평가원은 ㄱ, ㄴ 이 모두 옳다고 했으나, ㄱ 은 틀리다는 이의가 제기됐고 결국 ㄴ만 나와있는 보기도 정답으로 인정됐다. 영어 25번은 잘못된 표현 사용이 문제가 됐다. 2006년 29%에서 2012년 53%로 늘어난 휴대전화 번호 공개율 그래프를 활용, 틀린 보기를 찾는 문제에서 평가원은 2012년 이메일 주소 공개 비율은 2006년의 3배 정도라고 밝힌 4번이 답이라고 했으나, 수험생들은 5번도 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Compared to 2006, 2012 recorded an eighteen percent increase in the category of cell phone numbers(2006년과 비교하면, 2012년 휴대전화 번호 공개율은 18% 증가했다)’라는 5번 보기는 백분율을 나타내는 percent와 백분율 간 차이를 나타내는 percent point를 잘못 활용한 문장이라는 이유였다. 결국 수험생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져 복수정답 처리됐다. 이를 이유로 평가원장은 모든 책임을 지고 자진해서 사퇴했다.
◇끊이지 않는 출제 오류, 수험생만 피해
문제는 출제오류가 나타날 때마다 수험생에게 피해가 오롯이 더해진다는 점이다. 복수정답이 인정되면 등급 커트라인 점수가 오르고, 이 과목에 응시한 수험생 중 상당수의 표준점수가 당초 예상에서 바뀌며 혼란이 발생한다. 소수점 이하 점수로 대입 당락이 결정되는 입시에서 복수 정답의 파장은 그만큼 큰 것이다. 올해 수능이 끝난 다음 수험생 대상 커뮤니티에서 한국사 14번과 국어 10번 문제에 대한 의견이 쏟아진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이의신청을 했다는 수험생 이진우(19ㆍ가명)군은 “수능 출제가 잘못되면 수험생 수천 명의 대입 결과는 물론이고 인생까지 바뀔 수 있다”며 “전문가들로 구성된 수능 출제위원들이 그렇게나 많은 데, 왜 오류는 끊이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비난했다. 수험생 김동건(19ㆍ가명)군은 “일단 기존 정답에 의존해 등급을 환산해 지난주 대학별 고사에 응했다”며 “복수 정답으로 등급이 떨어져 피해를 보지 않기를 기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 당국은 오류가 나올 때마다 지속적으로 수능 출제 시스템을 개편해왔다. 특히 2016학년도에는 앞서 2년간 연속으로 발생한 문항오류로 인해 사전에 재발방지에 심혈을 기울였다. 학맥에 따라 출제위원들이 좌우된다는 여론을 인식해 수능 출제 운영체계 개선위에 비교육계 인사들까지 참여시켰다. 문항점검위원회도 신설해 출제 검토 과정에서 논란이 되는 문항들을 집중적으로 논의 관리하는가 하면, 과목별로 출제인원과 검토인원도 늘렸다. 올해 역시 관련 분야의 전문가까지 추가로 투입했다. 김영욱 수능검토위원장(서울시립대 국문과 교수)은 수능 당일 브리핑을 통해 “출제와 검토 사이에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까지 마련했다”며 “교차검토와 피드백을 거쳐 수천개 문제 중 8개 영역 41개 과목 980문항을 엄선했다”고 무결점 수능에 대한 자신감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올해도 오류 논란이 불면서 평가원의 출제ㆍ검토 시스템은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사립대 교육학과 A 교수는 “교과목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이전보다 출제 범위가 늘어나고 관리도 어려워졌다”며 “현재 수능 시스템의 문제점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살펴봐야 할 시기”라고 조언했다.
올해도 수능 이의신청 봇물… 출제 오류 나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