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우의 에듀테크 트렌드 따라잡기] 왜 젊은 세대 문학은 지루한가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6.10.18 11:57
  •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대중음악 가수가 문학 최고의 영예를 얻었다. 누군가는 노벨상이 새로운 혁신을 했다며 칭찬했다. 밥 딜런은 저항성을 담은 시적인 가사를 썼으니 문학적 의미는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생각해보면 최초의 시인이라는 호머조차 음유시인이기 앞서 대중 가수였다. 하지만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문학이 가뜩이나 축소된 시기에 굳이 노벨문학상까지 문학 외 인사에게 상을 줄 필요가 있었냐는 논리다.

    문학은 왜 위축되었을까? 사람들이 문학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01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34.7%가 1년간 책을 1권도 읽지 않았다.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의 독서율은 유럽 OECD 가입국 평균 수준과 비슷했다.

    문학의 질도 꾸준히 줄어들었다. 하버드 교육학과 교수 하워드 가드너는 현재의 ‘앱 제너레이션’ 세대는 과거보다 문학의 창의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가 이끄는 분석팀은 1990년에서 2011년 사이 청소년들이 ‘틴잉크’라는 청소년 예술 잡지에 기고한 작품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과거보다 요즘 배경 묘사는 더 훌륭해졌지만, 평범해졌다. 과거 작품의 64%가 독특한 플롯을 갖고 있었지만 최근 작품은 불과 14%만이 관습적이지 않은 플롯을 갖고 있었다. 기술적으로는 더 뛰어나지만, 더 평범하고 관습적인 예술을 만든다. 요즘 세대는 창조력이 없는 걸까?

    진중권은 ‘미학 오디세이’에서 예술은 결국 형식 싸움이라고 말한다. 진짜 뛰어난 예술가는 단순히 좋은 내용을 만들지 않는다. 위대한 예술가는 형식을 통해 내용을 담는 자신만의 틀을 만든다. 피카소를 떠올려보자. 그는 단순히 좋은 그림을 그린게 아니었다. ‘청색 시대’부터 ‘입체파’까지 자신만의 형식을 끝없이 창조했다.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린다고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 수 없다. 형식을 파괴하고, 창조해야 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정말 위대한 감독은 단순히 좋은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만의 장르를 만든다. 히치콕은 평생에 걸쳐 서스펜스라는 장르를 만들었다. 지금도 스릴러 영화는 히치콕의 영화에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한다. 스필버그가 만든 블록버스터 장르도 마찬가지다. 스필버그는 ‘죠스’를 통해 최초의 블록 버스터를 만들었다. 지금은 모두가 스필버그의 흥행 공식을 따라간다.

    예술가는 내용이 아니라 형식을 만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왜 요즘 문학이 지루해졌는지 분명해진다. 문학은 이미 완성된 형식이다. 젊은 창작가의 창작열을 불태우기에는 형식을 발전시킬 여지가 적다.

    진짜 예술가는 형식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곳에 있다. 바로 코딩이다. 그들은 게임을 만든다. 앱을 제작한다. VR 콘텐츠를 만든다. 남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영화, 문학 등의 형식에서 승부하면 이미 늦었다.

    밥 딜런의 음악은 초기에는 천박한 음악으로 평가받았다. 포크 음악, 록 음악은 당시에는 아이들만을 위한 시끄러운 음악이었다. 60년대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는 비틀스 음악을 귀마개 없이 듣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누구나 비틀스 음악이 위대한 작품이라고 칭송한다. 밥 딜런이 노벨상을 받을 정도의 거장으로 칭송받는 지금, 정작 젊은이들은 포크 음악을 듣지 않는다. 대신 고전 음악을 샘플링으로 재해석하고, 노래에 멜로디를 삭제하고 리듬을 극대화한 새로운 음악 형식인 힙합을 듣는다. 형식의 혁명이다.

    문학의 시대는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이든, VR이든, 앱이든, 성장하는 형식에서는 얼마든지 새로운 작품이 등장할 수 있다. 50년 후에는 지금을 코딩의 황금시대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젊은 세대는 지루하지 않다. 지루해진 건 문학이다. 문학이라는 창작 형식의 생명력이 줄었기 때문이다. 또 젊은 세대의 창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 형식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제,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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