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우의 에듀테크 트렌드 따라잡기] HWP와 PDF, 그 사소하지만 큰 배려의 차이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6.09.13 09:45
  • 관공서는 아래아 한글을 쓴다. 전 세계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워드가 아닌 워드 프로세서 프로그램을 쓰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아래아 한글의 워드 프로세서 점유율은 세계 2위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그 외 모든 시장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닌 한국의 특수한 현상이다.

    문제는 모바일이다. 모바일에서 한글 파일을 열기는 어렵다. 세계 스마트폰 표준 운영체제를 만든 구글과 애플이 한글을 배려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글 오피스, 혹은 네이버 오피스 등의 앱을 부차적으로 설치해야 파일을 확인할 수 있다.

  • 모바일 알림장 아이엠스쿨을 통해 본 가정통신문 첨부파일 형식 통계
    ▲ 모바일 알림장 아이엠스쿨을 통해 본 가정통신문 첨부파일 형식 통계
    필자가 일하는 회사 ‘아이엠스쿨’에서는 전국 99% 학교의 알림장을 모바일로 학부모에게 제공한다. 아이엠스쿨이 학부모에 전달한 가정통신문의 첨부파일 데이터를 분석해보았다. 그 결과 전체 첨부파일의 68%는 hwp(한글 문서) 파일이었다. 어디에서든 열 수 있는 문서 형식인 pdf 파일 형식은 13.5%에 불과했다.
  • 모바일 알림장 어플 아이엠스쿨 화면
    ▲ 모바일 알림장 어플 아이엠스쿨 화면
    한글 파일을 스마트폰에서 보려면 또 다른 앱을 깔아야 한다.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학부모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해결 방법은 없을까?

    최근 경영 대세는 ‘고객 중심’ 경영이다. 과거에는 물건 자체가 귀했기에 제작자의 편의에 집중한 제품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생산자 중심’적인 생각이었다. 이제는 물건이 흔해지면서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는 고객 중심 경영이 주목받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한 대표적 인물이다. MP3기기를 혁신한 ‘아이팟’을 처음 소개했을 때, 그는 철저하게 고객 입장에서 신제품을 소개했다. ‘5GB의 메모리를 가진 184g의 소형 음악 기기입니다.’라는 말 대신, ‘주머니 속 노래 1,000곡’이라고 표현했다. 덕분에 누구나 아이팟의 강점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 현장도 고객 위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글은 ‘PDF로 저장하기’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학부모 대상 문서를 저장할 때 ‘저장’ 대신 ‘PDF로 저장하기’를 사용해서 저장하면 된다. 전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학부모는 핸드폰 앱을 하나 더 설치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다. 교사 입장에서 1초의 수고가 학부모의 15분을 덜 수 있는 셈이다.

    사소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많은 가르침을 담고 있다. 교육 기술 정책은 공급자 위주에서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교육 관료, 혹은 교사가 편한 방향으로 가기 쉽다. 하지만 수요자도 그만큼 중요하다. 교육 기술은 학생과 학부모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그게 고객 위주 경영이다.

    생각 전환에는 큰돈이나 시간이 들지 않는다. 그저 학생과 학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면 된다. 하지만 그 차이는 크다. 저장 버튼을 누를 때 한 번만 PDF로 저장하는 교사의 작은 수고만으로 학부모 몇백 명이 새로운 앱을 받아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듯 말이다.

  • ※에듀포스트에 실린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