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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진상입니다. 오늘은 지난 1일 치러진 9월 모의고사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저는 수시 상담과 자소서 지도 때문에 수능을 거의 신경 쓰지 못하고 있지만 한 때 수능 국어 비문학을 가르치고 교재도 출판했던 비상근 국어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다른 과목은 모르겠지만 국어 만큼은 나름의 전문성을 갖고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지요.
모의고사 등급 컷을 보면 국어는 1등급 컷이 90, 2등급 83, 3등급 75점입니다. 1등급 컷이 낮은 것도 눈길을 끌지만 무엇보다 1등급 컷과 2등급 사이의 거리입니다. 3~4점 정도 차이였는데 7점이나 벌어집니다. 이 이야기는 등급이 내려갈수록 체감 난이도가 높았다는 이야기지요. 잘 하는 학생과 못 하는 학생 사이의 갭이 많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실제 이대로 출제될 경우 올해 수능에서 국어는 표점이 반영되는 최상위권 대학과 의대 입시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6월과 9월이 모두 어려웠던 국어가 실제 수능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신만이 알겠지만 저는 조심스럽게 올해 역시 수능에서 국어가 난이도 있게 출제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정부의 강력한 사교육 억제 정책 때문에 수학의 난이도를 평가원이 올릴 수가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입시 사교육의 주범은 국어가 아닌 영어와 수학이죠. 영어는 내년도에 절대 평가로 전환되는 상대평가 마지막 해이기 때문에 어렵게 출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랬다가는 영어 망친 학생들 대부분이 재수를 선택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지요. 대선을 앞두고 재수생 양산이 예상되는 그런 무모한 일을 벌일 정부가 어디 있겠습니까? 영어를 어렵게 내지 못하기에 수학이 변별력 있게 출제될 거라는 전망 또한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영어 사교육의 풍선 효과가 발생하는 곳이 바로 수학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수학은 사교육 유발 효과가 국어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수학을 어렵게 내기가 어렵습니다. 영어에 수학에 그렇다고 국어까지 쉽게 낼 수는 없기 때문에 정부는 국어만큼은 변별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출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영어 수학이 이미 만점 수준인 최상위권 재수생들에게도 국어는 큰 고민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강남대성학원에 다니는 제 제자에 따르면 영수는 만점이지만 국어를 못 본 학생들이 주변에 상당히 많다고 하더군요. 결국 국어 때문에 정시에서 원하는 의대에 못 가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국어는 학원이나 과외 등의 사교육에 의존하는 학생보다 평소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하는 이른바 자기주도학습형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과목이죠. 이번에 오답률 1위인 36번 ‘생략된 전제’ 문제도 평소 비문학 책을 자주 읽고 추론을 제대로 하는 학생이라면 쉽게 맞힐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평소 상담을 하다보면 국어는 공부 시간이나 양에 좌우되는 과목이 아니라 독서 습관과 사고 습관에 따라 좌우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생기부 독서 활동 상황을 보면 국어 모의고사 성적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국어는 평소 독서습관과 많은 관계가 있습니다. 평소 독서량이 많다면 하루 아침에 성적이 오르기도 하고 아무리 문제집을 많이 풀어도 성적이 제 자리를 맴도는 묘한 과목이 국어인 것이지요. 실제 이번 모의고사 사례로 말씀 드리지요.
6월 모의고사에서 5등급이었던 한 학생이 이번에 84점으로 2등급을 받았습니다. 그 학생은 과외를 시작하거나 학원 강의를 새로 들을 건 아닙니다. 그 학생의 문제는 잘못된 문제 풀이 습관에 있었던 것이지요. 그 학생은 지문을 대충 보고 대신 선지에서 오래 고민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지문을 정확하게 읽고 구조를 완전히 파악하기 전에는 문제를 읽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 풀이 방식을 바꾸면서 자신의 약점을 스스로 교정해나간 결과 놀라운 반전을 보인 것이지요.
이처럼 수능 국어에서 문제 중심이 아니라 지문 중심의 공부가 유효한 이유는 전보다 지문의 비중이 더 늘고 길이도 길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독해가 안 되면 우선 시간 싸움에서 집니다. 비문학 독해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비문학은 물론, 문법과 문학까지 흔들리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죠. 3등급 이하 학생들 대부분은 9월 모평에서 시간 부족을 심하게 느꼈을 겁니다.
그렇다면 많은 학생들이 신주처럼 모시는 기출 분석은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흔히들 수능 국어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출문제니 기출 분석에 시간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런 학생들도 상당수 9월 모평에서 쓴 맛을 보았습니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새 교육 과정에서 국어는 문제 유형과 지문 묶이는 방식(예를 들면 문학과 비문학 지문이 섞이는)에서 전과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기출이나 시중에 나와 있는 모의고사는 이런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에 많은 학생들이 기출 분석을 통해 얻은 스킬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번 9월 모의고사는 평가원 측이 EBS 지문과 변형 문제 위주로 학습하는 잘못된 국어 학습법에 대해서 경종을 울린 사례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평가원이 밝힌 이번 모의고사 출제 의도를 보면 어떻게 국어를 공부해야 할지 답이 나옵니다.
“범교과적 소재를 활용하여 다양한 분야의 글에 대한 독서능력을 측정하고 2009 개정과정에서 강조하는 추론적 비판적 창의적 사고를 활용하여 문제를 풀 수 있게 출제했다.”
결국 수능 국어의 답은 하나입니다. 독해력을 키우는 일입니다. 낯선 지문을 만나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하게 논지를 읽어 낸 뒤 그리고 나서 문제에 달려들어야 합니다. 수능 국어는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 즉 독서 능력 측정 시험이지, 국어 교과에서 배운 지식을 확인하는 시험이 아니다. 따라서 문제가 아니라 지문 중심의 학습법이 필요하다. 9월 모평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
※에듀포스트에 실린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진상의 입시 속 의미 찾기] 왜 수능국어는 기출 분석이 통하지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