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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혁신가 지원·후원하는 아쇼카한국 이혜영 대표 인터뷰]
이들은 ‘사람’을 발굴한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세상을 바꿀 ‘혁신가’를 찾는다. 지난 36년간 전 세계 약 3000명에 이르는 혁신가가 이들의 지원과 후원으로 사회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왔고, 또 일으키고 있다. 지난 1980년 창설된, 사회 혁신가를 발굴·지원하는 국제 비영리단체 ‘아쇼카(Ashoka)’ 얘기다.
그동안 사회 모든 분야의 혁신가를 찾던 아쇼카가 요즘 특정 분야 혁신가 구인(求人)에 부쩍 힘쓰고 있다. 바로 ‘교육’이다. 아쇼카의 한국 지부인 아쇼카한국도 마찬가지다. 올 하반기 목표는 ‘교육 혁신가 발굴’이다. 왜 지금 아쇼카는 교육, 그리고 교육 혁신가 발굴에 몰두하고 있을까. 지난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아쇼카한국 사무소에서 이혜영 아쇼카한국 대표를 만나 그 이유를 들어봤다.
◇체인지메이커 요구 시대… 교육 혁신이 필요하다
이 대표에 따르면, 아쇼카가 여러 사회 혁신 분야 중 교육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 배경은 ‘불확실한 미래’ 때문이다. “지난 세기는 이른바 ‘반복(Repetition)의 시대’였어요.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반복만 해도 그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해 충분히 먹고 살고 적응할 수 있는 시대였죠. 지금은 달라요. 기술의 발달로 사회가 급변하고 있어요.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change)의 시대’가 온 거죠. 어떤 분야에 숙련된 전문가보다는,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체인지메이커(chagemaker)가 훨씬 더 중요한 세상이 된 거예요. 덩달아 이들을 양성할 교육도 과제로 떠올랐어요. 아쇼카가 교육에 주목한 이유는 그 때문이에요.”
3000여 명의 ‘아쇼카 펠로(fellow)’<키워드 참조> 추적 조사 결과도 아쇼카가 교육에 초점을 맞추게 된 또 하나의 이유다. 아쇼카 펠로는 아쇼카가 선정한 사회 혁신가로,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킨 사람들을 말한다. 이 대표는 “아쇼카 펠로가 어떻게 체인지메이커로 성장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들의 어린 시절을 분석한 결과,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됐다. 바로 남다른 공감 능력을 갖췄다는 것과 10대 때 이미 변화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체인지메이커의 조건은 어린이·청소년 시기 인성·체험 교육을 통해 충분히 갖출 수 있다고 아쇼카는 판단했다”고 했다.
◇판을 뒤흔들 교육 혁신가의 자질은…
하지만 교육 현장은 요지부동이다. 이 대표는 “그래서 교육 혁신가가 필수다”라고 했다. “앞서 말했듯이 ‘변화의 시대’가 이미 도래했지만, 교육 환경은 여전히 ‘반복의 시대’에 머물러 있어요. 교육 시스템, 교육 문화, 교육계의 마인드셋(사고방식) 등도 여전히 시대착오적이죠. 10대들이 체인지메이커가 아닌 팔로어(follower·추종자)에 그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에요. 결국 이를 혁신하려면 교육 혁신가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한 거죠.”
아쇼카도 교육 혁신가의 임무가 막중하다고 보고 있다. 이 대표는 “아쇼카 펠로 3명 중 1명이 교육 관련 혁신가라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교육 혁신가의 역할이 그만큼 필요하다”고 했다.
교육 혁신가의 역할에 공감한 기업인도 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건강한 교육 생태계를 조성할 목적으로 아쇼카한국의 교육 혁신가 발굴을 후원하기 위해 자사 보유 주식 3만주를 기부했다. 해마다 1만주씩 3년간 기탁하는 형식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3년간 28억3500만원에 이른다.
아쇼카가 꼽는 혁신가의 기본 자질은 네 가지다. 공감 능력, 팀워크 능력, 리더십, 창의적 문제해결력 등이다. 아쇼카 펠로는 한 술 더 뜬다. 이들이 내놓은 혁신적인 제안이 국가의 정책 혹은 새로운 법안 마련을 이끌어낼 정도의 영향력을 갖춰야 한다.
앞으로 발굴할 교육 혁신가의 조건도 이와 비슷하다. 이 대표는 “기본 자질은 말 그대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 그리고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다는 것을 이미 인식하고 교육 현장에서 작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분들을 환영한다. 이중 혁신을 주도할만한 영향력 있는 일부 교육 혁신가들은 펠로로도 모실 계획이다”라고 했다.
◇교육 혁신가의 힘, 아이들의 미래 바꾼다
교육 혁신가가 주도해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끈 실제 사례가 있다. 2006년 창설된 미국의 교육 혁신 단체 ‘스트라이브투게더(StriveTogether)’가 미국 오하이오주(州) 신시내티에서 진행한 공교육 혁신 프로젝트 ‘요람에서 직업까지(Cradle to career)’가 그것이다. 공교육 붕괴로 신시내티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나날이 추락하자, 스트라이브투게더 주도로 지역 내 수백 명의 혁신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 무너진 공교육을 다시 회복시킨 사례다. 해당 프로젝트를 이끈 스트라이브투게더의 제프 애드먼드슨 대표(managing director)는 아쇼카 펠로다.
“당시 신시내티 학생들의 학력 부진 문제를 심각하게 보는 사람들은 많았어요. 개인 내세운 것 중 혁신 가능성이 큰 프로그램도 많았죠. 다만 이를 제대로 실현할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어요. ‘프로그램은 부자인데, 시스템은 가난하다(Program rich, System poor)’는 자조가 나올 정도였어요. 이때 교육 혁신가들이 총대를 멨어요. 이들은 눈앞의 문제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이상적인 미래를 먼저 보자고 주장했죠.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면 의견을 모으기 어려운데, 모두가 추구하는 미래를 보면 의견을 통일할 수 있다는 논리였어요. 그리고 그 미래에 도달하기까지 과정을 역추적하다 보면 복잡한 문제들도 자연스레 풀릴 수 있다고도 주장했죠. 이에 공감한 수백 명의 리더가 힘을 보태기 시작했고, 곧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어요. 불과 3년 만에 ‘공교육이 회복됐다’는 평가를 받았죠. 이는 집단적인 충격(Collective Impact·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리더들이 협력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창조적 해결 방법)의 대표 사례로도 꼽혀요.”
이 대표는 “스트라이브투게더의 사례를 보면, 결국 교육 혁신에 공감하는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된다”며 “아쇼카한국도 지난 5월 70명의 교육 혁신가들이 모여 ‘미래를 여는 시간’이라는 교육 혁신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앞으로 좀 더 많은 교육 혁신가들을 발굴해 이러한 움직임을 촉진할 것”이라고 했다.
“이제는 ‘모두가 변화의 주역(everyone-a-changemaker)’이 될 수 있는 시대예요. 아쇼카는 앞으로 어린이·청소년들이 변화를 만들 독창성과 창조 능력을 발견하는 데 교육이 이바지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훗날 이들이 혁신가로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할 계획이에요.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해 많은 교육 혁신가가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아쇼카 펠로
아쇼카가 엄격한 기준으로 선정한 사회적기업가(Social Entrepreneur)다. △추천 △1차 오피니언 면접(현지 아쇼카 스태프 면접) △ 2차 오피니언 면접(해외 아쇼카 스태프 면접) △패널 인터뷰(해당 분야의 사회 문제를 연구하는 패널리스트 면접) △아쇼카 글로벌 이사회 평가 등 5단계 과정을 거쳐 선발한다. 아쇼카펠로로 선정되면, 아쇼카는 생계비(1년 평균 5000만원)를 3년 동안 지원한다. 활동비 내역은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 이혜영 아쇼카한국 대표는 “그들의 혁신을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표 아쇼카 펠로 중엔 빈민을 위한 소액 대출 은행인 그라민 은행의 창립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방글라데시), 미국 인문대생이 ‘취업하고 싶은 직장’ 1위로 뽑은 비영리단체 티치 포 아메리카(Teach For America) 창립자 웬디 콥 등이 있다. 한국 아쇼카 펠로는 총 7명이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박유현 인폴루션제로 대표, 김종기 청소년폭력예방재단 명예이사장, 명성진 세상을 품은 아이들 대표, 정혜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 등이 선정됐다. 이중 교육 관련 혁신가는 박유현·김종기·명성진·송인수·조명숙 펠로 등이다.
“‘전문가’ 아닌 ‘혁신가’의 시대… ‘교육 혁신’ 반드시 필요”